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모내기가 끝난 들판에 담긴 추억

농부와 농우들의 고단함 속에서도 아이들은 즐거움을 찾아냈다.

by 이상훈



평야지대였던 우리 시골의 예전 모내기 방식을 살펴보면 모를 논에 내기 전에 가족 단위로 혹은 이웃과 일손을 나누는 품앗이 형태로 못자리 판을 만들어 모를 키워내는 작업을 했다.


못자리에서 모내기를 할 정도로 자라면 황소나 어미소에게 쟁기를 붙잡아 걸고 논을 갈아엎는다.
요즘이야 트랙터를 이용하여 2시간 안팎이면 1500평 정도를 갈아엎을 수 있지만 예전에야 동원된 소의 성격이나 힘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소가 지나간 자리는 봄 사이 자랐던 연한 논풀들이 땅 속에 처박히고 땅속의 줄기식물이 가끔 몸을 드러내는데 그중 하나가 올방개이다.


올방개의 둥그런 줄기는 검은색을 띠고 있고 속은 고구마같이 약간 딱딱하고 단맛이 나는 흰색의 녹말 덩이 같다.
올방개는 쟁기질 한 논에서 우연찮게 발견되기도 하지만 쟁기질하고 물을 댄 논에서 20여 일 이상이 지나면 단단하고 긴 줄기가 봄바람에 살랑거리면 수면을 뚫고 올라온다.
우리는 그것이 올방개 줄기라는 것을 자연적으로 안다.
지금이 바로 콩보다는 좀 크고 밤톨보다는 작은 시커멓고 둥그렇게 생긴 올방개 덩이줄기를 먹는 철이다. 언제 이것을 먹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간 단맛 나는 이 올방개 줄기는 그 어린 시절 긴 농로를 따라 어른들이 일하는 곳까지 한 참을 걸어야 했던 어린아이들이 심심풀이로 선택했던 먹거리였다. 그것은 무료함을 달래주기도 하고 배고픔도 잊게 해 주던 먹거리이지 않았나 싶다.


못자리 판의 크기는 모내기할 논의 크기에 따라 제각각인데 관리가 편하도록 논의 가장자리 등에 만들었다. 모를 키워내는 데는 물 사용이 필수적이므로 못자리 주변에 임시용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놓기도 했다.

못자리는 못줄 등을 이용하여 논바닥을 평평하게 만든 다음 넓이가 대략 1미터 50센티로 해서 길게 판을 만든다. 그런 다음 평평한 못자리 판 위에 소독을 끝낸 볍씨를 뿌리고 3미터 정도의 통대나무를 4 등분한 대나무살을 50센티 간격으로 둥그렇게 좌우로 꼽은 다음 비닐로 덮으면 모판에서 모를 키워내는 작업은 1차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다음 할 일은 아침저녁으로 못자리를 덮고 있는 비닐하우스의 양쪽 끝 부분 등을 열어 주어 공기가 잘 환기되도록 관리해 준다.

모는 대략 20센티 정도 자랄 때까지 비닐하우스 못자리 안에 있게 된다.


모가 어느 정도 자라 모내기할 때가 되면 쟁기질한 논에 물을 댄다. 그런 다음 쟁기질할 때와 마찬가지로 황소나 어미소에 엉성한 빗처럼 생긴 것을 걸고 물에 의해 응력이 약해진 흙을 부수는 작업을 한다.


그런 다음 적당히 물을 빼어버리면 평평한 논바닥이 드러나게 되는데 너무 오래 물을 대 놓으면 모내기 과정에서 일꾼들의 발이 흙속에 깊숙이 박히기 때문에 작업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예전엔 소로 쟁기질을 할 때에는 등에 멍에를 지우고 소가 일하다 멈춰 서서 풀을 뜯어먹지 못하도록 소의 입을 짚으로 꾸민 망태기로 덮어 놓기도 했다. 그러면 쟁기 질에 지친 소는 하얀 거품을 연신 뿜어내는데 지켜보는 고통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소 주인은 일이 끝나면 콩과 각종 콩깍지 등을 썰어 넣고 끓인 고단백의 여물을 먹이며 낮 시간의 어려움을 달래 주기도 했다.


봄 철 내 올라온 풀이 논 흙이 뒤집어지면서 땅 속으로 몸을 숨기면 대신 땅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씨앗과 땅강아지 같은 곤충류가 갑자기 나타난 밝은 햇볕에 깜짝 놀란다. 어느 해인가는 드렁허리(충청도 지방에서는 웅어, 안동지방에서는 선어라고 부름)라고 불리는 뱀장어와 유사한 장어류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땅강아지는 앞발의 힘이 무척 강하고 땅에 놓아두면 금세 땅을 파고 사라진다. 웅어도 물기가 없는 땅에서도 살아남을 정도 생존력이 뛰어난데 둘 모두 논둑을 허무는 버릇이 있어서 농사짓는 분들과는 상극이었다.
드렁허리라고 불리는 웅어는 뱀과도 생김새가 비슷한데 내 어릴 적엔 가까이 하기가 너무 싫었다. 그러나 본초강목에 성질이 몹시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하고 습비를 치료하고 허손 된 것을 보하며 입술이 허는 것을 낫게 한다고 되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올방개의 설명을 보면 연못가에서 자라고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어 있으며 끝에 지름이 5~8mm의 덩이줄기가 달려 있다고 되어 있다. 골풀 같이 잎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원줄기는 둥글며 속이 비어있고 격막이 있어 마디처럼 보이며 밑에 적갈색의 잎 집이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는 골망대라고 부르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