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목숨 거는재테크
얼마 전 아버지께서 쿠팡 이츠 배달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나름 대기업에서 36년이나 일을 하셨는데 갑자기 배달이라니? 아, 그래도 과거에 샌드위치 가게를 하나 운영하면서 쌓은 배달 솜씨가 있어서 그런지 너무 편하시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과거에는 배달을 하는 사람만 하고 하지 않는 사람은 진입하지 못하는 그런 업종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업종이 되어 버렸다. 한편으로는 업종으로서의 장벽은 많이 무너지게 된 것 같고 한편으로는 소위 '알바' 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면서 N잡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 비단 우리 아버지 만의 일인가?
회사 동료가 쓰윽 찾아와서 이야기를 한다.
"야, 나 어제 카카오 대리 뛰었어."
"응? 니 요즘 돈 모자라나?"
"집을 사고 싶은데 집을 살 돈은 없고 애들은 점점 커가고 회사에서 주는 것은 한정적이고...... 이렇게라도 뛰어야 할거 같아서 한 번 해 보고 있어. 첨에는 좀 자존심 상했는데 몇 번 해보니까 꽤 재미있는데?"
"이야, 벌써 미래를 대비하는구나?"
이게 미래를 대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재를 대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돈은 조금 더 필요하고 회사에서 주는 돈은 한정적이고(사실 더 준다고 해도 왠지 모르게 회사 남아있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사람들 눈치 때문에 야근을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저런 일들은 사실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는 부분이라 의외로 직업 경험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도 나름 월급을 다른 회사들보다는 많이 받는다고 하는 우리도 이렇게 똑같이 재테크에 목숨을 건다. 사실 티끌 모아 티끌, 어차피 회사원 월급은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주는 것이 국 룰이다.
"형, 어제 코인 봤어요?"
"봤지, 와 한동안 죽어있었는데 장난 아닌데?"
"형, 그전에 박아둔 거 좀 있지 않았어요?"
"다 손절했지...... 그냥 놔둘걸 그랬다......"
"아, 사실 전 존버 했는데 이제 본전이에요. 차라리 물타기라도 할 걸 그랬어요."
읽어보니 대부분 아는 단어라고 생각이 되시는 분들은 돈 좀 잃으신 분일 것이다(ㅋㅋㅋㅋ)
가상화폐도 그렇지만 주식도 다들 많이 한다. 물론 성향상 아예 이런 재테크 자체를 원하지 않는 분들도 꽤 많이 계신데(의외로 젊은 친구들도 예금만 하는 사람도 꽤 있다. 집이 부자여서 그런가.....) 정말 매일매일 대화가 끊이지 않고 참 스펙터클 하다. 가끔씩 직장이나 그룹장님들도 쫑긋쫑긋 귀를 세우고 듣는 것도 보게 되는데 평소에는 그런 사람들을 좋지 않은 시선을 쳐다보시다가도 정작 좋은 소스(?)가 나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쓰윽 가서 한 번 들어보는 것을 자주 보았다. 뭐, 생각해 보면 회사에 돈 벌러 오지, 자아 성찰을 위해서 오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겠는가? 회사에서 주는 돈이 월 10억 쯤 되면 그런 생각을 안 할 텐데 말이다. 항상 모자라고 아쉬운 것이 돈이다. 돈.
"너희 집값은 얼마나 올랐어?"
"저희 집도 한 5억쯤 올랐어요."
"와, 부럽다 난 아직도 집이 없는데......"
"진짜 벼락 거지되었네요. 누구 탓하기도 참 애매하고......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야 되는데 이젠 진짜 따라갈 수도 없다. 없어....."
회사 앞 동탄 신도시는 입사할 때부터 딱히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천천히 올라도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일단 기본적으로 회사 사람들의 수입이 꽤 있는 편이고 맞벌이들이 많아서 소비도 상당한 편이라 집에 대해서 어느 정도 리스크를 안고 갈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제는 웬만한 곳은 10억이 넘어가는 시점이 되어버려서 저렴하게 들어갈 수 있는 수도권 도시라고 하기도 애매할 정도.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이유는 바로 이 회사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 중 아파트를 매수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표정이 살짝 '온화한' 편이다. 2채 이상 가지신 분의 표정은 온화가 아닌 '흐뭇'이라고 할까? 3040세대의 최고 화두인 부동산도 여전히 핫하다. 핫하다 못해 다 불날 판이니 참 회사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누가 이렇게 불을 질렀는가?
라인 앞에서는 오늘도 주식과 코인을 보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회사 일을 더 많이 하고 잘한다고 몇십 퍼센트로 올려주는 것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주식이나 코인에 집중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까? 경영자 입장에서야 복창 터질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습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을 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아름다운 예술이지 않은가!
사실 이렇게만 보면 꼭 반도체 엔지니어만의 내용은 아닐 것이다.
어느 회사의 사람들이나 이렇게 N잡, 부업 등등 다양하게 하려고 준비 중이고 회사 역시도 직원들과 평생을 같이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의 이빨을 숨기고 다른 것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라인에서 나와서 탄식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탄식은 기뻐서일까 슬퍼서일까 고민을 해 본다. 대부분 슬퍼서이겠지만 기쁜 나머지 술 한잔 사겠다는 사람도 간간히 보이는 것을 보면 회사일보다는 오히려 코인과 주식에서 희로애락을 더 빨리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참 재미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