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 여행은 특별하다. 언어, 문화 인종 등이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지친 육신과 마음에 위안이 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작은 경우라도 타인과 소통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관계에 상당한 힘을 쏟는다. 관계 속에 긍정적인 힘을 얻기도 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힘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도 있다.
내 경우엔 관계에 있어 크게 지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관계를 유지하는데 많은 힘이 들어갈까 하여 일부로 가벼운 관계 맺는 걸 선호하는데, 그렇다고 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정이 있는 사람은 일부로 정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아마... 있을 거예요^^). 정이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정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크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정이 많아 보이지만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
마음을 열지 않는 그도 열고 싶으나 그게 쉽지 않음을 안다. 상처받은 경험이 있을 수도 있고 상처를 줬던 경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험이 발목을 잡아 또 그런 상황이 올까 두려워한다. 기우(杞憂)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처지와 상황은 모두 다른 법이니까.
언어학자 라캉은 사람의 언어를 기표(記標)와 기의(記意)로 나눴다. 쉽게 말하면 기표는 소리, 행동, 표기 등 의사를 전달하는 요소, 전달되는 기표가 의미하는 걸 기의라고 부른다. 같은 말을 들어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듯 내 의도와 다르게 내가 하는 말(기표)은 상대방에게 전혀 다르게 전달(기의) 될 수 있다.
관계의 어려움은 여기서 나온다.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면 말이 통하기에 서로가 의도하는 바가 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하나의 단어를 두고 생각하는 의미가 전혀 다를 수 있기에 내가 전하는 말이 상대에게 내 의도대로 백 퍼센트 전달되지 않는다. 이를 라캉은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한 채 그 위로 미끄러진다’라고 했다.
내 기의는 기표에 미끄러져 백 퍼센트 전달되지 못하기에 둘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대화, 행동, 표기 등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관계 맺는 걸 어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했다. 내 의도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더라도 괜찮은 관계, 지금 내가 속한 곳에서만 관계를 맺고 헤어지면 어차피 보지 않을 사람들이란 생각.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러면서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한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여행을 통해 풀 것이다. 여행을 하며 내 고민과 관계의 어려움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는 걸 느끼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와 사회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여행을 싫어하진 않지만 여행 보다 글로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어 글을 쓰며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있다.
나름 정리한다고 하지만 아직 관계에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하겠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내 마음을 다 열지도 못하면서 무리하게 대화를 시도하다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관계를 가볍게 여겨 깊은 마음을 가지고 다가와 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미움받기 싫다는 전제만큼은 확실하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미움도 상처도 받고 도움도 받겠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야 어떤 식으로든 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