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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Jan 29. 2023

가구 없이 사는 여자   

원래부터 이러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 그리고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재조정하면서부터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 삶의 방식과 태도 역시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가구들이었고 소위 굵직굵직한 살림살이들이었다. 굵직굵직한 살림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나는, 이케아 2인용 소파(외국에서 지낼 때도 이케아 소파를 줄곧 너무 잘 사용해왔어서 한국에 돌아가면 같은 디자인의 요 이케아 소파로 바꾸자고 생각했었다. 감사하게도 아버지께서 컴백 기념으로, 이사 기념 선물로 사주셨다. 그래서인지 이 소파를 매우 아낀다.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물건.이라 명명했다), 슈퍼싱글 매트리스, 큰 원목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가 전부다. 눈에 크게 보이는 살림살이만 치자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불편한 것이 하나 없다. 전자레인지도 많이 사용하질 않아서, 전기밥솥에 밥도 잘 안 해 먹어서 그 흔한 전자레인지와 전기밥솥도 처분한지 오래며 고로 가지고 있지 않다. 요리에는 남다른 애정과 철학이 있는 편이라 요리 재료들과 요리를 위한 살림살이는 나름 갖고 있지만 조촐한 살림살이들을 제외하면 정말 없는 편은 맞다.


얼마 전 이사하면서도 이삿짐센터에서 이사 견적을 내러 오신 분이 아무리 1인 가구라도 이렇게 가구가, 살림살이 없는 분은 정말 처음 봤다는 말을 건넸다. 그래서 이사할 때도 힘들다거나 혹은 이삿짐 정리로 몸이 피곤해지는 일이 없어서 나는 좋다고 생각했다. 오후에 이삿짐을 푸는데 청소하고 내 살림살이를 정리하는데 3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많은 가구가 없어서 많은 살림살이가 없어서 좋은 점도 참 많다는 생각이다.


내 물건들을 한눈에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고 지금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물론 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불필요한지 등을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으며 물건을 찾느라 헤매는 일도 그런 수고도 할 일이 없게 된다.


이렇다 할 가구가 없다는 뜻이지 그렇다고 해서 내 집이 내 살림살이가 초라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취향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집의 분위기를 가꾼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조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명에도 남다른 애정이 있다. 형광등을 켜는 일이 없고 주황빛 등을 켜놓아야 내 마음도 평안하고 차분하고 편안한 상태가 된다.


테이블 보도 꼭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어야 한다. 소파 블랭킷 역시 마찬가지다. 이불도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톤의 이불을 고를 만큼, 나는 내 물건들, 인테리어, 그릇 등에 확실한 내 취향을 고스란히 잘 반영할 줄 안다. 생각해보니 난 모던보다는 코지한, 편안함을 느낄만한 빈티지 느낌을 확실히 좋아한다. 천조각을 좋아하고 쿠션 커버라든지 인테리어 스타일링을 참 좋아한다.


옷들도 설레지 않는 옷들은 과감하게 버렸으며 현재 내 옷들은 계절별로 보자면 겨울 니트 몇 벌,  겨울과 가을 코트 각각 1벌씩, 겨울 스커트 2벌이 전부고 여름옷들은 상의, 하의 다해서 한 층 서랍 공간을 다 차지할 도의 옷들만 남아있다. 이 옷들은 나이 들어서도 나와 함께 할 옷들이다. 겨울 옷은 이 정도로 그리고 필요한 옷은 올 겨울에 장만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화려한 것이 내겐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복잡한 것보다는 심플함이, 조촐함이 훨씬 와닿고 편안하다. 지금의 나는, 수수한 차림과 자연의 색감이 너무나 편안하고 안정적이게 느낀다. 힐보다는 운동화가 편하고 익숙해졌다. 이제는 운동화가 아니면 안되게 되었고 이로인해 내 걸음걸이도 더욱 가볍고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다.


어젯밤 문득 책장을 둘러보다 빈 공간을 발견하게 됐다. 여백의 미 마저도 좋아하는 나이지만 문득 그곳에 내 어릴 적 사진을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냉큼 본가에서 챙겨 온(오래전 엄마가 반짝이는 큐빅들이 각 둘레에 박혀있는 정사각형 액자 두 곳에 내 어릴 적 사진을 놓아둔 것을 내가 챙겨 왔었다) 액자 두 개를 양 쪽으로 세워 놓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을 내 집을 뺑 한 번 둘러본다. "정말 단출하구나. 너 살림이 진짜 없긴 없구나."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거나 없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분명 무엇이라도 채워놓았을 테지. 단지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불편하지 않기에, 필요하지 않아서가 이유다.


많은 짐들로 내 눈과 기운과 에너지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과도한 물건들로 인해 내 마음이 어지러움을 경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살면서 느끼게 된 또 한 가지는, 사람이 사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게 되었고 소소한 것에 유독 즐거움을 느끼고 소박하지만 간소하지만 마음만은 충만한 삶의 낭만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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