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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조 Jun 10. 2022

평냉과 함냉사이

평양냉면과 방송국 놈들

 



  지금은 어쩌다 보니 하고 싶은 일만으로 돈 버는 게 꿈인 N잡러가 되어 이것저것 다양한 일들을 하며 제주에까지 흘러와 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학교와 전공 선택까지, 나의 인생의 방향을 가리키며 지탱하던 꿈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에 지인 찬스로 mbc 방송국을 구석구석 구경한 적이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워낙 좋아했던 나는 활기 넘치고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방송국 현장에 매료되었고, 그때부터 나의 오랜 꿈은 방송국 피디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의 발꿈치 정도까지 다다랐던 때가 있었다. 방송국에서 일했던 짧았던 시간만으로 이야기 하나는 뚝딱 쓸 정도의 맵디매운 마라 맛의 스펙터클한 시간이었지만 음식에 관한 글을 쓰는 최근 당시 기억 한 조각이 문득 떠올랐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밥 먹을 시간,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늘 ‘미친 바쁨’과 ‘과도한 피로’와 마주하며 보냈다. 태어나서 그렇게 바빠 본 적도, 힘들었던 적도 없을 정도로 고단하고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늘 마감 시간과 밤샘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밥을 먹을 때에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다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식사를 하는 것은 일쑤였다. 그때만 해도 함께 일하는 선배, 동료들은 거의 모두 남자였기에 내가 아무리 빨리 턱관절을 놀려도 학창 시절부터 축구 시간 확보를 위해 단련된 그들의 밥 먹는 속도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말단 신입이었던 나는 천천히 먹어도 된다는 선배들의 말이 부담이 되어, 생존을 위해 밥을 입안에 욱여넣고, 밥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고 입안에 음식을 넣은 채 일어나는 일도 일상다반사였다. 몇 달간 인턴 피디로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밥이란 생존을 위한 사료 같은 것이었다. 다양한 메뉴와 맛으로 퍽 유명하다는 구내식당의 밥도, 당 떨어질 때 입에 털어 넣었던 포도당 사탕, 그리고 물처럼 들이켜던 커피도 에너지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음식이 내 인생에서 낙이 아니었던 그 시절,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식사가 한 끼 있다. 그날따라 드물게 외부에서 전체 팀 촬영이 있어서 메인 피디님까지 함께 팀원 전체가 함께 촬영을 하고 방송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날은 신기하게도 여유가 있어서 제대로 식사 한 끼 할 정도의 시간이 딱 떨어졌다. 당시 우리 팀의 메인 피디님은 일하면서 만난 어떤 피디님보다 젠틀하시고 온화하신 성격이셨다. 피디님은 고생하는 인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다며 한참 고민하시더니 ‘너희 평양냉면 먹어봤니?’라고 나긋한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그때까지 나는 평양냉면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평양냉면은 미식가들 사이에서만 소문난 음식으로 굽이굽이 찾아가 긴 줄을 서서 먹는 서울 곳곳에 숨은 맛집이 있었다. 지금처럼 대중적인 음식이 되기 전이라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20대들은 평양냉면은 생소한 음식이었다. 게다가 대학교 즈음 학생들의 얄팍한 주머니 사정을 겨냥한 <육쌈냉면>의 등장으로 냉면 값 6천 원만 내도 고기를 덤으로 주는 파격적인 식사에 익숙한 터라 고상한 미식가들의 전유물이라고 느껴질 때였다. 


