평소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정신도 없고 자주 어지러웠다. 그러다 무심코 걷기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나 자신에게 놀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왜 매일 걸을까? 걷기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산책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그런 걸까? 심리적 장벽이 낮은 이유도 있지만, 나는 생각하지 않기 위해 매일 걷는다.
걷기 운동은 생각보다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정신을 놓으면 속도가 느려지고, 운동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속도와 보폭을 유지하려면 집중해야 하고, 걷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다 보면 잡생각을 안 하게 된다.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은 꼭 제친다'는 승부욕뿐.
사실 하루 중에 멍 때리는 시간이 별로 없다. 멍을 때리고 싶어도 이젠 그 방법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 그런데 걸을 때는, 나도 모르게 멍을 때리게 된다. 5km라는 대장정을 버티기 위해서일까.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이 길을 계속 걷기 위해서는, 걷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가로등에 비치는 내 그림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면 그렇게 또 시간이 가고 집 앞에 서 있더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지나치게 의식하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언제 끝날까?', '이 길에 끝은 있는 걸까?', '힘들고 지친다'와 같은 자칫 피곤한 생각마저 든다. 내 일상도 그랬다. 싫다는 생각 때문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을 종종 미루곤 했다. 언젠가는 끝날 일인데 말이다. 하루의 길이는 늘 같다. 단지 내 마음에 따라 어떤 날은 길어지고, 어떤 날은 짧아질 뿐이다.
걷기는 내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풀 냄새, 찌르르르하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 강물에 비치는 아파트 불빛들, 그리고 내 그림자. 잡생각 없이 나와 내 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이 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 넘친다. 복잡한 생각과 고민으로 가라앉은 내 하루는, 걷기로 그 리듬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