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나는 정말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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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한겨울 눈처럼 쌓이는 작은 이야기들.
저녁 8시 30분,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고치고 있다. 외국 소설인데, 어쩐지 좀 고약하다. 왜냐하면 번역가가 Bad나 Worse나 Rotten같은, 부정적인 형용사들을 전부 ‘고약하다’라고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다. ‘고약한’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잠시 멈춰 서서 원문을 대조해 봐야 한다. 고약한 놈… 나 수능 영어 8등급 나왔는데. 뭐 별수 없다. 그냥 한글의 메모 기능을 켜서, 조심스럽게 메모를 달 뿐이다. ‘고약한 대신 다른 단어로 수정하시면 어떨까요? 살펴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는 우연한 계기로 출판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친구가 다니고 있는 출판사가 베스트셀러이자 이제는 스테디셀러가 된 소설을 성공시켰고 덕분에 사세를 확장해 인원 충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소개서도 아주 엉망으로 쓴 것 같은데, 모르겠다. 책의 물성이 어쩌고… 작가와 독자를 잇는 가교가 되겠다느니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사장님은 지금도 그러신다. 얘는 그때 인천의 한 공단에서 경리 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얘가 책이나 편집에 대해 뭘 알까 싶었지. 아니나 다를까 면접 때도 한마디도 못 하고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거야. 그런데 걔가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나는 입사 1년 만에 회사의 두 번째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18쇄를 찍었고 5만 부를 팔았다. 덕분에 나는 회사에 지금까지 붙어있다.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 내가 만든 다른 책들도 대부분 중쇄를 찍었다. ‘중쇄의 여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도, 고약하게도
남의 글을 고치고 있는 것이다.
2.
정말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소설이 나를 살렸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는 애들은 대개 도서관엘 간다. 화장실까지 친구와 함께 가야 하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혼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을 때마다 왼쪽 책날개를 (지금은 표2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를 유심히 보았다.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의 작가들이 전부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이었다. 어떤 작가는 그 학과에서 소설을 가르쳤다. 나는 중학생 때, 그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병이 도진 것이다. 고등학교 생활을 말아먹었다. 그때의 기억은 누가 마치 스푼으로 떠낸 듯 오목하게 파여 있다, 학교를 이틀 나가면 많이 나간 것이고, 그마저도 4교시를 채 못 넘기고 집으로 도망쳐오기 일쑤였다. 당시 나는 10대였고, 부모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서 자기 딸에게 정신과적인 병명이 붙는 것을 곧죽어도 원하지 않았다. 금전적 지원도, 명확한 병명도 받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자퇴서를 내밀었다. 어찌 됐건 졸업만 하자는 생각으로 설렁설렁 학교에 다녔다. 출석 일수를 이틀 남기고 졸업했다. (달력을 보면서 날짜를 계산했다) 그럼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은 뭘 했냐고? 집에 틀어박혀 울면서 책을 읽었다. 소설을.
한강, 박민규, 김연수, 전경린, 김애란, 윤성희, 편혜영, 어떤 이름은 아직도 빛나고 어떤 이름은 조금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이름들이 나를 살렸고, 어떤 문장들이 나를 살렸다. 내 왼쪽 손목의 주저흔이 주저흔으로 끝날 수 있었던 건 마음속에 주저흔보다 더 깊게 새겨진 음각의 문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 음각으로 새겨진 문장 속에 빛이 드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또 못내,
소설이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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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실기 100% 전형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어느 미친 대학이 수능 시험도, 내신 성적도 안 본다고? 그런 대학교가 실제로 존재했으니… 바로 내가 중학교 때 가겠다고 다짐한 그 학교의 그 학과였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풀러 간 수시 시험장이었는데, 덜컥 합격이 된 나는 아무 준비 없이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 합격 결과를 보기 직전까지 나는 폰 케이스 공장에 입사 지원서를 넣고 있었다.
