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B부장을 소개합니다.
프로젝트는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성공과 실패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B부장과 재미있는 여행을 떠나 보자.
국내 굴지의 글로벌 K사. K사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컨설팅 회사를 선정하였다. 시스템을 개발하기에 앞서 3개월의 기간으로 업무개선(PI: Process Innovation)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프로젝트 컨설팅 사로 선정된 A사, 그러니까 프로젝트 내에서 을이 된다. 이 “을” 회사는 5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을” 팀의 리더인 프로젝트 매니저(PM: Project Manager)는 SCM 프로젝트 경험도 있고 컨설팅 경력도 많은 베테랑이다. 다른 4명은 경험이 많지 않은 주니어들로 구성했다. 워낙 일감이 넘쳐나다 보니 경험 많은 인력을 한 프로젝트에 1명 이상 넣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프로젝트를 발주한 회사, 그러니까 프로젝트 내에서 “갑”이 된다. 이 “갑” 회사의 프로젝트 팀 B부장은 회사 내에서 물류 운영팀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가 프로젝트 팀의 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었다. 실무에서 SCM 관련된 일은 해 본 적이 있지만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수행하는 일은 처음인 B부장은 가슴이 설레었다. 평소에 해 보고 싶었던 일인 데다가 자신에게 엄청난 예산과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B부장이 프로젝트 팀으로 옮긴다는 소식에 물류 운영팀 직원들은 모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B부장이 떠나가는 날 직원들은 B부장에게는 비밀로 하고 모두 모여 부서 회식을 했다. 평소 1차에서 발을 빼던 직원들까지 모두 3차까지 남아 그의 부서 이동에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 블라인드에서는 B부장의 업무 방식에 불만인 직원들의 불평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올라왔었기 때문이다.
B부장이 팀원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B부장은 책임 회피의 달인이었다. 팀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잘 되는 일도 잘 못 되는 일도 있는 법. 잘 되건 잘 못되건 팀의 일은 팀원들 모두에게 각자 몫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B부장은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그럴 때마다 팀원 중 한 명을 콕 집어 잘못을 뒤집어 씌우기 일쑤였다. 물론 짐작하시겠지만 무언가 잘 된 일이다 싶으면 앞에 나서서 자신이 했다고 생색내기는 빠지지 않았다.
둘째, B부장이 주관하는 회의가 매번, 그러니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30분에서 1시간이면 끝나는 게 일반적인 회의 문화였다. 하지만 B부장이 참가하는 회의는 짧아야 2시간이고 보통은 3시간을 넘겼다. 회의에 빠져나가기 위해 팀원들이 다른 회의를 이어서 잡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직장인의 황금시간인 점심시간마저 빼앗으며 회의를 끄는 일도 다반사였다. 아침 9시에 시작된 회의가 오후 1시에 끝나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것도 일주일에 몇 번씩. 오전 회의는 점심시간을 잡아먹어 결국 팀원들은 급히 샌드위치나 짧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때우고 오후 업무를 해야 했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빠진다고 한다면 안 될까? 한 번은 그렇게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빠진 팀원에 대한 욕을 바가지로 하는 B부장을 겪어보면 이후에는 아예 약속을 잡지 않게 된다. 오후 회의가 있는 날은 더욱 고통이다. 오후 3시나 4시에 시작된 회의는 저녁 8시 혹은 9시까지 이어진다. B부장이 회의를 저녁시간까지 끌고 가서 결국은 B부장과 같이 저녁을 먹고 다시 회의를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B부장을 싫어하는 팀원들에게는 이것은 이중의 고통이었다.
셋째, B부장의 업무 방식도 큰 고통이었다. B부장은 고집이 대단해서 본인이 한 번 필이 꽂힌 것은 무조건 관철되도록 밀어붙였다. “왜?”에 대한 공감은 없었다. B부장은 공감도 안 되는 일방적인 설명만 잔뜩 늘어놓고 해야 한다고 닦달만 일삼았다. 회의 진행도 고통의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하기 일쑤이고 회의 이전에 파악해야 하는 업무 내용을 항상 회의 시간에 본인이 스터디하듯이 하나하나 물어보며 공부하고 본인이 이해를 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업무 방식이 회의 시간을 한없이 늘어지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B부장은 자신은 평소에 너무나 중요한 보고 준비나 다른 일을 해야 해서 회의 준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이 불평이라도 할라 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 때는 말이야, 부장 정도 되면 실무는 하지도 않았어.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다 하고 보고서에 사인만 하면 되었지”
그렇다! B부장은 우리가 말로만 들어왔던 바로 그 “꼰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