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초등학교 시절
가을이 되면 시군구별로 많은 문화행사가 열렸고 그 가운데에 사생대회가 함께 개최되곤 했다. 내가 사는 읍내의 초등학교에서도 아마 10월 말이었는지 11월 초였는지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던 어느 날 사생대회가 개최됐다.
그것을 준비하려고 해서였는지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여름이 지나면서 매일 방과 후 교실에 남아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최윤순 선생님 이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분께서는 내가 6학년 내내 그림을 그리도록 지도를 하셨다.
특활반 활동 때 그림을 그렸던 아이들 가운데 좀 소질이 있어 보이는 아이들은 선택을 받아 방과 후 정물화 풍경화 등 부분별로 구도와 채색 연습을 했다.
정물 분야에 많은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그 아이들의 이름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풍경을 그렸던 나는 가끔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이 예전에 배우셨던 색칠이나 스케치 방식에 대해서 코치를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신 스타일과 많은 차이를 보였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 그릴 스케치북 양이 넉넉하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칠판에 백묵으로 구도를 잡는 연습도 많이 했다. 뭐 딱히 잘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매 학년 담임선생님의 관심은 있었지 싶다. 팩트는 묘사를 매우 빨리 해냈다는 점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자주 최고상을 받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실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림도구도 형편없었다. 당시 유명한 왕자표 크레파스도 없고 매우 가난한 집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리 환영받을 일이 아니었다.
방과 후 운동장 가에 앉아 석양빛에 물든 노을을 그리기도 하고 함석으로 된 지붕을 그렸다.
그해 미술대회 출전 전 있었던 일이 인상적이다. 그날 은 비가 내렸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과 우리 반 아이들이 체육시간을 빌어 퀴즈 대회를 했다. 1등을 하면 낙타가 그려진 문화연필 한 타스를 받았다.
20문제 정도가 출제되고 아이들이 정답을 알면 손을 들어 맞추면 된다 10문제 정도가 출제된 상태고 내가 거의 다 맞춘 듯하다. 그런데 사생대회 출정식을 한다고 교무실에서 호출이다.
거의 다 맞추는데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지면 되는데 심부름하는 학생을 통해 몇 번 더 호출이 있었다.
대회에 출전하는 아이들이 교무실에 열을 지어 서 있었고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있었다.
아쉬움이 컸던 호출이었다.
그렇게 수상도 못하고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열리는 읍내의 초등학교로 가야 하는 날 아침이다. 들판엔 서리가 내려 눈처럼 하얗다. 두꺼운 겨울 양말을 여름에나 어울릴법한 검정고무신은 담아내지 못했다.
맨발에 최적화된 고무신은 배우 성동일이 구두에 신었던 빨간색 나일론 양말과 같은 두꺼운 겨울 양말을 신은 내 발을 거북스럽게 여기는 듯 뱉어냈다. 급기야는 지푸라기로 신발을 발과 함께 동여매고서야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뒷면에 도장이 찍힌 도화지 한 장을 받아 들고 3층으로 지어진 학교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수채물감으로 그리는 아이, 크레파스로 그리는 아이 그리고 이젤에 그리는 아이 맨바닥에 대고 그리는 아이 등 참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많은 아이들이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난간 근처는 위험하다 보니 통제가 되었고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교회 첨탑 밖에 없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합덕 제일 중앙 감리교회이다.
교회 지붕은 디귿자로 꺾어 못으로 고정한 다갈색 철구이었다. 지금도 그 학교 근처를 지나다 보면 지붕 색이 바뀐 똑같은 교회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보아도 그림의 색상 구현과 배경에 조급함이 역력하다. 미술대회 참여 경험이 많았으면 다른 생각이라도 해보았을 터인데 그 당시에는 그것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회 첨탑을 적당히 스케치하고 나서 크레파스로 색을 입히려니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든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아침에 그 정황으로 출발을 했으니 손에는 지우개도 연필을 깎을 칼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함께 가 풍경을 그렸던 후배에게 지우개를 가지고 있는지 물으니 그 친구도 없단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좀 화폭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할 게 없다. 지붕의 철판 색이나 좀 다양하게 칠하려 해도 소용없는 짓이 되었다.
이젠 나를 채워 가는 것이 그림은 아닌 게 확실해진다. 그렇게 죽을 듯 슬퍼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