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듯 평범했던 하루
작은 방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과 입술에 윤기가 나도록 저녁을 오물오물 먹고 있던 두 명의 연인은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본다.
2년을 질리도록 매일 매일 봐온 서로의 친숙한 몸뚱아리에 각자 열심히 기름칠을 해대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A는 상대에게 파고 들어 무릎팍에 머리를 올리고 눕는다. 방바닥에 놓인 물티슈로 손가락만 잽싸게 대충 닦고는 상대의 푹신한 온기에 얼굴을 비비며 툭 몇 마디를 내뱉었다.
“우리 늙어서도 이렇게 같이 밥 먹자. 그러다가 배 불러지면 서로 따뜻하게 안겨서 잠들자. 나…. 주름도 늘고 머리도 하얘지고 많이 빠져도, 지금보다 못생겨져도 영원히 나만 사랑해줘”
그 얘기를 들은 B는 A를 처음 만났을 때 A의 모습을 떠올린다. A는 이런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B를 향할 때면 무미건조하게 굳어있던 표정이 부끄럽게 웃음짓는 입가로 변하는 게 A가 가장 애쓴 애정표현일 때도 있었다. B는 A를 처음 본 순간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나가본 자리에서 B는 A가 귀엽다고만 생각했고, 이내 몇 마디의 대화를 주고 받으며 몇 번 더 만나보고 싶다고 느낀 정도였다.
“그래, 네 주름이랑 늘어진 뱃살 보면서 실컷 놀려줄게.”
A는 B가 마음에 드는 정도였다. 그 또한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을 수년간 품고 가슴앓이하며 인연을 찾고 있었기에, 전부를 누군가에게 내어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A는 자기 자신을 싫어한다고 수없이 얘기하고 다녔다. B를 처음 본 날에도 숨기려고 했지만, 한 두 시간 후 왠지 B를 몇 번 더 만나게 될 것 같다고 느낀 후 어김없이 털어놓았다.
“나는 내가 너무 싫지만, 너는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너랑 있으면 왠지 나도 내가 더 좋아질 것 같아.”
A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싫어했지만, B를 좋아하는 마음은 더 커졌고, 누구한테도 해본 적 없던 말을, 온기를 B에게 처음 듣고 내뱉어봤다. B는 불안정하고 자기만의 고민으로 가득 차있었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의 방식으로 A를 사랑해줬다.
A는 B만 사랑하고 싶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기를 바라기도 했다. A는 B가 자신과 헤어지고 더 멋진 다른 사람과 만나는 걸 떠올릴 때면 불안감을 한가득 느끼며 머리를 끄고자 했다. 더 열심히 편지를 쓰고, 더 열심히 안아주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B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이고 유일할 것처럼 느껴진 여느 순간도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산물이 아닌, 특히 관계와 같은 것들은 너무 확신을 갖거나, 부여잡고자 하면 오히려 손아귀에서 더 힘차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집착이 될 수도, 둘 모두를 괴롭게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