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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l 04. 2019

‘을’의 입장과 결과론적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는 여행

처음으로 에어비앤비 숙소 예약이 취소되었다. 다음 도시 빈으로 가기까지 불과 5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에어비앤비 측은 호스트의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예약이 취소되어 무척 미안하다면서 동일한 기간과 도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해준다고 했다. 소식을 듣고는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보다는 짜증이 먼저 났다.  

“지금 와 다른 숙소를 구하라는 건가, 그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와 바우처로 끝나는 건가, 그것도 체크인 5일 전에 알려주는 것은 뭐지” 

짜증과 스트레스 속에 다른 숙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예약했던 것처럼 집 한 채를 고스란히 쓸 수 있는 숙소는 무척이나 비쌌고, 내가 예약했던 가격대의 숙소는 아파트의 개인실 정도밖에 없었다. 바우처라고 해봐야 겨우 10유로도 안 되는 금액이었고, 만약 전에 예약했던 금액과 바우처 금액을 합친 금액보다 숙소 예약비가 초과할 경우 당연하게도 내가 추가금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행자인 나는 이 상황에서 철저히 ‘을’ 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나의 감정을 다스리고 다시 새로운 숙소를 하루빨리 선택해서 예약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샘솟던 짜증은 서서히 가라앉았고 호스트의 입장도 에어비앤비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화가 났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이 왜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것이었다.(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지나왔던 숙소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에 감사했어야 했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녔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은 베네치아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뒤에 이메일로 확인했다. 나는 급하게 기내에서 다른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적당한 숙소를 찾았고, 예약하기 위해 기존에 사용하던 카드로 결제를 진행했다. 그런데 잘 되던 카드가 결제가 안 되는 것이다. 여러 번에 걸친 시도에도 계속 결제 오류가 났고 전혀 결제 완료 혹은 예약 확정이 되질 않았다. 나는 급한 마음에 카드를 바꿔 결제를 시도했다. 다행히 바꾼 카드는 한 번에 결제가 완료됐다. 결제가 완료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는 이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돈이 잘 빠져나갔는지 카드와 연동된 계좌를 확인했다. 문제는 계좌에서 돈이 엄청나게 많이 빠져나갔다는 것이었다. 무려 5번의 결제 시도 후에 결제가 완료되었는데, 계좌에서 숙소비×5만큼의 금액이 빠져나갔다. 4번의 결제 오류는 사실 결제가 진행되었던 것이고, 에어비앤비 어플의 문제인지 통신망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예약까지 넘어가진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에어비앤비로부터 받은 바우처는 결제 카드가 바뀌면서 동시에 사용된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얻어터지듯 맞은 스트레스 펀치 세례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극한으로 짜증이 밀려오니 오히려 평온한 마음이 함께 찾아왔다. 급하게 해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숙소에 가서 천천히 상황을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부다페스트 숙소에 도착한 뒤 상황을 살펴보니 결국 이런 상태였다.  

첫 번째, 4번의 결제 오류 상황은 에어비앤비의 문제 또는 통신망 문제였던 것 같다. 이미 은행에서는 4번의 결제로 인식하고 숙박비×4 만큼의 금액이 빠져나갔다. 

두 번째, 바꾼 카드로 결제한 것은 바우처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미 4번의 결제 오류 상황에서 사용된 것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바꾼 카드로 결제한 숙소는 내가 다시 취소했지만, 역시 숙박비는 이미 은행에서 빠져나갔다.


결과적으로 숙소 예약도 안 되고, 숙박비×5의 금액만큼 이미 통장에서 빠져나간 상태였다. 미리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이 사실을 다시금 깨닫자 정말 화가 났다.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까지는 그렇다 쳐도 결제 오류는 또 무엇인가.

천천히 마음을 정리하고 잘못 결제된 숙박비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에어비앤비 측에 내가 겪은 문제를 이야기하자 그들은 며칠 뒤에 다시 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느긋하게 대답했다. 결국 3일에 걸쳐서 숙박비는 고스란히 다시 돌아왔다. 문제는 금액이 다시 돌아오는 3일 동안 숙소를 전혀 예약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이미 돈이 다 빠져나갔기에 더 이상 돈이 없어서 그랬다)      

다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돈은 돈대로 나가버렸고, 정작 원하던 예약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 에어비앤비에서 줬던 바우처 역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상황. 그 어느 것 하나 나에게 희망적이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해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음을 알기에 그냥 혼자 삭히고 있었다. 괜히 이야기했다가 나만 겪어도 될 짜증과 스트레스를 어머니까지 겪게 될까 봐 그냥 혼자서 묵묵히 버텼다.     

돌이켜보면 여행하는 내내 지금 같은 상황은 무척이나 많았다. 끝없이 변수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지만 결과물은 그럭저럭 괜찮아서 그냥 넘어갔던 상황은 지금까지 발에 치이듯 많았다. 문제가 발생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냥 잠잠히 뭔가 상황이 바뀌기를 기대하며 보냈던 시간을 혼자 견뎌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찾아올 때면 괜히 마음이 슬퍼지곤 했다. 시간이 천천히 문제를 해결해주기까지 나는 그저 무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돈이 돌아온 후, 다시 숙소 예약을 위해 에어비앤비에 접속했다. 예약했다 취소했던 숙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예약했기 때문에 그보다는 조금 더 좋은 시설을 가졌지만, 훨씬 비싼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를 예약하고 나니 그제야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도 어쨌든 스트레스와 짜증을 나에게 주었지만, 결국 숙소 예약은 완료했으니까. 

항상 그랬듯 결과만 좋으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모든 상황을 결론짓는다. 나는 결과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행에서 나는 철저히 결과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여행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적기 때문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나에게도 이롭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낯선 여행자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불안함이다. 불안함이 주는 스트레스보단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얻는 안도감이 더 크다. 결과론에 의존하는 것은 어찌 보면 여행자의 숙명과도 같다. 최종적으로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끝나면 땡큐. 최악의 경우 내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게 여행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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