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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Dec 18. 2020

<뇌는 팩트에 끌리지 않는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거대서사의 힘 

이 책의 저자 리 하틀리 카터는 스타벅스, 마이크로소프트, 비자, 페덱스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물론 다양한 글로벌 비영리 단체들과 일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가이자 폭스뉴스, CNBC, 야후 파이낸스 등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 논평과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유특히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전문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해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이 책에도 나와 있는 그의 2016년 미 대선 분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대선 캠페인 당시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표어는 ‘미국을 위한 힐러리(Hillary for America)’였고 트럼프 진영의 표어는 ‘다시 한번 위대한 미국을(Make America Great Again)’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을 위한 힐러리’는 우리가 아닌 그녀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다시 한번 위대한 미국을’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바꿔줄 것을 이야기했다. 이 단순하고 강력한 서사는 이기기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2016년의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하는 표적 유권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또 그들에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지자들이 기억하고 반복해서 말할 수 있는 간단하고 명확한 서사(내러티브)가 바로 그 비결이었다.      


이렇듯 팩트체크가 당연해진 빅데이터의 시대에도 때로는 근거 없는 입소문이나 무책임한 구호를 앞세운 주장이 승리를 거둔다. 더 이상 진실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저자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이제 사실(Fact)에는 마음을 바꾸는 힘이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업계의 비밀을 하나 폭로하자면 진실은 애초에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도 말한다. 20여 년 변덕스러운 대중의 집단의식을 관찰하며 그들의 머릿속에 남는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세우면서 터득한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실만 가지고는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생물학, 뇌과학, 행동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결과로도 입증되듯 인간의 두뇌 회로는 자신의 견해를 확인해주고 지지해 주는 정보만 골라내는 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잘 알려진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먼이 제시한 ‘확증편향’ 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저자는 또한 수없이 많은 시장 분석을 하면서 사람들이 제품이나 정책에 관한 ‘정확한 정보’보다는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 자극될 때 더 쉽게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도 한다.   

   

사실은 스토리가 아니다사실은 가슴을 울리지 못하고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의사결정은 이성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단순히 통계나 연구결과를 들이미는 것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진심 어린 관계를 맺고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구매습관선거권 행사에 변화를 줄 수 없다그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실 우린 공적이든 사적이든 삶의 매 순간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해온 저자는 비록 트럼프 이야기로 물꼬를 열긴 했으나 ‘이 책에서 이야기할 설득에 대한 접근법은 진짜 사실과 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하는 실제 스토리를 가장 좋은 버전으로 전달하는데 기반을 두었음’을 전제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제공한다. 


저자는 설득의 핵심은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을 자극하는 ‘공감에서 나오는 언어 전략’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구사해야 할 전략들을 성공과 실패를 거둔 실제 사례들과 함께 차근차근 일러준다. 제1부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서는 우선 누군가를 설득하기에 앞서 스스로 자신의 제안과 목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남을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면서 먼저 자신의 생각과 설득의 목적을 분명하게 파악할 것을 권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최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 방법.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설득의 핵심은 완벽하게 빛나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그보다는 예상치 못했던 어떤 것을 보여주는 데 있음을 기억하라.”      


제2부 ‘사람들은 무엇을 듣고 싶어하는가’에서는 설득의 타깃이 되는 상대방에 대해 알아본다. 저자는 상대방을 단순히 집단으로 범주화하여 피상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적으로 존중하면서 상대방의 희망, 꿈, 두려움을 깊이 있고 솔직하게 평가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공감 있는 유대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저자가 사람들과 접촉하고 설득할 때 사용하는 실천법인 ‘능동적 공감(Active Empathy)’의 3단계 과정을 소개했으며, 국내에도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등 저서로 알려진 심리치료사 제이콥스 헨델이 감정을 생산적으로 헤쳐 나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변화의 삼각형’(The Change Triangle) 모델을 함께 다루기도 한다.      


