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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영하는 오드리 Oct 05. 2022

문학과 예술의 기묘한 만남1

1. 오르한 파묵+마크 로스코=레드가 레드에게 답하다

1. 오르한 파묵(내 이름은 빨강) +  마크 로스코(레드) = 레드가 레드에게 답하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은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서술방식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각 장마다 죽은 시체, 개, 나무, 죽음, 빨강 등 사람이 아닌 사물 심지어 시체가 화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의 술탄이 궁정 세밀화가들에게 밀서를 제작하게 하는 중에 두 명의 화가가 죽게 되고, 그 살인자가 누구인지 치밀한 단서로 추적하게 하면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차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서, 궁정 세밀 화가들간의 혼란과 갈등을 통해 ‘진정한 예술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한다. 신의 관점인 절대적 가치관을 방식을 고수하려는 전통주의자들과 인간의 관점인 서구의 원근법을 적용한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려는 개혁파들 사이의 음모와 세력 다툼이 각 화자들에 의해 은밀하고 매혹적으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난다. 결국 그 살인사건은 보수주의 예술과 진보적 예술의 대립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나갈수록 더 이상 누가 범인인지, 과연 전통주의자들이 승리할지, 개혁파들이 승리할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각 장의 화자들은 진정한 화가로서의 덕목과 시간, 눈멈에 대한 열정적인 예술관을 풀어내면서 장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그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화풍에 변질되기 전 최고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위해 오스만 장인이 자신의 눈에 황금바늘을 찔러서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은 이 책의 진수이다. 어둠 속에 기억을 가두는 것이 ‘신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데 일생을 바친 화가들에게 신께서 주시는 마지막 행복’(p.142/민음사) 이라니!! 


무엇보다 이 책에서 독특한 매력을 보여 주는 장은 책 제목과 같은 <내 이름은 빨강>인데, 빨강 이라는 색채가 기고만장한 현란한 말재주를 가지고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재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보시라. 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 (p.321/민음사) 

“아름다운 그림의 검고 흰 부분을 나의 충만함과 힘 그리고 생동감으로 채우는 것은 너무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이렇게 내가 칠해지는 것은 마치 이 세상을 향해 ‘되라!’라고 하자마자 세상이 온통 나의 핏빛 색으로 물드는 것과 같은 일이다.”(p.323~324/민음사)     


위의 글처럼 ‘빨강’은 생명의 주체자로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흘러 넘쳐 우주 창조자의 극치에까지 올라가 자체 황홀경에 빠져 있다. 이런 추상적인 존재가 우리에게 자신을 뽐내며 말을 걸다니 과연 오르한 파묵은 ‘빨강’이라는 존재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일까?
 예술가 장인들이 이런 ‘빨강’이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역동적인 생명력을 담아 창조주의 능력까지 탐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싶다.      




나는 이렇게 ‘빨강’의 위력에 빠져 들다 보니 어느 덧 마크 로스코의 <Untitled-레드> 그림이 떠오른다. 오르한 파묵의 열정과 생동감, 충만함의 ‘빨강’이 마르 로스코의 ‘레드’의 시각적인 이미지에 투사되는 듯하다.     

<마크 로스코_Untitled(Red)_1970>

미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한 설문조사에서 ‘미술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답한 관람객들의 70%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눈물은 스탕달 신드롬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뛰어난 예술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동이나 흥분을 나타내는 일시적 환각증세일 것이다. 과연 그의 작품은 어떤 마력을 가졌기에 이런 놀라운 힘을 우리에게 발휘하는가?

하지만 막상 그의 대표작품인 <Untitled-레드>를 처음 보고, 나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태나 이미지, 선과 면의 경계가 모호한 달랑 레드의 색채 덩어리만을 거칠게 그려낸 작품이라니...정말 이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압도당했단 말인가! 사람들마다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너무나 단순한 작품이라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예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왔다”라고 얘기하는 마크 로스코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유보하고, 그가 남긴 예술적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마크 로스코는 1903년에 태어난 러시아 유대인 출신의 미국 화가이며, 거대한 캔버스에 간결하고도 깊은 색과 의미를 알 수 없는 형태 표현만으로 감성을 전달하는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특히 형태보다는 색면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과 미학을 정립하여 현대 추상회화의 혁명가로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로스크의 명성에 비해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그의 작품의 소재와 구체적인 이미지를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1920년대 로스코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자신이 태어난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로스코는 그림을 배우기 위해 뉴욕에서 여러 화가들을 찾아 다녔다. 당시 뉴욕에는 유럽에서의 유대인 박해와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피해온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로스코는 이런 실험정신이 강한 추상적인 예술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입체파, 야수파, 초현실주의 등에 빠져들었고,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탐구를 통해 고유의 감정을 개성적으로 담아내는 추상적 색채 표현주의를 만들어냈다.  

   

1946년 이후로는 로스코는 점차 추상의 본질을 탐구하며 구성적인 이미지가 아닌 오묘한 색채 덩어리들로 캔버스를 채우기 시작했다. 빨간 색으로 채워진 최소한의 형태의 표현들에 영감을 얻어 선과 면의 경계가 모호하고 소재나 이미지에서 벗어난 완전한 추상적인 작품들로 빠져들게 들었다. 거대한 캔버스 위에 색채 덩어리들을 거칠게 그려냈는데 바로 거기에 사람들이 감정의 소용돌이에 압도되었다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45cm의 거리에서 바라보라고 조언하는데, 사실 이 거리에선 거대한 그의 작품을 한번에 감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그 거리에서 작품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환각적인 시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고 한다. 그는 관람객들이 영적인 체험과 주관적인 감정의 세계에 빠지길 원했는데 작품과 교감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그림들이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심지어 작품 스스로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다.


단순한 레드색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거기서 느낀 감정을 떠올려 개인의 작품으로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어쩌면 로스코의 한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감정을 보여주는 거울인 듯하다. <Untitled, Red>는 로스코가 자살하기 직전에 그렸던 작품으로 많은 비평가들이 그가 현실 속에서 치유될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 불안, 우울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자살 충동을 일으켰다고 평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그림은 새로운 희망을 담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 동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면서 내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강한 저항과 그렇게 살아보리라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어 팔딱팔딱 뛰는 역동적인 심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빨강(레드)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진 색채임에 틀림없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빨강의 존재감을 얘기했듯이 이 세상에 빨강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세상이 될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마크 로스코의 <Untitled,Red>앞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들에게 레드의 강한 이미지가 개인의 고통적인 경험들과 만나서 극치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무너져 화해하면서 내면의 치유와 같은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빨강이 갖고 있는 이런 오묘하고 신비한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신이 내린 축복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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