첫 학기에 처음으로 소설이란 걸 써보았다. 생리 때 물건을 훔치는 여자가 훔친 물건을 자기 방에 처박아 방 안에서 악취가 풍긴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나는 존경하던 소설가로부터 B+를 받았다. 성적은 아무 상관 없었고, 그냥 즐거웠다. 소설가(선생님)는 제발 사람 죽이는 소설을 쓰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토로했는데, 생각해보면 그 소설가(선생님)의 소설에는 사람 죽이는 장면은 나온 적이 없다, 그냥 죽은 시체들이 즐비했을 뿐이지. 시도 처음 써봤다. 시에 대해서라면 그때도 할 말이 없고, 지금도 할 말이 없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니까. 예전에 시를 가르치던 교수님이 무당을 만났는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네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시를 받는 영매의 몸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다만 내게는 소설을 열심히 쌓아 올릴 수 있는 튼튼한 손가락과 푸짐한 엉덩이가 있었다.
2학기 때는 죽은 애인이 목소리가 들려와, 그것이 촉각으로 변해 그 말과 키스를 한다거나 그 말이 몸에 상처를 낸다는 내용의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을 쓰면서 내 안의 뭔가가 조금씩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청각이 촉각으로 치환되는 느낌, 공감각을 다루는 일의 즐거움, 언어를 아름답게 조탁하고 세밀하게 정련하는 일의 쾌감, 그러니까 나는 정말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구나. 그러니까 이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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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글의 제목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었다. 편집자로서의 기쁨이나 고충에 대해 다루려고 했던 글이었는데, 역시 글이란 제멋대로, 또 그러나 제 있을 곳을 능숙히 찾아가는 법이라 어느새 여기까지 와 버렸다. 지금이라도 ‘소설 쓰기의 기쁨과 슬픔’으로 제목을 바꿔야 할까? 나는 그런대로 우수한 성적을 받으며 졸업했고(이론 수업은 영 꽝이었으나 실기로 때웠다.) 모 문예지에 소설을 실으면서 나름대로 등단 비슷한 것도 해보았다. 전부 학교에서 문장으로 맺어진 인연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로 같은 문장에 밑줄을 치고, 좋아하는 구절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네 소설엔 미래가 없어.’라는 막말을 퍼붓고, 토하고,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담배를 피우고, 집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소설을 쓰는 시간이었다.
당신은 소설을 읽을 때 밑줄을 긋는가? 그 옆에 성심과 애정이 어린 코멘트를 단 적이 있는가? 혹은 누군가가 당신의 글에 밑줄을 그어 주는가? 당신의 글을 읽어 주는가? 내게는 4년간 그런 인연들이 있었고 그런 경험과 인연들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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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문장으로 맺어진 연은 끊기지 않으리라 생각했으나 친구들은 하나둘씩 생업을 찾아 나갔다. 웹소설 작가, 학원 강사, 서점 아르바이트,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 영화사 스크립터… 혹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더 배울 것은 없었고, 단지 글을 쓸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어떻게든 다들 글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우리가 4년간 배워온 다다이즘이니 하이퍼리얼리즘이니 아방가르드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사조는 바로 ‘먹고사니즘’이었다. 먹고사니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력했다. 하나같이 ‘내 글 쓸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나는 매일 의무적으로 카페나 도서관에 출근했지만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다시 문장으로 연을 맺을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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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에, 나는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그나마 학비가 가장 싼 모 국립예술학교. 예전에 KBS 다큐 3일에도 나온 적이 있었던 그야말로 ‘천재’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그 학교.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세계에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은 좋아했지만 정작 내 이야기는 들여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대학 시절에 사람을 잘 꿰뚫어 보던 언니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는 발이 허공에서 3cm 정도 떠 있는 사람 같아. 마찬가지로 내 소설 역시 현실과 유리되어 있었고, 내 소설 속의 인물들은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으며 대체로 무해했다. 그런데 내 얘기를 쓰라니, 뭐부터 써야 하지?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해 도서관에 혼자 다니면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약을 한 번에 20알씩 삼켰다?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담배를 피우며 소설에 미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름답고 무해한 소설 쓰기의 세계로 도망쳤다. 문장을 예쁘게 가지고 조탁하면서, 아무도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유순한 사람들의 세계로.