  피디님은 평양냉면이 처음이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며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물으셨고, 나와 동료 인턴들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마침 새로운 냉면의 세계가 궁금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식당으로 따라갔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허름한 건물을 꽉 채우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대단히 유명한 맛집인데 평소처럼 줄을 서지 않아 운이 참 좋다고 기뻐하였다. 피디님께서 하도 호불호가 갈린다는 걱정을 하셔서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국물을 한 술 떴는데, 음...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최근 연예인 누구는 평양냉면 국물은 소가 발만 담근 밍밍한 맛이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정도로 평양냉면은 처음 먹어보면 충격적일 만큼 육수가 심플한 편이다. 평소 좋아하던 새콤달콤한 냉면이랑은 분명 다른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슴슴한 육수에 알지 모르겠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미식가들이 왜 평양냉면을 극찬할까 생각하며 한 번에 느껴지지 않는 숨은 맛이 있을까 싶어 마치 미식가라도 된 듯 냉면을 열심히 음미해 보았다. 당시 일에 치이고 첫 사회생활에 치여 사료 같은 음식만 먹던 나에게 새로운 음식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느낌이랄까. 한 번의 도전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꽤 매력적인 맛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극적이고 강한 맛을 즐기던 나의 음식 스펙트럼을 벗어난 조금 다른 세상의 맛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평양냉면이 분명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살짝 스쳤으나 그러기에는 내 코앞의 생존이 급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그때 그 피디님만큼 상냥하고 젠틀한 분을 본 적이 없었는데, 방송가에서 보기 드문 온화한 성격이셨다. 세상의 개성 강하고 기 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방송가에서는 오히려 그런 성격의 피디님이 심심한 듯 싱거워 보이기도 했지만 피디님과 함께 일했던 시간은 아무리 늦어도 퇴근은 할 수 있었고 일주일에 하루라도 쉬게 해 주셔서 최소한의 배려는 받아서 그래도 혹독했던 몇 달 중에서 괜찮은 시간으로 꼽힌다. 확실히 친절함은 체력과 배부름에서 나온다.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사람이 제때 못 자고 제때 못 먹으면 99.9퍼센트의 확률로 난폭해지는데 대부분의 방송가 선배들이 그랬고, 나를 포함한 인턴들이 점점 그렇게 변했다. 젠틀했던 피디님은 당시만 해도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던 방송가의 주 5일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던 다른 선배님들은 코웃음을 쳤지만. 여전히 방송가는 노동강도가 가장 높은 직업군에 속하겠지만, 그 당시는 더 열악했다. 주 5일 근무는커녕 퇴근을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인턴 피디였던 나는 남들이 퇴근하고 불 꺼진 훵한 사무실에서 선배들이 먹은 커피값이며 택시비며 책상에 가득 쌓여있는 영수증을 붙이고, 출근은 매일 하는데 퇴근은 매일 못해 발목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제대로 장착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방송가를 떠다니는 좀비 같았다. 최근 드라마 쪽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지켜 제작되었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은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나에게 매우 반가운 소리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만세!) 


  다른 팀에서 만난 한 기수 먼저 입사한 한 선배는 입사 후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했다.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이고 몸 상태가 안 좋아 팔 한쪽이 잘 안 올라가는 것 같다는 그 선배의 말이 당연히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차가 더 있는 선배들은 ‘사람이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어.’라며 영혼 없는 퍼석한 얼굴로 대답했던 장면도 어찌나 생생한지 가히 충격적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방송국은 전쟁터 그 자체였다. TV 보는 게 좋아서 방송을 만드는 피디가 되고 싶었지만, 막상 피디들은 바빠서 방송 볼 시간이 없었다. 촬영 스튜디오에서 만난 20년 차 메인 작가님은 밤샘으로 힘들어하던 나를 보고 ‘방송은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는 아리송한 말씀을 하셨다. 지금 도망가라는 사인이었을까. 작가님은 꾀죄죄한 인턴들을 불쌍히 쳐다보고 유유히 지나가셨다. 


