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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l 03. 2019

다시 못 올 줄 알았던 부다페스트에 왔다

이탈리아를 떠나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지난 여행에서 부다페스트는 잠시 5시간 정도 머물다 간 도시였다. 심지어 밤늦게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로 아침 일찍 슬로베니아로 떠났었다. 부다페스트에 머무는 5시간 동안 중앙역 근처의 호스텔에서 씻고 간단하게 식사한 뒤에 새벽에 출발하는 슬로베니아 행 열차를 탔다. 

딱히 부다페스트가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때도 지금처럼 미리 검색해온 곳을 방문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꼭 가야 한다고 나를 옭아매었던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를 향해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부다페스트를 떠나며 나중에 꼭 다시 오자고 이야기했었는데, 형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5년 만에 어머니와 함께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동유럽에 위치한 부다페스트는 물가가 무척이나 저렴하다. 1.5리터 생수 한 병이 400원도 안 하는 물가라니. 거기에 베네치아에서 무척이나 고생했던 모기도 없는 데다, 이번 숙소에는 세탁기가 있어서 밀린 빨래까지 완료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실 별것 아닌 것이 큰 기쁨과 행복이 되기도 한다. 나는 모기에 시달리지 않는 것, 밀린 빨래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부다페스트에서는 또 다른 행복은 바로 온천이다. 물가가 저렴한 덕분에 어머니와 나는 매일 온천욕을 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온천은 한국의 온천과 닮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남자, 여자가 나뉘어서 탕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혼탕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어느덧 여행의 반환점을 돈 지금 어머니와 나는 여행 초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평소보다 조금 많이 걸은 날에는 발바닥 뒷부분이 아프고, 도시를 옮기는 날이면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옮기느라 어깨가 자주 뭉친다. 숙소에 욕조라도 있다면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면서 피로를 풀었을 텐데, 욕조를 찾아보기 힘든 유럽에서는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처음에 부다페스트 온천 일정을 넣을 때만 해도 어머니를 위해서였지만, 막상 온천을 즐기는 것은 나인 것 같다. 이럴 때면 어머니와 여행을 준비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형과 여행했더라면 온천을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부다페스트에서 또 특이했던 점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더불어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은 동유럽 3개국 코스로 묶여서 단체 관광이 활발한 편이다. 실제로 부다페스트 거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야경으로 유명한 부다페스트의 주요 야경 포인트에 가보면 더욱 쉽게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국회의사당 야경을 정면으로 가장 또렷하게 볼 수 있는 포인트인 어부의 요새에 가보면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여행지까지 가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어머니에게는 무척이나 고맙고 좋은 일이었다. 애쓰지 않아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이곳에도 있다는 사실과 조금은 마음 편히 사진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안도감과 위안을 주었다. 여행 중에 마주친 수많은 한국인들 덕분에 어머니 또는 나 혼자 남겨진 사진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진도 여럿 얻을 수 있었다.

매번 사진 촬영을 부탁할 때면 누군가에게 사진을 맡긴다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각각의 사람마다 사진을 찍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상체만 찍는 사람, 상 하체 전체가 다 나오게 찍는 사람, 배경에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 포커스를 사람에게만 맞추는 사람 등등 사진을 찍는 방법이 모두 다르기에 매번 나의 방식이나 나의 사진관을 설명하는 것은 무척이나 죄송스럽고 번거로운 과정이다. 심지어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설명하려니 얼마나 힘들던지... 

하지만 같은 언어가 통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는 것은 조금은 덜 민망하고, 덜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모국어로 간단하게 요청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만날 때면 괜히 반가운 마음이 앞서곤 했다.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건 부다페스트가 지금껏 지나온 다른 여행지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는 것이다. 나에게 부다페스트가 특별한 이유는 내가 맛보지 못했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행에서 아쉽게 스쳐 지나갔던 도시였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맛보는 행복이 더욱 크고, 달게 느껴진다. 5년 동안 아쉬움은 맛있게 숙성되었다. 다시 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쉬움을 남겨놓는 것 역시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다시 이곳에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놓는 것,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만드는 것은 도시에 대한 여운을 남기고, 아쉬워서라도 다시 이곳을 찾게 한다. 모든 것이 좋아서 여행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아쉬움도 있었고 힘든 것도 있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있었던 일과 추억이 다시 그곳으로 발길을 인도하는 것 같다. 지난 여행에서 형과 부다페스트를 즐기지 못했기에 오히려 어머니와 부다페스트를 더욱 잘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무언가 아쉬움을 남겨두고, 아쉬움이 숙성될 시간을 주는 것은 나중에 더 큰 행복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체크리스트에 적힌 할 일을 마무리하듯 도시를 모조리 파헤치듯 여행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은 지난 여행보다 아쉬움이 클 것 같다. 지금까지 지나온 도시에도 하나씩 아쉬움을 남기고 왔다. 오르세 미술관, 바르셀로나타 해변, 로마의 젤라또 가게, 피렌체 투오모 종탑, 베네치아 리도섬. 이런 아쉬움들이 모여 언젠가 나를 다시 유럽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다시 그곳을 가기 위해, 그곳에서 아쉬움을 털어버리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올 것이다. 마치 5년 전에 아쉽게 떠나보냈던 부다페스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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