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울리는 전화(그리고 아내는 화를 낸다)
“따르르르르르르르릉~~~~~”
오늘도 역시 울린다. 몸은 퇴근을 했지만 회사는 계속 움직이고 있다.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하루 24시간 1초도 쉬지 않고 설비는 뛰어다니고 있고 그 설비가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할 기세를 보이면 가차 없이 우리 설비엔지니어들이 들어가서 다시 뛸 수 있도록 어루만져 준다. 아름다운 이야기일까? 그런데 생각을 해 보면 24시간 쉬지 않고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 붙어있어야 하는데 야간에 일하는 사람이 내용을 잘 모르거나 정말 할 줄 모른다면?
할 줄 알 때까지 공부를 하거나 설명서를 읽어보고나 차근차근 하나씩 해 나가면 정말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한가한 현장이 아니다. 그래서 일단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그 다음에는 전화를 돌려본다. 업체에도 전화를 하고 선후배들에게도 전화를 하고. 그게 언제냐고? 오늘 온 전화는 새벽 3시니까......
“여...보세요...”
“선배, 큰일 났어요. 우리 라인 쪽에 들어오는 가스 쪽에 문제가 생겨서 지금 전 설비 세운다고 난리 났어요.”
“뭐? 그래서, 우리 설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데?”
와,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내가 설비를 더 걱정을 하고 있었다니...
“지금 절반 이상 세웠고 결과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지원이 필요해서 위에서부터 연락을 돌리고 있어요.”
“하...... 알았다. 어서 출근하마.”
보통 전화를 받아도 대부분 문제 있다는 정도의 단순 보고이거나 낮에 설명했던 것이 제대로 연결이 안 되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화가 오면 바로 받아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다시 전화를 끊는다. 그나마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나 할까? 전화가 와서 잠이 깨더라도 다시 잠에 드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가끔 같은 부서에 새벽에 전화가 오면 그 날 잠을 아예 못자는 후배들도 있는 것을 보면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정말 2~3년에 한 번 정도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서 번쩍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라인 전체에 문제가 생겨서 뒷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이다. 가끔은 이런 큰 문제가 아예 뉴스화 되어서 인터넷이든 TV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과거 정전이 발생했을 때는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전화가 빗발쳤던 기억이 있다. 내가 근무하는 라인이 아니어서 라인에 있을 때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여보, 무슨 일이야?”
“아, 회사에 문제가 좀 생겨서 가봐야 할 거 같아.”
“뭐?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아?”
“아, 어차피 조금 더 일찍 출근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지금 제정신이야? 지금 출근한다는 건, 지금부터 운전을 하겠다는 말인데. 달랑 3시간 자고 운전을 하면 사고가 나지!”
“어우, 지금 멀쩡하니까 걱정 말고 가면서 피곤하면 휴게소에서라도 잠을 청하고 갈 테니까 어서 가볼게.”
“와, 진짜 그 회사 퇴사해라. 돈은 다른 것 해도 충분히 벌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새벽에도 전화가 빗발치는데 받아줘야 하는 거야?”
“그래도 그 덕에 우리 식구 먹고 사는데 이해해주라~ 다녀올게!”
“도착하면 꼭 전화해! 도착할 때까지 안자고 있을 거야!”
사실 나도 가끔 이런 일이 발생을 하면 답답할 때가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의무가 많아지고 이렇게 관리자의 입장으로 문제를 해결하러 갈 때는 가기 전부터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그간 신입 사원 시절부터 이러한 일을 겪을 때마다 가서 수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뭐 다른 회사도 이렇게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재발방지 대책과 같은 보고서를 쓰겠지만 우리의 문제는 밤이건 낮이건 빨리 쓰고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다. 회사가 24시간 돌아간다고 내가 24시간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왜 사람들은 24시간을 기준으로 생각을 할까?
“어떻게 됐어?”
“데이터 오류라는데요? 지금 다 백업 되서 이제 설비 사용하려고 하고 있어요.”
“야! 그럼 전화를 좀... 하아....”
“선배가 전화를 안 받던데요?”
그렇다. 부재중 전화 3통이 있었네. 와 그 중 한 통화만 받았어도 그냥 유턴해서 돌아오면 되는데 참 안타깝다. 아니지, 운전할 때 저는 전화 안 받았습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저입니다...... 그래도 별 일 없이 지나가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마치 암 판정을 받아서 엄청나게 걱정을 하고 있는 도중에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화가 나고 속은 상하지만 그래도 병 안 걸린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그런 마음? 본의 아니게 회사를 4시 조금 넘은 시간에 와서 일출과 함께 회사를 시작할 기세이다. 어디 침대라도 하나 있으면 한 두 시간쯤 자고 싶은데 회사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지.
“여보, 잘 도착 했어.”
“응, 좀 쉬면서 하고.”
들어보니 자고 있는 눈치다. 안 잔다고 해 놓고. 하지만 그럼에도 전화도 받아줬고 적어도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했으니 약속도 지켰다. 차마 아무 일도 안 생겼는데 새벽에 출근했다는 말은 못하겠고 그냥 열심히 일하다가 들어간다고 하고 전화를 마쳤다.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지만 반도체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우리 설비의 안위를 살피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많은 반도체인들의 운명이자 숙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