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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n 24. 2019

식구(食口)의 여행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했던 것은 비용 절감이었다. 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숙박비와 교통비를 한국에서 미리 결제했으니 남은 것은 현지에서 방문할 관광지 입장료와 어머니와 나의 식사비용이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끝없는 불안이 나를 잠식했으므로 입장료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렇게 남은 것은 식사비용이었다. 

식사비용은 철저히 나와 어머니의 생각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가장 예상하기 어려웠던 항목이기도 했다. 형과 떠났던 지난 여행에서 식사는 대부분 패스트푸드로 해결했다. 20대 두 명이 여행했으니 오죽했을까.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패스트푸드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무언가를 해 먹기엔 너무도 귀찮았기에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라면을 끓여서 햇반과 먹거나, 고기를 구워 먹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형과 나에 비한다면 요리를 할 줄 아시는 어머니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에 하루의 한 끼 이상은 꼭 집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서 식사하기 위해서는 조리도구 혹은 주방이 필요했고, 나는 대부분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결정했다. 처음 몇 주 동안은 그렇게 여행하는 것이 괜찮았다. 집에서 밥을 먹게 되면, 내가 원하는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었고,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 덕분에 형과 다닐 때보다 먹는 음식의 질 역시 훌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체력이 저하되면서 집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조금씩은 밖에서 외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다 먹은 뒤 설거지하는 것에 체력소모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힘들게 여행하고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은 때로 너무도 지치는 일이었다. 집에서 음식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사용되는 것은 식재료비용뿐 아니라 어머니와 나의 노동력이었다. 지금껏 우리의 노동비용은 간과하고 표면적으로 지출되는 식재료비용만 생각했다. 결국 한 끼 식사를 위해서는 단순히 식재료비용뿐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비용이 포함된다. 그리고 노동은 어머니와 나의 몫이었다. 

사실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 먹는 비용과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비용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특히 물가가 저렴한 한국에서라면 더더욱 비슷할지도 모른다. 음식에 사용되는 식재료를 구입하고, 식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다 먹은 뒤에 설거지까지 사용된 노동력의 총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적은 금액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외식을 선호하는 것은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맛있기 때문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편리하게 식사를 해결함으로써 우리의 노동력을 소진하지 않고 싶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 어린 시절에는 명절마다 할머니 댁에서 제사를 지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명절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는 자주 먹을 수 없었던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내 눈에는 명절에 맛볼 수 있는 맛있는 음식보다 음식을 만드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식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떠올랐다. 그러자 명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의 즐거움과 기쁨을 위해 한없이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 이상 나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우리 집에서 어느 순간 제사가 사라졌다. 제사가 사라져서 좋은 것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행해졌던 누군가가 희생되는 것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의 다짐이 생각났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어머니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OOO의 여행이 되길 바랐다.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라 여행의 동반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익숙한 관계인 어머니와 아들로 여행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조금씩 때로는 많이 부담을 드리면서 여행하고 있었다. 

여행에서까지 어머니가 음식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여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와 식사 준비를 함께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서히 외식의 빈도를 늘려갔다. 밖에서 간식을 사 먹고, 음식을 사 먹는 비용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도 괜찮은데 괜히 밖에서 먹는다고 타박하셨다. 하지만 어머니 역시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 밖에서 사 먹는 것을 더 선호하신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 역시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으셨다는 것을, 어머니가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그 음식점을 기억하기 위해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머니와의 여행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머니에게는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의 다짐이 생각났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어머니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OOO의 여행이 되길 바랐다. 나는 그저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라 여행의 동반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익숙한 관계인 어머니와 아들로 여행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조금씩 때로는 많이 부담을 드리면서 여행하고 있었다.

여행에서까지 어머니가 음식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여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와 식사 준비를 함께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서히 외식의 빈도를 늘려갔다. 밖에서 간식을 사 먹고, 음식을 사 먹는 비용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도 괜찮은데 괜히 밖에서 먹는다고 타박하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머니 역시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 밖에서 사 먹는 것을 더 선호하신다는 것을. 어머니 역시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으셨다는 것을 안다. 어머니가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 그 음식점을 기억하기 위해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머니에게는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지금껏 우리의 여행은 외식하는 즐거움을 배제한 채로 계속됐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외식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 같다. 여행 중에 어머니와 밥을 먹을 때면 언제 이렇게 자주 어머니와 단둘이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국에서는 각자의 삶이 바빠서 가족끼리 밥을 먹으려 해도 약속을 잡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매일 얼굴을 보면서도 밥을 함께 먹지 못하니, 우리 가족은 식구(食口)는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여느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처럼 살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이번 여행은 가족의 여행이자, 식구의 여행이다. 어머니와 단둘이 하는 식사가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지만, 지금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같은 곳을 여행하고, 같은 음식을 나누고,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어머니 덕분에 내가 많은 것을 누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는 스스로 낯선 환경 속으로 들어갔지만, 낯설지 않은 사람과 함께이기 때문에 조금 더 행복했다.

지금껏 나는 여행지에서 돈을 아낀다는 것은 그 순간에는 기분 좋을지 모르나, 여행이 끝나고 나면 후회로 남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목메는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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