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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nker Dec 31. 2019

익숙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CHAPTER.1

집이 없는 상태로의 6년간의 기록.
내가 집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내가 히피가 된 이야기.
히피에세이를 씁니다.
Another chapter to our story.
챈커(CHAENKER)입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와의 마지막 인사는 단순했고, 무척이나 무미건조하여 콧구멍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건배”


독일에서 온 수헬라와 셀린은 가고 싶다 노래를 불렀던 엘니도로 며칠 전 떠났다. 이탈리아에서 온 루카는 호스텔을 만들겠다며 발리로 떠났지. 그렇게 모두가 떠나갔어.

내가 코론에서 머무는 2018년의 마지막 날, 루카와 난 코론의 하나밖에 없는 한식당에 갔어. 루카가 날 데리고 가더라고. 분명 나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겠지. 하지만 루카는 음식이 별로였나 봐. 퉁퉁 불은 라면과 반줄도 먹지 못한 김밥을 앞에 두고 한국은 최고라고 맛있다고 외치는 거야, 하지만 양은 줄지 않고 왜 먹지 않냐고 하자 괜한 어설픈 젓가락 탓만 하더라고. 나는 그런 그에게 뭐라도 보여 주어야겠다 싶었어. 냉장고에서 300페소씩이나 하는 소주와 맥주를 꺼내 들었지. 그리고 현란하게 소맥 한 컵씩을 만들어냈어. 섬세하게 비율을 맞추고 잔을 쳐 거품을 만들어 내는 나를 보고 그는 와우를 연발했고, 다시 예쁘게 웃어줬어. 나는 그런 그에게 잔을 쥐어준 채 건배를 가르쳤지.



루카야 건배. CHEERS. 한국에선 HELLO과 BYE을 이렇게 표현해.
오늘의 건배는 BYE 2018! HELLO 2019! 그리고 잘 가 루카야라는 뜻이야




그렇게 건배가 난무했던 우리의 자리엔 루카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있었어. 그 한식당은 사람이 많아서 의자만 비어있다면 합석은 의사를 묻지 않고 진행되었지. 내 옆에 앉은 호주 남자는 해물라면과 김치라면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여긴 한국 식당인데 아무도 한국인이 아니네? 오직 너만 한국인이야! 그래서 말인데 이거 맛있니? “라며 너스레를 떨더라고. 무척 성가 실정 도로 수다스러운 아저씨였어. 나는 루카와 단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 때문에 자리는 소란스러워졌지. 그는 여자 친구와 함께 필리핀에 왔대, 삼 주전엔 여자 친구가 보라카이에 가고 싶다며 혼자 떠나버리고 자신은 다이빙이 하고 싶어서 이곳에 남았고. 여하튼 그렇게 우린 무자비로 건배를 외치며, 회식 분위기를 만들었어. 나는 막내 신입 나부랭이. 열심히 소맥 말기에 바빴지. 그리고 소리 없이 열심히 홀짝이는 데에만 집중했어.

싫었거든 이제 집까지 물어보지 않고도 잘 찾아갈 수 있는데 가방을 품에 꼭 안지 않아도. 칠렐레 팔렐레 가방을 흔들며, 동네 개한테도 ‘헬로맘’을 외칠 수 있는데, 또 떠나야 한다니. 그렇게 무수한 생각에 빠져 또 한 컵을 비워냈어. 수다스러운 아저씨가 뭐라고 떠드는지도 잘 들리지가 않았지. 해물라면이 불어 터질 정도로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놓던 아저씨는 한국어로 딜리셔스가 뭐냐며 묻더니 신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던 거 있지.


“마시써! 마시써! 코리안 푸드 쏘 쿨!”


대머리 아저씨의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참 ‘러블리’ 했어. 여하튼 그도 이렇게 나를 스쳐 떠났단다. 내일이면 세부로 간다며, 그곳에서 다시 여자 친구를 만날 거라는 말을 남기고는. 다시 루카와 나만 남았지. 아저씨가 떠나자 우리 사이엔 정적이 흘렀어. 허전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식당을 나오며 루카는 담배 한 대를 물었어. 그리고 불을 붙이며 말했지


“Fucking travel”


루카도 때때로 여행이 싫대. 얘도 꽤 오래 여행했다지 아마?

미얀마에만 육 주 정도 있었을 걸 인도도 태국도 아프리카도 브라질 페루도.