눈에 보이듯 확실한 비전, 상대방에 대한 진심과 공감의 마음까지 갖췄다면 저자는 이제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 한 마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거대서사(Master Narrative)’라고 한다. 거대서사는 프랑스 사회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만든 용어로 모든 역사적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커다란 이야기 틀’을 뜻한다. 이 책에서는 스스로를 규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는 매우 집중적인 메시지를 뜻한다. 나이키의 ‘일단 도전하라(Just do it)’, 버락 오바마의 ‘우리가 믿을 수 있는 희망과 변화(Hope and Change We can believe in)’과 같은 게 바로 거대서사다.       


제3부 ‘강력한 메시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에서는 이 거대서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알려준다. 우선은 설득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세 가지 요소를 뽑아내 기둥을 세운다. 이 세 가지기둥은 첫째, 당신의 관점에 장애가 되는 것(고객의 장애), 둘째, 타깃 고객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고객의 니즈), 셋째로 당신이 진실되고 신뢰성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것(당신이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세 가지 기둥을 선정한 다음에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입증사항들을 모두 나열해 본 뒤 타깃 고객을 염두에 두면서 삭제, 분류 등의 과정을 거쳐 구체화 시킨다.      


거대서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걸러진 세 가지 기둥을 점검하면서 이를 요약하는 단 한 문장을 만들어보면서 시작된다. 특히 최소 다섯 번 이상 ‘왜?’라고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기둥을 요약한 문장을 보면서 당신이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거듭 생각한다.” 이후에도 구체적이고 지킬 수 있는 내용인지, 긍정적인지, 대중이 사용하는 언어로 만들어졌는지 다각도에서 따져보고 자문단에도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한 줄의 거대서사가 탄생한다.      


심사숙고 끝에 거대서사를 만들었어도 이것이 끝은 아니다. 제4부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를 만들어라’에서 저자는 훌륭한 설득을 위한 마지막 두 가지 요소인 시각적 언어와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생 언어를 다뤄왔으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거의 매일같이 클라이언트에게 명심해 달라고 얘기하는 것이 있다그들이 어떤 것을 믿고무엇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시각정보가 없는 한 아무런 쓸모가 없다우리 마음 속에 남는 것은 시각정보이기 때문이다우리는 그림으로 생각을 한다당신이 설득하려는 사람의 마음 속에 긍정적인 그림을 심어놓을 수 있다면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데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다.”       


저자는 이런 그림을 ‘심벌(Symbol)’이라고 부른다. 이때 심벌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이나 행동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다른 마트의 쿠폰을 가져오면 그 가격에 맞춰주는 월마트의 동일가 적용 정책, 양방향 무료배송을 실시한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 세 시간 동안 문을 닫고 바리스타들의 재교육을 실시한 스타벅스 같은 케이스다. 


다음은 스토리다. 저자는 스토리가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자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한다. 그는 성공을 부르는 스토리의 공식도 소개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자신의 스토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신만의 거대서사를 상대방의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는 가장 개인적이고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5부 ‘이제, 당신만의 설득을 시작하라’에서는 힘들게 만들어낸 메시지와 스토리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구현해 내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소개한다. 메시지는 지겨워질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는 팁부터 돌발적으로 생긴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설득 전략까지. 이중에 저자 본인만이 가진 설득 기술은 무엇일까? 책의 끝부분에서 그는 명쾌하게 요약해 준다.      


나는 사실이 중요치 않는 상황에도 설득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늘 받는다그럴 때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론이죠.”라고 답한다지금까지 설명한 설득의 단계들을 거치면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당신의 감정과 시각을 빼고 그들의 감정과 시각을 집어넣어라.”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저자가 어떤 논평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2016년에는 미국인들을 설득해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무슨 실수를 했을까? 또 바이든은 어떤 거대서사로 기존 지지자들을 확신시켰음은 물론 과거의 반대자들 일부까지 끌어들여 승리를 거머쥐었을까. 저자가 이에 대한 분석들을 모아 써낼 다음 책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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