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하루 일과는 보통 아침 10시쯤 시작한다. 아침 10시쯤 일어나 침대에서 조금 뒹굴거리다 어머니 혹은 내가 먼저 씻고, 씻지 않는 사람이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한다. 아침 겸 점심은 보통 토스트와 파스타 혹은 볶음밥과 라면. 이 식사로 저녁까지 버텨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챙겨 먹으려 노력한다. 식사가 끝나면 식사를 준비한 사람은 씻으러 가고, 먼저 씻은 사람은 설거지 및 뒷정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둘 다 준비가 끝나는 시간은 보통 12시에서 1시 정도, 준비를 마치면 천천히 집 밖으로 나선다. 한 도시에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머무르는 덕분에 우리는 하루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않는다. 여행 초반 런던과 파리에서 시차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 질 무렵까지 돌아다니는 일정을 해본 결과 어머니에게 무척 부담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아침에 여유롭게 일어나서 여행했다.
그렇게 보통 7시 혹은 8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어머니와 나 둘 다 저녁이 아닌 아침에 씻는 편이고, 잠을 자기 전에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 정도만 하는 편이라 아침처럼 식사를 한 명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준비한다. 저녁은 보통 고기나 생선을 구워 먹거나, 찌개를 끓여 밥과 함께 먹는다. 아침이 양식 혹은 한식이라면, 저녁은 대부분 한식으로 해결한다. 함께 준비하는 식사이기 때문에 설거지도 번갈아 가면서 한다. 가끔 저녁에 외식하는 날에는 설거지가 없어서 무척 행복한 기분을 맛보기도 한다.
여행 초반에는 음식을 해 먹어도, 간단하게 고기를 구워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밥을 하고, 찌개를 끓여 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준비하면서 2인 가족의 삶을 잠시 대리 체험해보는 중이다. 식사를 함께 준비하고, 집안일을 함께 하고, 서로가 서로의 대화 상대가 되는 아주 단순한 2인 가족의 삶.
사실 우리 가족은 4인 가족임에도 각자 움직이는 시간대가 모두 달라서 가족끼리 함께 식사하는 날은 무척 드물다. 보통 어머니가 반찬을 해 놓으면, 각자 밥을 먹어야 할 시간대에 스스로 챙겨 먹는 편이다.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고 오는 경우도 많으니 서로를 기다리기보단 혼자서 차려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하는 반찬도 모두 다르니 각자 알아서 시장에서 사 오기도 하고, 간단하게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도 한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이런 경향은 완전히 뿌리내렸다. 아버지도 형도, 어머니도 나도 각자의 일정 때문에 모두 바빴고,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가족 중심의 활동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좋게 표현하면 우리 가족은 서로의 가치관과 삶을 존중한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모두가 자신만의 벽을 치고 살고 있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해왔기 때문인지 여행 중에 매일 어머니와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새삼스럽고 낯간지러웠다. 한국에서는 밥을 혼자 차려 먹는 것도, 밥을 다 먹은 뒤에 처리도 귀찮아서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곤 했는데, 여행에서는 어머니와 모든 순간 함께 다니니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와 어떤 이야기를 해야 보통 아들 같은지, 어떤 대화 주제가 적절할지 매번 고민한다. 밖에서는 무척 활달하지만, 집에서는 조용한 아들이라 더욱 어려웠다. 어머니와 모든 순간을 함께해야 하는 이 상황은 나에게 무척이나 생경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지만, 차츰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각자의 건강 상태와 여행 정보 외에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각자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주제를 가지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꽤 많은 대화를 했음에도 여전히 어머니와 나눌 대화의 소재가 아직도 무척 많다는 것을 매 순간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껏 대화가 부족했구나, 어머니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시는지, 어머니의 결혼 이전의 삶 그리고 결혼생활에 대한 것까지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 알지만, 몰랐다. 아니 어머니를 알고자 했던 노력이 많이 부족했다.
다른 가족이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족 사이가 무척이나 친밀한 가족도 있고, 우리 가족처럼 데면데면한 가족도 있고, 극도로 악화된 상태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가족 역시 있었다. 어느 가족의 형태가 정답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들에게 획일화된 정답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의 또 다른 형태일 수 있으니까.
다만, 나 역시도 우리 가족이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 조금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조금 더 많은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와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 전체가 함께 여행했다면 오히려 대화가 없었을 것 같다. 단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을 더 가질 수 있고, 곁을 더 많이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무척이나 감사하고, 무척이나 기쁘며, 무척이나 뿌듯한 여행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똑같은 상태로 돌아갈까 겁나기도 한다.
어머니와 나는 25년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냈고, 지금은 거리를 좁혀 나가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서로에게 조금씩 곁을 내어주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아들이라서 딸만큼 못한다는 것이 핑계라는 사실을 매일 실감하는 과정에 있다. 내가 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머니에게 너무도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어머니와 유럽 여행의 가장 중요한 계기는 5년 전 형과 떠난 유럽 여행에서 만난 모녀였다. 당시 나는 로마의 한인 민박에 머물고 있었다. 한인 민박의 수많은 구성원 중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사람은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는 딸이었다. 딸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고, 많은 대화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나에게 어머니와의 여행이 무척이나 힘겹지만 그보다 큰 보람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와의 대화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어머니와의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5일의 여행이 나의 이런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