너는 왜 네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서 말하니. 조금 더 솔직해져 봐. 온통 거짓말투성이인 자기소개서를 들고 갔을 때(거짓말도 허접스럽게 했다. 아버지가 목사라느니, 어머니가 모텔을 운영한다느니 말도 안 되는 글을 썼던 것 같다.) 내 글을 공짜로 봐주던(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공짜로 봐주는 사람은 정말 귀하다!) 멘토가 그렇게 말했다. 그냥 네 이야기를 해. 꾸미지 말고, 너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솔직해질 수 있을까. 꾸미지 않을 수 있을까. 일주일을 그 멘토 선생님 집에서 합숙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완성했다. 비록 나는 그해 입시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그 이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몇 년 전 부친이 남극으로 떠났다…’ 내 모든 이야기들의 시작이 그 문장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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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글을 좀 썼어요. 소설은 아니고요. 에세이를요. 카페에도 올리고 브런치나 인스타그램 같은 데에도 올리고… 저랑 같은 20, 30대 여성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때 면접관이었던 편집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소윤 씨는 우리에게 그런 부분을 어필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찾는 사람이 20, 30대 여성 독자를 타겟팅 할 수 있는 편집자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쓴 글들을 다 보여줬고, 그 덕분에 지금 3년 차 편집자가 되어 있다. 사연 없고 곡절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어쨌든 돌고 돌아 글밥을 먹고 살 수 있음에 만족한다. 띄어쓰기 하나에 쪼잔해지고, 오타 하나에 예민해지고, 틀린 문장부호 하나에 성질이 뻗치는 괴팍한 인간이 되었지만 (웃긴 건 나도 많이 틀린다, 특히 띄어쓰기…) 이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 나는 내가 그동안 소설 쓰기밖에 못할 줄 알았는데,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책도 만들 수 있잖아?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것을 끄집어내 물성으로 만드는 일, 생각을 감각으로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내 손으로 만든 책이 지금까지 총 여섯 권이다. 이제 일곱 번째 책을 작업하고 있다. bad와 worse와 rotten을 전부 ‘고약한’으로 번역해놓은 고약한 역자의 글을 고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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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 책과 내 책 아닌 것, 그 중간 자리를 찾기가 가끔은 힘들다. 편집자의 책은 ‘내 책이되 내 책이 아닌 것.’ 어쨌든 책을 쓴 사람은 작가니까. 편집자는 맨 뒤 판권 면에 조그맣게 이름만 실릴 뿐이다. (그런데 판권을 읽는 독자가 있을까?) 가끔은 서점에서 내가 만든 책을 볼 때면 무한한 애정이 생기다가도, 아냐. 그 책은 작가의 책이야. 라며 도리질을 치곤 한다. 이제 고작 3년 차,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내 책이되 내 책이 아닌, 내 문장처럼 보되 절대로 내 문장은 될 수 없는. 그러니까 그런 마음으로 어지러운 날이면 나는 또 21살, 22살 때처럼 담배 한 갑을 뻑뻑 피우면서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한낮에 햇빛 잘 드는 카페에 앉아
소설이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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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문서 1이 제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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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싶다. 하얗게 쌓인 눈에 비치는 한낮의 빛처럼 반짝이는 이야기를, 무해하고 유순한 사람들이 나와 상처를 받을지언정 아무에게도 상처는 주지 않는 이야기를. 그러나 매영 선배의 말처럼 나는 내 안에 툭 떨어진 돌멩이 하나를 요모조모 관찰하고 뜯어보고 살펴보기도 전에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멀리 던져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소설 쓰기가 두려워서 에세이로 자꾸 도피하려는 걸까?
그렇지만 소설이 쓰고 싶다. 언젠가는 쓸 것이다. 소설은 내 실패한 첫사랑이자,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짝사랑이다. 세계에 없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먹고사니즘’을 위해 ‘고약한’ 글들을 상대해야 하고, ‘고약한’ 글들을 상대하다 보면 완전히 탈진해서 소설 쓸 기운이 없어진다. 책을 만드는 일과 내 글을 쓰는 일, 나는 두 일 가운데서 언제나 갈등하고 기뻐하며 슬퍼한다. 어쨌든 글은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는 능력이 있다고 믿으니까. 나는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을 믿으며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이미 쓰인 문장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해낼 뿐이다. 오늘도 묵묵히, 야근 수당도 받지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