  인턴이 끝나기 직전, 인턴 동기로 함께 들어온 명문대생 오빠 한 명은 편지를 써놓고 홀연히 잠수를 타버려 적지 않게 당황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선배들은 방송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며 배 아프다고 화장실 간다고 하고 영영 돌아오지 않은 조연출, 운동복에서 청바지로 갈아입고 작업 중이던 모든 편집 파일을 지우고 도망간 어떤 놈, 편집하다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어떤 조연출,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폐에 구멍이 나서 쉬어야 했던 누구 등...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듣고 보면 무서운 조연출 도망 썰을 낄낄대며 풀어주셨다. 입사 후 첫 채널 전체 회의에서는 인턴 8명에게 남친, 여친 유무 여부를 물어보았다. 몇 명이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선배들은 걱정하지 말라며. 곧 헤어질 거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였다. 방송가에서는 결혼만 하면 된다는 궤변을 늘어놓더니 결혼하고 나면 이혼할 시간이 없어서 피디들은 이혼율이 낮다는 별 이상한 소리를 떠들어댔다. 이런 이상한 사실이 상식이 되는 곳이라면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짙어졌다. 선배들도 나를 보고 나가라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인턴이 끝나기 몇 주 전부터 위염과 인후통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던 터라 지칠 대로 지쳐 그 이상한 곳을 빨리 탈출하고 싶어졌다. 멋진 방송국 피디가 되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품은 나의 원대한 꿈이었지만, 나는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제때 밥 먹고 제때 자고, 남들 출근할 때 하고 퇴근할 때 하는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고자 하는 작은 꿈을 품고 그 일을 그만두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 도망치듯 그곳을 나오고 오래 지나지 않아 같은 방송사의 다른 채널 어떤 신입 피디가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소박한 바람을 품고 그곳에서 일했을 그는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지금은 방송가도 많이 바뀌는 중이고 앞으로 더 나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첫인상이 기억에 남아서 그런지 평양냉면을 언젠간 제대로 즐겨보리라 막연하게 다짐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생존만을 위해 음식을 몸에 넣었던 시절에 미식을 경험한 것도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나의 첫 평냉의 기억은 방송국에서 나온 후 잊고 싶은 매콤하디 매콤한 기억들과 함께 기억 저편에 고이 접어 두었는데 어느 날 슈퍼스타 K 2위로 화려한 데뷔를 한 가수 존박 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평양냉면 애호가로 등장하여 ‘냉면 성애자’라는 요상한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냉면 국물만으로 같은 식당의 어느 지점인지까지 맞추는 진기명기가 펼쳐지는 광경을 TV에서 보았다. 그때 ‘방송국 놈들’이라는 유행어까지 생성하며 함께 방송국 놈들을 속으로 욕하면서 방송국 놈들과 평양냉면의 상관관계를 떠올리며 욕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상당히 유행했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성애자’라는 표현을 유행시킨 것은 여전히 이상하고 불편하게 느껴져 더는 이 표현을 쓰지 않는다)


 냉면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 꽤 오랜 시간 거슬러 올라간다. 삼 남매의 중간 둘째인 나는 좀처럼 엄마랑 단둘이 외출할 기회가 드물었는데, 초여름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붓하게 외식을 했다. 그때는 평양냉면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던 때라 냉면의 종류에는 물냉과 비냉만 있는 줄 알고 있던 뽀시래기 시절이었는데, 냉면집에 가면 주는 뜨끈한 육수 국물이 입안에 착 감기는 게 참 맛있었다. 냉면은 차가운 음식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장이 썩 튼튼하지 않았던 나는 육수로 속을 뜨끈하게 데워주면 새콤, 달콤 차가운 냉면을 먹을 만반의 준비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 무렵에 마침 냉면집을 연달아 방문했던 터라 식전에 입을 적시며 혀끝에 착 붙는 육수의 감칠맛과 시원한 냉면의 국물, 그리고 쫄깃한 면의 찰기까지. 냉면 집들의 맛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의 맛, 온도, 습도, 분위기… 가 기억나는 게 신기하다. 엄마한테 열심히 맛의 차이를 설명하니 엄마는 신기했는지 둘째 딸이 미식가라며 재미있어하셨고 가족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집 냉면 감별사로 여기 식당은 육수가 맛있네, 면이 별로네 하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냉면 평가단을 스스로 자처하였다. 최근에 부모님께 그때 내가 떠들었던 냉면 평가가 신빙성이 있었냐고 여쭤보니, 그래도 제법 그럴듯했다고 하셨다. 아마도 냉면을 더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재미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창 냉면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 냉면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빠 친구분께서 냉면을 더 맛있게 먹는 노하우를 알려주셨는데, 냉면 육수에다 계란 노른자를 으깬 뒤 풀어서 국물을 걸쭉하게 먹어야 진짜 맛있는 거라며 손수 시범까지 보여주셨다. 도대체 그런 스킬을 가르쳐주신 분이 누구인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지금도 물냉면의 계란 노른자를 보면 그때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어릴 때 꽤 오랫동안은 신원불명의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라먹고 주변에 전파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국물에 노른자를 풀어먹지는 않고 식초와 겨자도 과하지 않게 딱 한 바퀴씩만 넣어 국물 본연의 맛을 깔끔하게 즐기는 편이다.    


