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녁, 인근 공원에 산책 갔다.매일 만보 걷기인증을 위해서다. 강추위는 풍경도 낯설게 만든다. 평소 많은 이들로북적이던 공원 길이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로한산했다. 목도리를 얼굴까지 감싼 분, 롱패딩을입은 채 움츠리는분, 잠바를 입고 러닝 하는 분, 강아지를 앞 세워 걷는 사람까지 다양한 산책의 풍경이다. 불어오는 칼바람은 맨살을 찌르듯 날카롭다. 이런 날에 들리는 노랫소리는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추운 날 누가 공연을 할까" 노래가 이끄는 쪽으로 향했다. 광장 한 켠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한 남성이 있었다. 관객이 아무도 없어 지나칠 수가 없었다.몇 명의 관객이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자며 선 채로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노래를 들었다. 길거리 가수는 무슨 사연으로 이 추운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노래에 집중하며 눈을 감았다.작은 떨림과 숨소리까지 느낄 정도로 온몸은 수신기가 되었다. 그는 한 사람을 위해 진심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그가 목을 축일 때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날이 추워 공연하기 힘들겠어요. 혹시 신청곡도 가능한가요”
“네. 제가 아는 노래면요”
“목소리가 참 따뜻하세요. 듣는 동안 편안해졌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격려의 마음이 전해져 힘이 납니다.”
“그럼, 윤도현의 ‘나는 나비’ 부탁드려요”
~내 모습이 보이질 않아. 앞길도 보이지 않아. 나는 아주 작은 애벌레 / 살이 터져 허물 벗어 한 번 두 번 다시 나는 상처 많은 번데기/ 추운 겨울이 다가와 힘겨울지도 몰라/ 봄바람이 불어오면 이제 나의 꿈을 찾아 날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노래를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추운 날씨도 잊을 정도로. 마치 콘서트에 온 관객처럼. 그분은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근무하며 취미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힘든 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는 나비>를 신청한 이유도 애벌레가 고치 속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나비가 되는 것처럼 멋지게 그가 비상하라는 응원의 의미였다.
그분은 황가람 가수의 <나는 반딧불>로 화답했다.
~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원곡은 2014년 중식이 밴드가 불렀으며 스스로를 사랑하기는 어려웠으나 마침내 내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이야기가 담아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가사는 성찰과 반성 그리고 정체성이 녹아있었다.
추운 겨울 텅 빈 공원 광장, 아무도 듣지 않아도 자신이 지금 고치 속에 있음을 아는 사람. 세상의 시선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한 걸음씩 묵묵하게 걸아가는 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다.
새해 첫 날 일출을 기다리며
공감과 연대
누군가에힘이 된다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음악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다. 듣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며 찾아서 듣지는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노래를 집중해서 들었다. 음색이 느끼고 그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떠올려 보았을 뿐이다. 그는 힘 있는 가수인 윤도현, 팝페라 가수로 고운 목소리를 가진 임영주, 담백하고 따뜻한 성시경이 섞여 있는 듯 그만의 부드러운 단단함이 있었다.
혼자 듣게 된 버스킹, 나라도 관객이 되어주자는 마음, 그의 몸짓과 노래에 집중했던 순간 그리고 짧게 소통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내 귀가 조금은 열렸다는 사실이다. 영하의 날씨, 공연하기에는 힘든 상황에서손을 불어가며 노래하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마음은 공감이자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였다. 그는 노래로 삶을 표현하며 소통하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정작 세상의 온갖 소음은 들으면서도 누군가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을까. 나를 돌아보게 되는 기회였다.글을 자주 쓰자며 입버릇처럼 내뱉으면서도 일주일에 한 편 발행하는 것도 못하고 있다. 온갖 핑계를 대며 하지 않고 있는 나. 새해에는 좀 더 부지런해야겠다. 잘 모르는 분야라도 주변에 열심히 사는 분들을 응원하자. 길거리 공연에서 실력을 벼리는 그분처럼 역량을 키우기 위해 도전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한다.
생각이 향하는 곳에 모든 대상은 반응을 한다. 거리 공연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글을 써야 하는 안타까운 내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외롭게 노래를 불러야 하는 고통의 과정을. 그럼에도 한 분의 독자를 위해서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힘을 주는 글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