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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n 26. 2019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

요 며칠 매우 심한 무기력증에 빠졌었다. 쓰고자 하는 글의 소재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저 보는 것, 먹는 것, 자는 것에만 집중했다. 여행 동안 글을 쓰겠다고 꾸역꾸역 아이패드와 노트북을 가져왔는데 겨우 며칠 만에 글을 쓰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 혹은 겪고 있는 상황들을 글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다. 그럼에도 글로 남기지 못했던 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너무도 평범한 생각이지 않을까’하는 자기 검열과 ‘겨우 이런 글을 누가 보겠어’하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히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특별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사람을 무척이나 얕잡아봤다. 이 정도 글은 나도 쓰겠다 싶은 마음에 여러 작가를 무시했고,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하며 멋진 글을 써내는 작가를 무척 부러워했다. 나에게는 그만한 재능이 없다는 자격지심이 있기에 더욱 멋진 글을 써내는 작가들이 부러웠다. 직접 부딪힘으로써 내가 겪게 될 상처가 두려워서 멀찍이 서서 그들을 깎아내렸다. 그것은 너무도 편리하면서도 나에게 익숙했던 방식이었다. 


그러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내 생각을 조금이나마 글로 남겨보자는 생각을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지금까지 매번 여행의 밤은 지독히도 심심해서 밤마다 핸드폰을 뒤적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날그날의 일상을 글로 남겨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상 글을 조금씩 쓰면서 글을 쓰는 것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어렵다고 느꼈다. 소재를 떠올리는 것, 소재와 함께 내가 했던 생각을 기록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힘든데, 내가 자주 쓰는 문체나 단어까지 하나하나 고민해서 기록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같은 단어를 한 문장에 여러 번 쓰지는 않았는지, 문장이 비문은 아닌지, 문장이 너무 길어 읽기에 지루하진 않은지 등 글을 쓰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았고, 글을 쓰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 

수많은 작가의 에세이에서 자주 찾을 수 있었던 문장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세계였기 때문에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며 그냥 넘겼던 문장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글을 써보기 시작하자 이 문장이 얼마나 적확한 문장인지 생각했다. 

나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다. 최근 출판되는 에세이는 1시간 혹은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읽을 정도다. 그렇게 한두 시간 남짓한 독서를 마치고 난 뒤 에세이를 평가하면서 참 책값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했다. 한두 시간의 독서를 위해서 만원이 넘는 정도의 책값을 지불하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떨어져서 잠시나마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니 책값이 무척이나 낮게 책정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노력 혹은 그들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책 한 권에 만원 남짓한 금액은 절대로 적은 가격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소재를 찾기 바빴을 것이고, 하루의 일상을 부지런히 기록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풀이 죽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평가하는 일은 너무도 쉽다. 그것의 좋고 싫음, 장점과 단점을 느낀 그대로 적나라하게 말하면 된다. 하다못해 뉴스 기사 하나에도 수십 개 혹은 수백 개 많게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는 요즘이다. 누군가의 노력의 결과물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댓글은 찾기 쉽지만, 결과물을 칭찬하는 댓글은 찾기 쉽지 않다. 이처럼 자신의 입장에서 남을 판단하고, 남이 만든 창작물을 판단한다.

창작이 사라진 세상, 아무도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는 세상을 생각해봤다. 아무도 영화를 만들지 않고, 아무도 소설을 쓰지 않으며, 아무도 신문 기사를 쓰지 않고, 어떤 발명도 하지 않는 세상. 창작이 사라진 세상을. 사람들의 비판이 두려워서, 나의 가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내 노력이 헛된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창작이 사라진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행복할까. 그런 세상은 사람들이 무엇에 즐거워할 수 있을까.  

이제 막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한 초보에 불과하지만, 며칠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은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별것 아닌 나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공감을 자아내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다. 엉덩이로 글을 쓰는 것이 무척이나 힘겹지만,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평가 역시 두렵지만, 조금은 힘을 내어 글을 써보고 싶다. 요 며칠 힘들었지만, 나는 아주 짧은 터널을 지났다고 믿는다. 평생 글 쓰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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