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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l 01. 2019

언어라는 작은 선물 준비하기

여행이 지속되면서 이제는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주 조금 사그라들었고, 수없이 많은 외국어 간판과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이곳에서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도 아주 조금은 사라졌다. 벌써 4개의 언어(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지났다. 겨우 각 나라의 인사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쯤 나라가 바뀌고, 언어가 바뀐다. 나는 매번 각 나라에 발을 디디기 전에 안녕, 잘 가, 고마워 정도의 인사말은 꼭 숙지하고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수없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기 때문에 꼭 현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영어로 말해도 사람들이 얼추 알아듣는다. 하지만 첫인사 또는 감사의 표현 정도만이라도 그 나라의 말로 했을 때 상대방의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들의 미소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미리 가이드북과 검색을 통해서 인사말을 숙지한다. 

한국에서 길을 걷다가 외국인이 조금은 어눌한 발음이지만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표현할 때 아주 옅게 웃음이 지어지듯이 나도 여기서 만나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웃음이라는 작은 선물을 주고 싶다. 그렇게 옅게 웃음 짓은 얼굴을 볼 때면, 아주 조금이라도 언어가 통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위로 또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스페인 하숙’이다. 스페인하숙이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대부분 한국 순례자가 오지만, 가끔 외국인 순례자들도 방문해서 각자의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 ‘스페인 하숙’의 주된 관심사는 순례자 개인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순례자들보다 프로그램의 출연자 3인방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식사를 담당하는 차승원, 청소 및 각종 일을 담당하는 유해진, 보조 역할을 담당했던 배정남까지. 각 출연진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순례자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쉴 틈 없이 노력했다. 나는 출연진 3인방 중에서 모든 언어를 담당하는 배정남에게 특히 눈길이 갔다. 자신의 역할을 제작진에게 미리 전해 듣고는, 수첩에 스페인어 식재료 명칭을 빼곡하게 적어오고, 물건을 사러 갈 때면 조금은 부족해도 스페인어로 자신 있게 주문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곧 증명할 수 있는 높은 외국어 성적이 있다는 것과 같다. 단적으로 영어만 해도 토익, 토플, 아이엘츠 SAT 등 각종 시험이 존재하고, 외국어 실력은 곧 성적으로 증명된다. 만약 배정남이 외국어 시험을 응시한다면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는 현지인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순간순간 모르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적어둔 노트를 참고해서 대답하기도 하고, 손짓 발짓을 이용해서 소통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배정남의 서툰 스페인어 실력으로도 현지인들은 알아듣고 원하는 물건을 주었고, 친절하게 응대했다. 배정남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페인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고,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진심과 열정은 단순히 성적으로 나타낼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여행의 모든 의사소통은 내가 담당하고 있다. 어머니는 이렇게 여행을 올 줄 미리 알았다면 학창 시절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데 하며 아쉬움을 종종 표현하신다. 나 역시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인사말만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문장을 숙지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수많은 외국인이 방문하는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자연스럽게 친절을 베푼다. 나의 어눌한 영어를 천천히 기다려주고, 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대답해준다. 내가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현지인은 현명하고, 오히려 나를 격려해준다. 이 먼 곳까지 온 우리를 충분히 아껴주고 환영해준다는 느낌을 매번 경험한다.

이런 환대를 경험하다 보면 외국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 그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외국어를 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외국인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어쭙잖은 실력이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손짓발짓 하면서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싶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든 나를 환영해주었고,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었고,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외국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받은 환대를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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