 삼십몇 년의 인생 중에 그렇게 함흥냉면이 나의 냉면 지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는데, 방송국에서 나온 지도 한참 후였던 몇 해 전에 우연히 평양냉면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식단도 병행하고 지내던 시기였다. 외식을 거의 안 하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음식도 간을 약하게 해서 먹었던 때라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마주한 평양냉면이 정말로 맛이 너무 좋았다. 그동안 나의 혀가 얼마나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랬을까 신기하기도 했고, 단순해 보이는 육수 국물에서 이렇게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만화나 영화에서 폭죽이 팡팡 터지는 것 같은 맛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 먹었던 첫 평양냉면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그 이후 평양냉면이 종종 생각나 맛있는 집들을 찾아가 맛을 보곤 했다. 평양냉면의 핵심은 고기를 우려서 낸 국물인데 집집마다 비법이 달라서 그런지 맛집끼리도 국물 맛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양냉면을 먹는다면 꼭 국물을 먼저 음미해 보고 즐기시기를 추천한다. 


  학창 시절에는 치아교정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좋아하는 냉면을 먹다 앞니로 안 끊어지는 참사가 발생하는 일도 간혹 있어서 냉면과 자연스럽게 소원해진 때도 있었다. 평양냉면의 면은 메밀로 만들어 감자나 고구마를 주재료로 만든 함흥냉면 면보다 면이 부드럽고 잘 끊어진다.(면 색깔이 하얄수록 메밀 함량이 높다고 하니 드실 때 참고하시길) 고명은 매우 단출하지만 평양냉면과 함께 먹는 만두나 육전은 갈비+냉면, 삼겹살+비빔면에 견줄 만큼 좋은 궁합이다. 제주도에 이사 오기 전 살던 동네는 평양냉면 배달이 되는 곳이 없고, 우리 가족 중에서도 평양냉면을 즐기는 사람이 엄마와 나 둘 뿐이라 생각보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평양냉면을 먹을 일이 많지 않았다. 평양냉면을 좋아해서 함께 종종 먹으러 갔던 친한 전 직장 동료는 최근 육아휴직으로 육아 어드벤처를 떠나는 바람에 ‘평냉 메이트’가 없어져버린 것도 영향이 커서 더 먹을 일이 드물어졌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평냉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았지만, 음식 궁합이 꽤 맞는 친구들 중에서도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어서 내 똠얌꿍보다 평양냉면을 같이 먹을 사람이 더 적다는 게 나의 주변 통계이다. 얼마 전에 평양냉면이 먹고 싶어서 벼르다 지인 분들과 평양냉면을 먹으러 갔는데, 평양냉면이 주로 먹던 함흥냉면과 다른 줄 모르셨던 지인 분은 냉면 그릇을 살포시 내 앞으로 밀어주시면서, 본인은 다시는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함께 유쾌하게 웃었던 해프닝도 있었다.  


  평양냉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북한 음식이다. 함흥냉면도 원래 회 국수로 시작해 북한에서 온 음식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북한 음식이란 생각이 잘 들지는 않는다. 주로 북한에서 이주해 온 분들이 자리를 잡아 평양냉면 식당을 차리셨는데, 더울 때 생각나는 평양냉면은 신기하게도 원래 겨울 음식이라고 한다. 아는 분께서 북한 관련 봉사를 할 기회가 있어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직접 만들어준 북한 집 밥을 먹은 적이 있다고 하셨다. 북한의 음식은 대체로 간이 세지 않고 슴슴한 맛인데, 먹을 때는 인상적인 맛은 아니지만 집에 돌아오고 난 후에 어찌나 생각이 나는지 다시 먹을 길도 없고 만드는 법도 몰라서 아쉬움을 격렬히 토로하셨다. 평양냉면도 한번 빠지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매력에 퐁당 빠지고 나면 어느 순간 뒤돌아서면 생각나는, 은은하지만 강렬한 매력이 있는 신기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나도 맛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요즘같이 자극적이고 강한 맛이 유행하는 걸 보면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알아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언젠가는 밥 먹고 금강산에도 가보고, 함흥에 가서는 함흥냉면을, 평양에 가서는 평양냉면을 먹어보는 날도 올까 살포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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