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교 도서관에서 한강의 소설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도적으로 앞 문장을 삭제했습니다. 중학생 때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혼자 밥 먹는 게 죽을 만큼 싫어서 점심시간마다 학교 도서관에 갔습니다. 공적인 문서에서 이 문장은 영원히 쓰이지 않겠지만 제 이야기는 비로소 이 삭제된 문장에서 시작됩니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감명받은 학생이 아니라, 죽을 만큼 싫어서, 죽고 싶어서, 죽이고 싶어서, 죽이지 못해서 무언가를 쓰게 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인천에서도 조금 사나운 동네인 부평에서 태어났습니다. 부평역에서는 기관사를 폭행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고등학생들은 ‘금연구역’이라 적힌 현수막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습니다. 하루는 부친과 대화를 하면서 곧 애인이 나를 데리러 오는데 주차장을 찾느라 좀 늦는다고 말했습니다. 부친이 심상하게 되물으셨습니다. “왜 주차장에 차를 세워?” 자동차들은 차도를 점거하고 공용주차장은 텅텅 비어있는 이곳을, 왜 주차장에 차를 세우냐는 부친의 질문을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저는 금연 구역 현수막 아래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누런 가래를 뱉고, 가끔 다른 도시를 걷고 있자면 ‘왜 여기서는 맘대로 담배를 피울 수 없지?’ 생각하고 흠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미싱 돌리는 일을 하는 모친이 옷감을 보러 다니던 주단 골목은 이제 여기에서 먼 곳의 이름을 훔쳐 와 ‘평리단길’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경리단길’, ‘망리단길’, 그리고 ‘평리단길’ SNS에서 유명한 카페와 디저트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평리단길 초입에는 간판이 있습니다. since 1955, 평리단길. 60년 전이 아니라 6년 전에도 이곳은 주단 골목이었습니다.
1955라는 숫자를 볼 때마다 어쩐지 좀 무안하다고, 평리단길 카페 ‘혜리별관’에서 아인슈페너를 마시면서 생각합니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계속 뛰어 밤을 새워야 합니다. 그 두근거리는 밤 속에서, 저는 도서관에 첫발을 디디던 순간부터 저를 지배해오던 ‘죽을 만큼 싫어서’의 정서와 만납니다. ‘죽을 만큼 싫은데, 죽기 전에 벗어날 수 있을까?’ 저는 언제나 부끄러워하는 곳에서 부끄러워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피를 한번 갈고 싶다.
저에겐 옛날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는 할머니도, 좁은 계단을 통해 간신히 올라갈 수 있는 어둡고 다정한 다락방도 없습니다. 낡은 자전거도, 우연히 발견한 비밀기지도, 저를 따르는 길고양이들도 없습니다.
저에겐 ‘싸가지 없는 네가 우는 걸 한번 보고 싶다.’라며 쓰러져 있는 제 머리를 걷어찼던 남자애가 있습니다. 학교에 가는 척 교문 앞을 서성거리다 결국 타게 된 지하철 1호선의 풍경이, 오빠의 손을 잡고 어쩔 줄 모르며 들어가게 된 DVD방 안의 때에 전 담요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임신 테스트기가 있습니다. 매일 도서관 바로 옆 공원에서 술에 취해 기타를 치면서 내 노래를 들어라 개새끼들아 씨발놈들아 쌍욕을 해대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문득 그 할아버지의 피를 받은 느낌이 들 때마다 죽을 만큼 싫거나, 죽고 싶거나, 죽이고 싶거나 셋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 삭제된 문장들 속에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쓰인 적도 없는 문장들 속에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읽지 않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하니까요. 돌아오는 12월마다 구월동 교보문고에서 예쁜 다이어리와 펜을 사는 건 큰 기쁨이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자꾸만 저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고백하고 싶어지고-무엇을 고백해야 할지도 모르면서-계속 이런 기억을 복기하려 합니다.
저는 쓰인 적 없던 그 문장 속에 내가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말할 수 없어’와 ‘말하고 싶어’의 장력에서 늘 긴장 상태로 있습니다. 어떤 문장은 끝까지 쓸 수 없을 것이고 어떤 문장은 끝내 쓰일 것입니다. 수치를 딛고 써야 할 문장을 찾아내어, 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저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