합치면 몇 년은 될 거야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로 간 이탈리아를 떠나 온지만 일 년 반이 되었다니까. 우리는 떠나는 삶에 대해,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 우리가 갈망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야, 그저 우리는 아름다움 속에서 살고 싶은 것뿐인데. ‘homeless’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땀 냄새에 맥주 지린내가 나는 노숙자가 되어버렸으니 말이야, 나는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하고 떨어지더라고,

그 순간 내가 오십 번도 더 봤던 영화 '레옹'에서 레옹이 죽기 전 했던 말이 떠올랐어


"I wanna be happy, sleep in the bed, have roots"

나는 행복해질 거야. 침대에서 편하게 잘 거야. 그리고 뿌리도 내릴 거야.


사랑을 깨달은 레옹이 마틸다를 홀로 탈출시키며 했던 말이었지. 너는 내게 진정한 삶을 알게 해 주었다며. 나는 그 대사를 들을 때마다 생각해. 나도 진정한 삶을 그리고 사랑을 깨닫는다면 그토록 원하던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하고, 한참을 울던 나는 루카에게 이야기했어.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고, 유리와 같은 모래를 만나고, 별과 같은 바다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큰 나무가 될 거라고, 뿌리를 깊게 내리고, 더 이상 나는 떠나지도, 홀로 남게 되지도 않을 거라고. 영원히 못 볼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See you'라고 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늘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그래서 'See you tomorrow'를 이야기할 수 있는 무척 커다란 나무가 될 거라고. 이주 동안 루카와 나는 정말 많이 웃었어.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의 그를 사랑하게 되었지. 물만 보면 나를 번쩍 들어 내동댕이치는 그는 얼마나 장난꾸러기 인지 몰라.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잠깐의 눈빛 교환 후 '보나베띠 또'를 외치고, 레게 바에선 인생은 레게라며 춤을 췄어. 정말 숨도 못 쉴 만큼 많이 웃었지. 무인도에 떨어져선 물고기를 잡을 궁리를 하고, 조류에서 떠내려가며 우린 헤밍웨이라며 으스대었어. 그리고 늘 우리는 갈망하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


하루는 유리창 너머로 머리를 붉게 염색한 여자가 타투를 하는 거야 그녀는 '아모르파티'를 발목에 새기는 중이었는데, 나는 아모르파티가 어디에서 열리는 파티냐며 깔깔댔어. 루카는 스페인어를 꽤나 잘해. 아모르파티, Amor fati는 party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운명의 사랑을 이야기한다며 알려주었지.

"너는 아모르파티를 믿니?" 그가 물었어.

"사랑은 단지 느낌일 뿐이잖아. 같은 음식을 어디에서 누구랑 먹느냐에 따라 달리 느끼는 것처럼 “ 하고 나는 답했어.


훌쩍이느냐 말을 더 잇지 못했던 내게 루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나는 그래서 얘가 참 좋아. 내게 필요한 것이 뭔지 알아서 침묵을 지켜주는 애거든, 그리고 이번에도 내게 필요한 여유와 침묵을 알아서 떨어져 걸어주었어, 그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 우는 나를 기다릴 뿐이지.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달라 곧이어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더라고, 괜찮을 거라고, 내일 너는 다시 마닐라로 갈 테고, 또다시 사람을 만날 거라고, 그곳에서 너는 아모르파티를 만날 수도 있을 테고, 그땐 운명적인 느낌을 반드시 믿게 될 거라며,


그래도 무섭다면, 발리로 와서 쉬다가도 돼. 나는 늘 발리에 있을 거고, 네가 머문다면 언제나 무료야. 대신 하루에 두 시간 일을 도와야 해. 내게 코론은 망고 너야



그의 망고 한마디에 눈물을 닦기도 전에 웃음이 나버렸어. 아주 짧게 반삭을 한 그의 뒷모습을 나는 키위 같다고 놀려댔거든. 그래서 그는 복수를 한다며 나를 딸기라고도 불렀다가 사과라고도 불렀다가 망고라고도 부르지. 천천히 걸어 우리는 호스텔로 들어갔고, 이만 대충 닦은 채 각자에 침대에 누웠어. 그리고 아래 침대에서 그는 조용히 말해.


"ciao bella"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대답을 하지 않았어. 그리고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Ciao bella’를 검색했지.


‘안녕 내 사랑’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어, 잠에 살짝 들었다가도 몸에 오한을 느끼고 깨버리곤 했지 새벽 여섯 시 반, 나는 무겁게 코론을 떠났어, 물론 루카에게 'see you'라고 인사를 하곤. 여전히 뿌리를 내릴 유리와 같은 모래도 별 같은 바다도 찾지 못했지만, 도망가 숨을 곳이 생겼다는 것이 조금은 든든했어. 내게도 코론은 루카야.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그 아이에게 'See you'라고 한 말만큼은 진심이었기에, 적어도 이번 여행만큼은 외롭지 않았다고, 'Fucking travel'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


I think we'll be okay here, Leon

여기가 좋겠어요 레옹.

귓가에 울러 퍼질 shape of my heart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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