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피츠제럴드 + 툴루즈 로트렉 =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3.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 툴루즈 로트렉 =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누구나 어릴 적에 꿈꾸던 인물이나. 갖고 싶은 원대한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설레였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가끔 그때를 떠올려보며 우리가 그 꿈과 멀어진 채 현실과 타협하여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 소원을 이루어 만족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무일푼에서 큰 부자로 돌아온 개츠비에게 그린라이트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1920년대 1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경제적 호황기를 맞이한 미국은 사람들의 끝없는 탐욕으로 도덕적 타락이 만성화되고 있었다. 이때 허술한 빈틈을 노리고 개츠비는 금주령에도 갱단과 불법으로 술판매를 하고, 증권계의 인사를 협박하여 정보를 얻어 큰 부와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의 꿈은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는 데이지의 관심과 사랑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는 매주 호화스럽고 사치스런 파티를 자신의 웅장한 집에서 연다. 개츠비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데이지가 있는 해변가를 비추는 그린라이트 등대를 바라보며 그녀의 사랑을 되찾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처음 데이지와 사랑에 빠졌던 그 과거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유부녀인 데이지에게 남편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돌아오길 강요한다.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가 넘을 수 없는 태생적 계층의 한계와 그의 불법적인 부의 증식에 대한 남편의 폭로에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를 배신하고 남편을 따라 떠나고 만다.그저 관찰자로 이를 지켜봤던 닉은 개츠비의 죽음에 어느 누구도 애도하지 않고 심지어 데이지마저도 장례식 꽃도 보내지 않자, 개츠비의 인생의 덧없음과 그가 꿈꾸었던 그린라이트의 허망함을 목격한다. 다만 닉은 인간성이 썩어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 순정적이고 열정적인 개츠비가 위대할 수 밖에 없음을 홀로 그의 주검을 지키며 깨닫는다.
그저 자신의 꿈인 그린라이트 등대를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온 순수한 열정의 개츠비를 보면 물랑루즈의 화려한 네온사인의 불빛을 뮤즈삼아 그림으로 그리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이 떠오른다. 툴루즈 로트렉은 12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명한 프랑스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백작 출신의 아버지와 서로 사촌 간인 어머니로부터 귀족의 혈통과 재산, 예술적인 재능,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마저도 물려받게 되었다. 툴루즈 로트렉은 어려서부터 멋진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큰 기대를 많이 받았으나 말도 느리고, 키 성장도 느렸는데, 이는 족보상 가계의 반복된 근친혼의 여파로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많았고 특히 뼈가 약했다. 로트렉은 14, 15세 때 넘어져서 양쪽 허벅지 뼈가 부러진 후로는 키 성장이 멈쳐 버려 결국 그는 152cm 키에 하반신이 과도하게 짧은 외소증을 앓아 평생 지팡이로 지탱하며 살아가야 했다.
남부럽지 않은 백작 가문의 재벌가였음에도 신체적 결함 때문에 늘 상처와 비웃음을 받고 자라났는데,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일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특히 자신와 같이 비주류 계층이지만 화려한 물랑루즈 무대에서 강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매춘부, 댄서, 희극배우, 서커스 광대들을 캔버스에 자유롭게 재현해냈다. 로트렉은 단지 물랑루즈에서 상류층의 향락적인 놀이 문화나 댄서들의 퇴폐적인 모습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편견과 비판없이 단지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고자 했다. 로트렉은 물랑루즈 매니저에게 물랑루즈를 홍보할 포스터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렸다. 신선하고 유쾌한 광고 포스터였는데 당시 포스터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고 근현대의 기준을 만들어냈다. 일각에서는 팝 아트분야의 원조이자 파리예술계의 거장이라는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각색해낸 환상보다는 선명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매력을 지닌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은 대중의 사랑과 비평가의 인정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하지만 그는 불규칙한 생활 습관, 과음, 무분별한 매춘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결국 1901년 37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아마도 툴루즈 로트렉은 자신이 갖고 있던 하체 외소증으로 인한 외모 컴플렉스에 대해 큰 상처를 마음에 담고 매순간 좌절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귀족 가문의 수치라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질타를 받으며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우울한 순간들이 많았으리라.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는 비록 자신과 같은 비주류계층이지만 화려한 무대에서 삶을 열정적으로 춤추는 댄서들의 모습들을 주로 그렸다.
<물랑루즈에서의 춤> 작품에서도 남녀 댄서들을 통해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에 대한 집념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그림에서 세련된 조명 등불 아래에 모자를 쓴 신사들 사이에 빨간 스타킹을 신은 여자 댄서와 우아한 핑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비교되어 보인다. 그 당시 유명한 춤꾼인 ‘발랑탱’이 여자 댄서에게 춤을 가르치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다리를 유연하게 벌리기 위해 손으로 치마 양끝을 위로 잡은 댄서는 매춘부 계급에 가까운 차림의 댄서로 보여진다. 오로지 물랑루즈에서는 사회 계층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춤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자유와 해방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반면 우아한 주름과 레이스가 많이 달린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은 물랑루즈의 분위기에 어색해하면서 체면을 벗어던진 댄서들의 자유로운 춤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물랑루즈의 네온사인은 그에게 짧지만 소중한 생명의 빛이 되었고, 창의적 영감을 주어 다양한 작품들을 남기게 해주었다. 그에게 물랑루즈가 없었다면 그는 어떻게 삶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한 예술가에게 삶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게 해 준 대상이나 뮤즈가 있었다는 건 그에게는 정말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툴루즈 로트렉에게는 바로 물랑루즈가 그런 것이었다.
개츠비는 그린라이트 등대를 바라보며 데이지의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화려한 파티를 열어 과시해왔다. 하지만 결국은 그 어떤 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의 배신을 당해 죽게 되고 그의 주검을 지키는 사람은 친구 닉 외에는 아무도 없어 허망함만 안겨 준다. 툴루즈 로트렉은 자신의 신체적 장애로 인해 유명한 귀족가문이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는 자신의 대리만족을 담은 화려한 물랑루즈에서 무희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담은 광고포스터로 엄청난 명성과 부를 얻었다. 하지만 물랑루즈의 매혹과 현실과의 격차를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내면의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술에 중독되어 죽게 된다.
물론 게츠비와 로트렉이 추구해 온 삶의 목적과 이루는 방법에 있어서는 분명히 결이 다르다.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의 존재를 거부한 완악한 아버지로부터 이해를 받고 싶어하는 열망이 이들에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였다.이들의 과거는 비천하고 나약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꿈을 이루고자 화려한 그린라이트 등대와 물랑루즈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달려간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이들에게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충분히 붙여 줄만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들의 인생에 오래도록 관심을 갖게 된 건 이들이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을 붙여주고 싶은 우리의 속내가 담겨 있으리라.
후대의 사람들이 이들의 이야기와 그림들을 통해 이루지 못한 사랑과 이해받지 못한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염원한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게 된다면 비극적인 죽음의 길을 갔지만 스스로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만족해하지 않을까싶다. 이렇게 고전문학과 예술의 힘은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초월해서 미래에까지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