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록 Jun 18. 2019

낯선 땅에서 만난 천사, 그에게 받은 넘치는 환대

벌써 6명의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만났고, 6번째 도시에 도착했다. 지금 머무는 곳은 이탈리아 작은 해안 친퀘테레다. 이곳은 해안가 5개의 마을이 합쳐져 친퀘테레라는 하나의 지명으로 불리는 곳이다. 5개의 마을은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집과 너무도 아름다운 해변을 가지고 있어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나는 친퀘테레를 이번 65일의 여행 중에서 유일하게 휴양 때문에 일정에 추가했다. 그저 우리는 3박 4일 동안 쉬면서 5개의 마을을 둘러볼 계획이다. 굳이 이곳에서까지 목표를 정한다면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5개의 마을을 모두 둘러 보기랄까?

여행 첫날, 새로운 숙소로 가기 위해 피사에서 친퀘테레의 마지막 마을 몬테로소로 가는 기차를 탔다. 1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이동하여 몬테로소 역에 도착했다. 이번 숙소의 호스트는 지금까지의 호스트와 특별히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직접 역까지 마중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함께 기차에서 내린 사람 중 몇 안 되는 동양인인 나를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역 앞에서 처음 만난 그는 50대 정도로 보였다. 우리 아버지보다는 조금 나이 있어 보이셨고, 할아버지라고 칭하기엔 다소 젊은 나이로 보였다. 그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숙소까지 걸어갔다. 나중에 알고 놀란 것은 사실 그가 몬테로소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친퀘테레 인근에 있는 라 스페시아에 살고 있다. 기차로는 겨우 10분 남짓한 거리이지만, 매번 그는 손님이 올 때마다 몬테로소까지 마중 나온다고 했다.

또 하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걸을 때면 다리를 조금씩 절뚝거린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거리도 있는 데다, 불편한 걸음걸이를 가졌음에도 그는 역까지 직접 마중 나왔다. 그와 함께 역에서 숙소까지 5분 정도 걷는 동안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여기서는 무엇을 할 계획인지 등 그는 시종일관 애정 어린 말투로 나에게 질문했다. 나에게는 짧았고, 그에게는 조금 길었을 5분이 지나고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숙소까지 5분여 남짓 걷는 동안 그의 숨은 무척 가빠졌고, 3층에 위치한 숙소에 올라가서는 잠시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잠시 가쁜 숨을 돌리고 난 뒤 그는 각 방에 대한 설명과 주방 사용법, 근처 괜찮은 레스토랑의 위치와 슈퍼마켓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모든 설명이 끝나고 언제든 어려움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 달라며 집 소개를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여행을 통틀어 이토록 따뜻한 환대를 처음 마주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친절한 집주인을 만나면서도 마음이 조급했다. 당장 그에게 물어보고 답을 얻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체크아웃과 관련된 작은 염려였다. 

에어비앤비에 적혀있는 그의 숙소 체크아웃 시간은 낮 12시, 다음 도시 밀라노로 이동하는 기차는 오후 5시. 체크아웃과 열차 탑승에는 약 5시간의 차이가 있었다. 체크아웃 이후에도 가능하다면 잠시 숙소에서 머물다 갔으면 좋겠는데, 만약 다음 예약자가 온다면 어쩌지. 체크아웃 시간에 무조건 나가라고 하면 어쩌지. 나는 그렇게 친절한 호스트를 만나면서도 내 걱정에 온 정신이 팔려 그의 친절함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걱정이 가득 담긴 질문을 그에게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 친구, 나는 일요일에 이곳에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머물고 싶은 만큼 마음껏 이곳에서 머물다가 가”

그제야 내 얼굴에는 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내 마음이 조금 놓였다. 

사소한 걱정 때문에 그의 친절을 받아들이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토록 나를 환대해준 집주인은 처음이었는데, 내가 그토록 불신하고 의심하는 여행지에서 만난 천사였는데 나는 그를 뒤늦게 알아보았다. 실컷 혼자서 모든 걱정을 다 한 뒤에야 비로소 그의 친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모든 안내를 마친 친절한 호스트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떠나고, 나는 잠시 창밖으로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에게 딱 맞는 리듬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걷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매번 새로운 손님이 올 때마다 몬테로소 역으로 맞이하러 오는 호스트, 집에 대한 소개를 매번 직접 하는 호스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한없는 친절 덕분에 에어비앤비에서 그의 평가는 당연히 최고다. '슈퍼 호스트, 모든 리뷰 별 5개'. 그가 사람들로 받은 평가였다. 나 역시 그에게 별 5개를 주었다. 나에게 최고의 친절을 베풀어 주었기에, 나에게 넘치는 환대를 주었기에. 어머니 역시 똑같은 감정을 느끼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만나본 호스트 중에서 최고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친퀘테레를 떠올리면 그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다는 말도 해주셨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은 단순히 그 순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나 역시 앞으로 친퀘테레를 떠올릴 때마다 그의 얼굴이 계속 떠오를 것 같다.      

그를 만나고 난 뒤 아주 조금은, 이곳에 있는 사람을 믿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내 눈에 있는 불신의 안경을 벗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천사를 마주했고, 천사를 마주했음에도 여전히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한 나 자신을 마주했다. 결국 여행은 나의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또 안 좋은 생각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의 환대 덕분에 나의 마음은, 나의 여행은 조금 더 풀어지고 따뜻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이전 12화 4명의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잊혀진 나의 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