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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인천특급 9시간전

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사랑 말고 소수자의 시선으로 보기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편이라 언제나처럼 내가 느끼는 그대로 영화를 보고 왔다. 츠네오가 조제와 할머니의 집에서 첫 식사를 하는 장면부터 이 영화는 장애에 대한 몰이해를 전달할 것이란 걸 직감했다.


츠네오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여느 20대처럼 술도 마시고 알바도 하고 틈틈이 섹스도 하고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인물. 거기에 더해 자신의 감정에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다. 그를 스쳐간 여성들은 그를 나쁜 남자라고 말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일은 없었으니 내가 보기엔 나름 쾌남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조제를 장애인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매몰되어 판단하지 않은 인물이다. 따라서 츠네오가 조제를 사랑한 건 연민 때문이 아니었다. 여느 여성들에게 갈구하던 욕망과 달리 츠네오는 조제의 당찬 영리함에 끌려 그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은 것이다.


하남자 기질이 있는 츠네오와 달리 우리의 조제는 쾌녀다. 유년기부터 고립된 세상에서 자라온 인물임에도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과 자신의 감정을 분명히 전달할 줄 아는 명민함이 있다. 다만 조제에게 허락된 세상은 몸을 꽁꽁 가린 채로 하는 한 시간의 새벽 산책, 할머니가 동네를 돌며 주운 헌 책이 전부다. 할머니가 사 오는 음식, 할머니가 주운 헌 책, 할머니의 세계로 조제의 세계가 열리고 닫힌다. 그런 조제의 세계를 넓힌 사람이 츠네오다.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할머니 몰래 유아차를 개조해 도망쳤던 날에 신기한 구름을 보았고, 사랑을 고백한 후의 첫 데이트에서는 호랑이를, 1년쯤 흐른 후의 암묵적인 마지막 데이트에서는 바다와 물고기 떼를 보았다. 꽃과 고양이가 전부였던 조제의 세상은 츠네오 덕분에 하늘도 땅도 바다도 있다.


 아쉽게도 츠네오와 조제는 이별의 전철을 밟았다. 츠네오의 가족 행사에 동행하기로 한 시점에 조제는 자신이 결혼할지도 모를 희망을 애써 억누른다. [집안 어른들과의 인사 = 결혼]이라는 당시의 일반적인 공식에 조제도 당연히 대입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었음에도 옆에서 바람을 부는 코지의 말을 한사코 부정한다. 그리고 결국 몰래 품었던 결혼이라는 희망은 츠네오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츠네오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정말 조제를 가족들에게 소개할 것인지 되묻는 동생과 귀엽게만 보였던 조제의 행동들이 지겨워질 때쯤, 츠네오는 앞으로도 조제를 업을 용기를 잃고 말았다. 사랑이 시들해진 것은 둘째 치고, 츠네오의 현재와 미래에 존재할 가족, 친구들, 그리고 직장동료들의 시선에서 조제는 사랑하는 아내가 아닌 단지 장애인으로만 존재할 것이 선명히 그려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제와 츠네오의 이별은 단순히 둘 사이의 사랑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 일을 계기로 조제는 담담히 예견된 이별을 준비했고 자립할 준비를 마쳤다. 이전에는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던 책과 가구들을 스스로 깔끔히 정리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휠체어 오른쪽 손잡이에 애호박을 담은 장바구니를 걸고 저녁 메뉴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조제의 이런 변화는 츠네오라는 우연한 인연 덕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츠네오가 나타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조제의 삶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의 삶 중에서도 희망 편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느꼈을 조제의 비범함은 흔한 자질이 아니다. 조제처럼 진취적이고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상황과 이유로 세상과 고립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은 더 흔하다. 부유한 환경에서는 그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겠지만 가난한 환경에서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발견할 기회와 계기를 마련하는 일은 여전히 개인의 네트워크나 우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구조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개인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지 아니면 개인의 노력과 우연에만 맡기는지 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심해 속에서 그저 살기 위한 헤엄만을 치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사회의 한 구석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츠네오를 무기력하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글픈 현실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제와 츠네오의 구 여자 친구가 언덕에서 맞다이를 뜨는 장면이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이 인물은 조제와의 첫 만남부터 무례했다. 조제와 할머니의 보금자리를 수리하는 중에 견학(사람 사는 집에 '견학'...)을 와서는

