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첫걸음은 나만 보는 글에서 시작된다
글쓰기의 시작은 나만 보는 글쓰기다. 일기, 끄적거리는 낙서 등이 있다. 편지도 있다. 차마 보내지 못한 편지, 더 이상 보낼 수 없는 편지, 나에게 쓰는 편지 등.
어릴 때 일기장과 비밀 노트를 따로 두었다.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장과 내 비밀 이야기를 쓴 노트. 열쇠 달린 일기장이 나왔을 때 열쇠 채워서 보란 듯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았을까?
4-50년 넘도록 일기장을 보관하는 사람들 보면 부럽다. 어린 시절에 쓴 일기를 평생 가지고 사는 느낌이 어떨까?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겠지.
좋은 날, 기쁜 날, 행복한 날이 많았다면 추억이겠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많아서인지 일기를 다시 읽어 보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이사를 많이 다녔고 내 물건 챙길 여유 없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에 찢어버리고 불태워 버린 것도 많았다.
초고도 나만 보는 글이라 할 수 있다. 개인 저서 쓰고 있다. 부부 에세이와 치유 에세이 두 가지다. 부부 에세이는 작년에 쓰다가 중단했고, 치유 에세이는 8월부터 시작했다. 초고 한 편 쓰는 데 이틀씩 걸린다. 하루 두 시간씩 생각하고 쓰고, 또 생각하고 쓴다.
초고는 그냥 막 써야 한다고 배운다. 알면서도 잘 안된다.
글을 쓰려면 어릴 때 기억이 필요하다. 나를 외면하고 살면서 내 기억의 일부를 지워버렸다. 연도별로 메모하면서 기억한다. 내가 스스로 지워버린 기억들을 되살리는 작업이 꽤 오래 걸린다. 그때가 몇 살이었는지, 어디였는지, 누구와 함께 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록이 중요하다. 어릴 때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다면 초고 쓰기가 얼마나 쉬웠을까. 아프다고 고통스럽다고 나를 지우려 했던 걸 후회하는 날이 올 줄이야.
나만 보는 글 쓰는 건 쉽다. 잘 쓰려고 애쓸 필요 없고, 맞춤법이나 문장력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말할 수 있다. 욕도 쓸 수 있다. 맘껏 울어도 되고 화내도 된다. 글을 쓰다 보면 격해진 감정이 누그러들고 화가 풀린다. 실컷 화풀이하고 나면 반성하기도 한다.
일기장이나 비밀 노트는 복잡하고 힘든 감정을 마음 놓고 쏟아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스스로 작가가 되기도 독자가 되기도 한다.
나만 보는 글도 언젠가는 보여주고 싶을 때가 생긴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생각해도 썩 괜찮은 문장을 쓸 때도 있다.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보고 공감할 수 있을 만한 글을 쓰고 싶은 생각 든다. 나의 일상 이야기가 세상 이야기와 연결될 때 나만의 글, 에세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만 보는 글을 쓴다는 건 작가의 삶에 가장 순수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공개적인 글을 쓰기 전에는 꼭 나만 보는 글을 먼저 써봐야 한다.
솔직해진다. 날것의 나를 만날 수 있다. 내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을 찾거나 몰랐던 나를 깨달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해 주는 것도 좋지만 내가 기록한 나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글의 성향이나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
SNS에 공유하거나 책 출간을 위해 공개적인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게 메모와 낙서, 일기다. 세세하게 기록할수록 유용하게 쓰인다. 글의 한 장면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 보는 글을 쓰는 방법
일기, 낙서, 편지, 시, 에세이 초고 등 다양한 형식으로 시도해 본다. 키워드로 적어보기도 하고 마인드맵, 단상, 또는 간단한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글을 첨가해도 재미있다. 나만 보는 글이므로 내 마음대로 표현하면 된다. 단, 최소한 나는 알아볼 수 있어야 하겠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려면 빠르게 적어야 한다. 바로 쓰지 않고 몰아서 쓰면 기억하기 힘들다. 글 쓸 여건이 안 될 때는 음성메모가 유용하다.
휴대폰 메모장에 '데일리 로그' 폴더를 만들어 두었다. 메모장을 열고 음성 버튼 누르고 말하면 텍스트로 변환되어 빠르게 메모할 수 있다. 주변이 시끄러우면 음성 인식이 잘되지 않을 때도 많다. 대충 읽어보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은 바로 고쳐둔다. 순서가 바뀌고 횡설수설해도 괜찮다. 나만 보는 글이니까. 실시간 기록해 두면 글을 쓸 때 글감 걱정 없다.
지난 주말 실시간으로 음성 메모한 거다. 기차 기다리는 시간이나 기차 안에서 메모했다. 대충 고치긴 했으나 오타도 있다.
작가의 첫걸음은 나만 보는 글에서 시작된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는 나에게 질문해 본다.
오늘은 뭐 했어? 글 얼마큼 썼어? 글 쓰는 거 어때? 뭐가 어려워? 너 예전에 글 읽어봤어? 그때는 진짜 지지리 궁상이었는데 말이야. 기억나?
그럼 기억나지.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잘 쓰니?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쓸 수도 있는 거야. 길게 보고 가자, 즐겁게 글 쓰자고. 응 그래 고마워!
오늘 아침에 초고 쓰다가 통곡했다. 오늘은 단번에 한 꼭지 쓰려고 했는데 또 마무리하지 못했다. 글을 쓰다가 문득 오빠 기억이 났다. 나에게도 잠깐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오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도, 외롭고 무서운 오빠 곁을 지켜 줬던 것도 기억났다. 오빠의 일그러진, 환한 미소가 생각나 가슴이 미어졌다. 장면을 쓰면서 내 울음을 다 쏟아냈다. 다듬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 나만 보는 글에.
나도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글쓰기 여정의 시작점이자, 작가로서 첫걸음 내딛는 글은 나만 보는 글이다.
솔직하게 나를 만나면 내 이야기를 세상으로 꺼낼 용기가 생긴다. 나의 용기가 또 다른 사람들의 용기가 될 수 있도록 매일 나는 '나만 보는 글'을 쓴다.
자기 치유 성장 치유포유
치유성장 에세이스트 최미교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당신의 빛나는 삶과 글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