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추억은 그립고도 슬프다. 혹자는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이 현실의 벽에 막힌 사람들이 찾는 탈출구 정도라고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다는 것,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인생은 그러하지 않은 인생보다 좀 더 충만하고 풍성한 감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감성과 추억을 삶의 이곳저곳에 조금씩 묻혀가며 작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호박잎!
장마가 시작된 이후 8월이 오기 전까지 어린 시절 집 앞의 텃밭은 호박 덩굴과 들깨 그리고 요즘은 약재로도 쓰이는 까막중이라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었어도 도회지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놀이 방법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을 때였다. 방학이 되면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모두 해결한 것 이외에 특별난 것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폭염의 한가운데 어쩌다 비라도 내리면 사둘을 치고 송사리를 비롯해 붕어 등 물고기를 잡아 닭 모이로 주고 돼지 먹이로 주고는 했던 것이 그나마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다리 위에서 사둘을 농수로에 내리고 앉아 있으면 요즘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음식이 된 추어(鰍魚)탕의 주재료인 미꾸라지가 사둘 그물에 걸려 많이 올라왔다. 미꾸라지는 당시 우리 시골 동네에서는 그리 인기 어종이 아니었다. 아마 미꾸라지는 도시에서 먼저 인기를 얻어 그 인기가 시골에 까지 내려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미꾸라지가 침을 과하게 흘리는 아이들에게 구워 먹이면 효과가 있다고 해서 짚불에 구워 먹이곤 했다. 당시엔 병원 가기가 힘들었고 웬만한 피부질환 등은 민간요법으로 해결하기 일쑤였다. 잡힌 미꾸라지를 짚불에 굽게 되면 짚이 타면서 검은 재가 미꾸라지 몸체에 붙는데 커다란 호박잎의 뒷면으로 훑으면 쉽게 껍질이 제거되고 하얀 속살만 남게 되는데 이것을 침을 삼키지 못하고 입 밖으로 흘리는 아이들에게 많이 먹였다. 피부가 벗겨진 미꾸라지 생김새도 불량하고 해서인지 당시 아이들도 먹기를 많이 꺼렸다.
요즘 아이들이 약 먹기 싫어하듯이 말이다. 아마 미꾸라지를 약으로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미꾸라지에 관련하여 무슨 이야기가 없나 찾아보니 미꾸라지가 잉어목에 속한단다. 아마 그래서 잉어 같이 약으로 쓰나 보다.
여름철 시골의 밥상은 짠지(장아찌) 천지다. 지난해 만들어 놓은 무 장아찌, 오이 장아찌부터 해서 깻잎이나 고추 절임, 콩 조림, 애호박 장아찌 등 대부분 냉장고 없이도 보관이 가능한 음식이 여름철 주메뉴였다. 여름이니 신선한 야채가 무궁무진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우리가 겨울철에 사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야채 수만큼도 못 되는 것 같다. 굳이 손가락으로 꼽아본다면 노각무침이나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정도 일게다.
어른들이 여름철 반찬으로 좋아했던 것 중 하나로 호박잎이 있다. 어머니는 식사 때가 되면 걱정이 크셨다. 반찬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더위에 불을 피우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 이어서다. 그래도 밭에 나가기만 하면 반찬으로 쓸 만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철이면 밭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가지나 애호박, 오이나 노각, 호박잎이다. 연한 호박잎을 따다 줄기의 강한 부분을 벗겨내고 물로 씻어 밥솥에 밥과 함께 찌는 게 조리방법의 전부이다시피 단순하다. 그리고 강된장을 만들어 찍어서 먹거나 밥을 강된장에 비벼 호박잎에 얹어 먹는 게 보통이다. 그때의 아이들도 호박잎과 호박잎 줄기에 돋아난 가시 같은 돌기의 불편한 식감과 아무 맛도 없는 잎을 먹는다는 것에 영 마땅치 않아했다.
오늘 아침밥상에 시골에서 가져온 호박잎이 놓여있다. 작은 호박이 달린 연한 줄기와 잎이 특히 좋은데 우렁 강된장에 밥과 함께 싸 먹으면 부드럽고 연한 향으로 잃어버린 입맛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아이에게 먹도록 권하면 겨우 손톱만큼 잘라 된장을 묻힐 듯 말 듯 해서 온 인상을 찌푸리고 먹는 시늉을 한다.
‘나는 호박잎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데, 딸아! 너도 아빠가 이리 챙겨주는 것을 기억하려무나.’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호박잎에는 비타민 B1, B2가 많다. 비타민 B군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다. 또 비타민 A와 C도 만만치 않게 들어있다. 뼈에 좋은 칼륨과 칼슘, 인 역시 풍부하다. 아이가 이 맛을 알면 다른 보약이 필요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