'저 애가 바닥으로 다이빙하는 애야?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ㅎㅎ'

라는 망언을 뱉고는 츠네오와 유유히 사라진다. ^.^ㅗ


 썸붕의 충격으로 조제를 불러내서 앙갚음을 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당혹스럽다. 썸붕녀는 떠난 사랑에 대한 분노를 상대 여성에게 돌리는데 본인이 여전히 사랑하는 대상을 미워하기 싫으니 조제에게 분노를 투사한다. 화를 낼 거면 자신을 배신하고 진실하게 사랑하지 않은 츠네오를 탓해야 마땅하지만 츠네오를 비난하면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현실을 직면해야 하기에 애꿎은 조제를 갈구는 데 그치고 만다.


또, 조제에게 대화를 요구한 것은 본인임에도 조제를 불러낸 장소는 유아차로 접근하기 어려운 언덕이었다.

 조제는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해 너무나도 높은 비탈길을, 그것도 또 다른 약자인 이웃 여자아이의 힘을 빌려 올라간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화를 하기 위해서 장애인은 사실 너무 많은 힘이 필요한 것이다.  키가 큰 배우로 연출하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질투 어린 시선과 구도는 꽤나 살벌하다. 위압적인 구도와 더불어 혐오 섞인 비아냥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한 술 더 뜨는 조제의 모습이 좋았다. 꼬우면 너도 다리를 자르라거나 당당하게 팔을 올려 너도 뺨을 대라는 우리의 조제.


이전에 신기한 구름을 보고 온 이후에 할머니는 조제에게 세상의 한계를 상기시키며 그를 현실로 끌어내렸다면 여기서 조제는 주제도 모르고 감히 세상에 저항한다. 그 와중에 일본열도의 이찌방 하여자인 썸붕녀는 조제가 들어 올린 팔에 한 대 맞아주고서 조제를 한 대 더 때리고 간다. 퇴장마저도 하여자답다.


구여친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평범한 우리네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는 약자를 돕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약자를 동등한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에게 약자는 언제나 도움을 주는 대상일 뿐, 자신과 동일한 위치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로는 여긴 적이 없다. 그러니 조제가 그의 세계를 위협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만든 관념에 갇혀 분노를 표출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장애라는 요소는 여성, 노인, 이민자, 성소수자 등 다른 정체성으로도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영화가 제작된 지 11년이 흐른 지금에야 현재를 사는 우리는 영화 속 사람들보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낯선 삶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선한 의도와 달리 무심코 실수를 연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실수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소수자의 삶이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인의 생소한 특징 하나에 꽂혀있다가 결국 그 사람의 정체성을 단일한 특성으로 환원해버리곤 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약자를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배려와 그들을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태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한 가지 특징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는 오히려 이들을 제한된 틀 안에 가두며, 배려라는 이름 아래 약자를 타자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PC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디어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면 우리는 낯섦에서 비롯된 편견을 줄일 수 있고 또 다른 하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약자에 대한 시혜적인 태도를 거두고 동등한 관점에서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무지는 무례로 이어지기 쉽다.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접하고 새로운 시선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누구든 구여친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많은 장면을 다룬 것도 아닌데 생각 나는 대로 적다 보니 글이 또 길어진다. 큰 인상을 받은 영화는 아니었음에도 이야깃거리가 꽤 많은 영화이긴 하다. 다음에 다시 보게 된다면 사랑에 더 초점을 맞춰서 봐야겠다. 뭔가 찡한 느낌이 오다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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