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보이는 큰 줄기만으로 접근해서 보면 태어나고 자라서 배우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 하는 것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그 안에서는 다툼과 화해, 행복과 질투, 건강과 질병,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고난 등 유형무형의 것들이 담겨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의 번뇌와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번뇌는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것부터 당장으로는 가까이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 옷차림, 몸가짐, 말씨 등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나를 채우고 있는 습관이나 추억 날씨 등에 따라 별것 아닌 일에도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찰나의 시간 안에서도 무한대의 감정의 결을 느낀다.
처음 글을 쓰면서 산다는 것이 많은 사건 사고들 속에 내 의식의 흐름이 어떻게 결정되고 어떤 표정과 태도로 나타날 수 있는지 그 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진화해 나가는지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삶을 정의해본다는 것이 막상 불편하고 쉽게 어느 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삶이란 원하는 방향의 점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갈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기도 하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배제하지 못한다. 다만 조금 나은 점을 가지려고 한다면 좀 더 나은 사유와 방향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했다.
사유의 방향점을 긍정적으로 가지려면 사고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즐기느냐가 나에게는 가장 커다란 숙제였다. 실제로 고독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운 창작물을 만들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피폐하게 만든다.
10대와 20대의 나에게 있어서 머리로 배운 학문들은 나를 고독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다 큰 맘먹고 행한 일들로 ( ‘하루 좋은 결정을 했다’고 ‘한 시간 선행을 했다’고) 고독이 한 발 물러서 주지도 않았다.
이러한 이유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교만과 허영 그리고 타인과의 비교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긴 고독의 한가운데를 지나보라. 결국 나의 고독이 외적인 것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결론에 다다르기도 한다. 독립적이지도 못하고 외부로부터의 영향에 자유롭지 못한그마음이 고독의 실체 같기도 하다.
일주일, 혹은 하루나 반나절이란 시간을 보자 그 시간 누구와 만나면서 감사하고 재미있고 한편으론 귀찮고 힘이 든다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가 되면 무료하고 외롭다. 인생의 시간이 후반부에 있을수록 혜안이 생기고 인생을 관조할 힘이 생길 것 같으나 오히려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외형적으로 아무리 화려한 삶이라 하더라도 인생의 크나 큰 화두이고 난제라 할 수 있는 고독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보통의 우리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시간을 바쁘게 쪼개면서 물질적으로도 풍성한 삶을 살고자 애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많은 것을 투자한다. 또 그러한 것들 안에서만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또 만남을 이어가면서 우리는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관계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외적인 것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우리가 물질을 외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은 고독을 극복하는 것만이 인생의 점을 완벽한 선에 가까이 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인생을 책으로 보거나 심한 굴곡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나이가 들면 사고나 질병 등의 고통을 겪어야 하고 가까운 사람을 잃어야 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주어진 라이프 사이클이 사람마다 다르게 존재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사람마다 겪어온 경험치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어떤이에게는 삶의 중요 변곡점마다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견딜 만한 수준의 것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급적 밸런스를 갖춘 사고를 하다 보면 각자의 삶의 궤적을 그리게 된다.
고독을 극복하도 하루하루 좀 더 나은 점을 찍으려면 각자의 삶의 방식에서 방향점을 조금씩 달리 해 삶을 의식적으로라도 단순화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완벽하지 않을 지라도 말이다.
수도생활을 많이 하셨거나 삶에 정진을 많이 하신 분들의 삶은 대체로 복잡하지 않다. 정신과 육체가 일정한 밸런스로 유지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런 분들은 고독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고독을 자기 통제 아래에 둘 뿐이다.
‘삶이 공부다’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 말이다. 공부는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주공부(做工夫)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공부란 ‘불도(佛道)를 열심히 닦는다’는 뜻이다.
긴 인생보다 오늘 한 점을 밝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인생의 선을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교정해 줄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짧은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유와 실존의 사건들이 하나 둘 점으로 모여 삶의 한 선이 이루어지기에 오늘 작은 것에 대하여 소중하게 접근하고 취급해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채근담엔 "지혜를 줄이면 인성의 온전함을 얻는다"라고 했다. 복잡한 관계보다 단조로움 속에서 사유의 즐거움을 깨달아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