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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Jan 31. 2023

왜 똑같은 옷만 입어요?

요즘 아침 저녁 잠깐의 스트레칭에 진심이다. 잔근육이 당겨지는 그 느낌, 잔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바로 그 느낌을 즐긴다. 온몸이 쫙쫙 펴지는 듯한 기분이 내 에너지를 파릇파릇하게 돋게 한다. 스트레칭 하나에도 내 기분과 태도를 담는다.


이윽고 커피 한 잔을 마시던 중 핸드폰 사진첩을 들여다보다 한 장의 사진에 순간 멈칫했고 잠시 그때의 기억이 스쳤다. 사진을 찍어 간직해 두는 이유중 하나는 이런 이유가 아닐까. 사진 한 장에 그시절의 나를, 그때의 내 감정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게되는 것, 사진 한 장에 원하면 언제든지 그때로 돌아가 볼 수 있다는 것...


내 시선을 멈추게 한 사진은 몇 년 전 광화문 교보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니체와 마리아 릴케의 책을 무릎에 놓아 찍은 사진이었다. 다른 이유는 딱히 없었고 그날의 나, 그 시절의 내 일상을 그저 담고 싶었던 것 뿐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회사 코앞에 교보가 있었던 터라, 점심시간 짬짬이 혹은 퇴근 후에 1일 1서점 교보문고(광화문 교보로만 가는 편이다. 그저 책의 배치와 분위기, 취향일 것이다)를 드나들던 그때... 늘 그렇듯 평범한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진짜 나라는 사람은? 갖은 집착과 고뇌로 마음이 참 복잡하고 어두웠던 시절이기도 하다. 꽤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이마저도 그때 그랬지... 참 그랬었지... 하며 미소짓는다. 아침일찍 1,000원 짜리 맥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가던 일, 마마스, 폴앤폴리나 빵집...등 소소한 행복을 내게 선물했던 귀한 시절이기도 하다.


무튼 직장인이었던 때, 소위 나름 커리어우먼이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외적인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단연 옷.일 것이다.  


"초아씨는 왜 맨날 똑같은 옷만 입어요?" 이주 전쯤인가 일하다 알게 된 한 분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럼에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는데 덤덤한데다 무심하기까지한 내 반응에 상대방이 외려 더 당황한 듯했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멋진 대답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아, 원단이나 색감이 제 취향이라, 지금의 저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매일 같이 입어요. 므흣" 그분 왈, 내가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녀서 궁금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혹은 같은 옷을 입는지 아닌지 등에 일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어서인지 나로선 궁금한 사항이 일도 아닌 질문이긴 했지만, 물어본 사람은 또 그럴 수 있겠다.한다.


매일, 같은 롱스커트에 같은 상의를 입는데 요즘 사람들 같지 않아서 물어본다 했다. 무튼 있는 그대로 답했더니 금세 수긍하는 눈치다. 사실은 요즘 나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건데, 그분도 아닌 걸 물어보진 않았으니, 팩트를 말했으니 맞는 말했다.는 생각이다.


지금 내 옷장엔 정말 입는 옷들만 남아 있어 한눈에도 어떤 옷인지 금세 알 수 있는데, 새 옷을 사지 않은지가 꽤 오래 됐기도 했고 이유인 즉슨, 정말이지 새로운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 그보다는 빈티지 옷들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졌다는 것, 새옷이나 신발 가방을 사는 일보다 나의 내면을 치장하고 가꾸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데 있다. 이런 마음이 충만해지면 충만해질수록 확고해지면 확고해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게 된다. 전혀 신경쓰이지 않게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해도 초라해보이지 않을 것, 깨끗할 것, 분위기를 잃지 않을 것, 나다울 것.이라는 내 나름의 원칙이랄까.그런 것들이 있다. 고로 내가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초라해보인다거나 없어보인다거나 찌질해보인다는 생각은 더욱이 없다. 또 굳이 있어보여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다.


세탁을 해야 할 땐, 치마를 다른 걸 입는다든지, 상의를 다른 걸 입어준다든지 돌아가며 입긴하지만 거의 비슷한 패턴과 색감이다. 상의 하의 각 2벌 씩 도합 총4벌로 올 겨울 충분히 지내고 있고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은 물론 내가 불편하지 않는데, 내가 다른 옷이 필요하지 않은데 무슨 상관이던가.한다.


새 옷을 사는 대신에, 새로운 가방을 사는 대신에, 새로운 신발을 사는 대신 날 위한 신선한 식재료를 사는 데에, 평소 배워보고 싶었던 도전해보고 싶었던 무언가에, 내 취향의 그릇 하나를 이따금씩 사는 데에 쓰다보니 내 일상이 더 풍족해지는 것은 물론 내 마음도 알뜰함과 살뜰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난 결코 별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요즘 내 삶의 태도들이 주변에서는 영 낯선 모양이다. 옷만 해도 그렇고 최근 또 들었던 말은, 어느 날인가 내가 가방에서 조그마한 도자기 컵 하나를 꺼내 믹스커피를 타 먹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이것도 팩트라, 무어라 할 말이 없었지만... 나는 종종 그렇게 도자기 컵을 가지고 다닌다. 믹스커피 진하게 딱 한 잔 타 먹을 정도의 용량인 앙증맞은 그러나 멋스러운 도자기 컵을 깨끗하게 씻어 닦은 뒤, 모아둔 종이포장지를 재활용해 한 번 싸준다. 그러고선 밖에서 믹스커피나 차를 마실 일이 생기면 꺼내어 그곳에 타먹는다.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아 좋고 이런 기분도 좋고 내 취향대로 행동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가방에서 도자기 컵을 꺼낸게 다소 충격적이었다.(워딩 그대로였다)라는 말을 들을 일인가.싶기도 하지만 또 나와는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취향대로 살다보니 가끔은 별나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취향껏 산다는 건 결코 별나거나 유별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는 내 믿음인데, 그러다보니 남의 눈이나 시선이 날 쉽게 흔들지 못한다.


고로 그러면 그럴수록 삶은 편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여전히 소비하는 즐거움보다 소비하지 않는 즐거움이 더 크다.


한 시간 전 쯤 모아둔 종이백 몇 개를 재활용했는데 내 감성의 다소 두껍고 탄탄한 재질의 마마스 종이백은 양말을 담아 놓는 수납칸으로 만들었고 스타벅스에서 받은 얇은 재질의 작은 종이봉투 2개는 입구부분을 손으로 오물조물 접어가며 빈티지스럽게 만들어 각각 감자와 양파를 담아 베란다에 잘 두었다.


마마스 종이백 하나에 내 마음이 왜 이리도 살뜰해지는지. 군더더기 없는 간소한 삶이 이렇게도 내 적성이었는지 싶을 정도로 나는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누가 뭐래든 내 마음이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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