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알베르 카뮈+자코메티= 현대인의고독에 질식하다
2. 알베르 카뮈(이방인) + 자코메티(걸어가는 인간) = 현대인의 고독에 질식하다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칭 사망, 명일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이 첫문장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날짜가 오늘인지 어제인지 그에게는 흐릿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무심한 건지 아니면 무기력한 건지 우리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고, 과연 이렇게 관조적인 화자는 어떤 인물일까라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뫼르소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극적인 이야기보다는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하지만 이런 특별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모여 큰 사건의 원인이 되고 결국 뫼르소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된다. 누구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해 이해받지 못했던 뫼르소,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의 장례식을 시종일관 무덤덤하게 치루고 나서 다음날 예전 회사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 같이 수영을 하고, 영화를 보고 함께 밤을 보낸다.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몽을 알게 되고 무심코 그의 아랍인 여자친구 일에 끼게 되어 그녀의 오빠의 아랍인 일행과 다툼이 생기게 된다. 그들은 해변에서 그 아랍인 일행을 마주쳐 시비가 붙게 되고, 뫼르소는 강렬한 태양과 더위로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권총 다섯발을 쏘아 죽이게 된다. 그는 살인죄로 법정에 서게 되고, 태양 때문이었다는 그의 살해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 판사와 배심원들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의 무심한 행동들로 비도덕성을 문제삼아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이렇듯 자신의 운명조차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현대의 고독한 인간 뫼르소에게는 물론 뜨거운 태양볕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중죄가 있다. 하지만 재판장의 검사들과 배심원들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이나 그의 의도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에게 비도덕적인 인간으로서의 원죄의 책임을 물려고 할 뿐이다. 이들은 뫼르소의 운명을 놓고 그들의 편의대로 그를 해체시키며 죽음으로 몰고 한다.
이처럼 불확실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사회, 사람들에게 심지어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때로는 이해받지 못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렇게 낯선 이방인이라는 오해에 둘러싸여 한 방향만 바라보며 걷고 있을 뫼르소의 모습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고 있는 사람,1960>이 절로 떠오른다.
뫼르소의 마른 체구와 표정과 핏기가 없는 얼굴, 얇고 긴 팔 다리로 휘청휘청 걸어가는 모습이 꼭 자코메티의 뼈대만 남아있는 조각상을 연상시킨다.
누구나 처음 자코메티의 작품을 보면 “이게 뭔가? 뼈대 위에 약간의 살만 덧 씌워 넘 쉽게 만든 거 아닌가?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한 번씩은 하게 된다. 하지만 자코메티의 마른 인간들을 계속 보다보면 쓰러지지 않으려고 강하게 버티고 있는 그의 두텁고 투박한 발에서 묘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의 모순에 고뇌하는 복잡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스위스)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살상무기를 통한 전쟁으로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음을 직면한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부조리한 제도가 자신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고통과 상처 속으로 몰고 있음을 삶의 현장에서 뼈저리게 알게 된다. 그는 이런 인간 소외와 고독을 가슴 아파하며,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내려고 했다.
자코메티는 전쟁으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고, 사람의 형상을 계속해서 깎아내고 벗겨내어 결국 앙상한 가지처럼 가늘어진 형상을 만들어냈다. 모든 허위와 권위를 벗어던지고 뒤덮고 있는 무게를 깎아내어 가냘프지만 꼿꼿이 서 있는 인간, 그 과정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실존만이 남아 있는 처절한 인간, 그 험난한 고통 속에서도 어디론가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향하는 인간을 자코메티는 거친 손길로 빚어내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 보여주려는 것, 바로 그것은 그 가벼움의 본질이다.”by 자코메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를 소외시키고 고립시키고 있는 ‘삶과 죽음의 부조리’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존엄과 존재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고 우리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여 함께 연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도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개개인의 각성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나 투쟁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 아픔을 서로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내적 치유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자신의 아픔만 감싸고 이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남들과의 관계가 강핍해지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앞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뒤와 옆을 바라보고 서로를 끌고, 끌려가며 함께 이 메마른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뫼르소처럼 이 험난한 세상을 혼자서는 걸어가기 버겁겠지만 함께 서로의 마른 어깨를 감싸고 어깨동무라도 하면서 걸어간다면 서로의 발걸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싶다.
우리가 이 세상과 화해하는 미래의 어느 날, 과연 카뮈와 자코메티라면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낼지 상상해본다. 그때는 카뮈의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만큼 사람들의 감정에도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들과 잘 어울리며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어디서나 자신을 열심히 변호하면서 남은 날들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듯 하다. 자코메티의 조각상은 더 이상 앙상한 뼈대만 남은 인간의 모습이 아닌 풍성한 영혼과 육체를 담아내어 각자 다른 방향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보조를 맞추며 나아가지 않을까?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양보하고 절충하는 방법들을 모색해서 함께 손을 잡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면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 공감, 위로와 응원이 필요하며 그런 태도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세상이 그처럼 나와 닮았다는 것을 요컨대 그토록 형제같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나는 내가 행복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by 카뮈 <이방인>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by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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