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도깨비 풀씨

검정고무신과 나일론 양말에 대한 단상

by 이상훈


어릴 적 들판에서 뛰어놀다 보면
나일론 소재의 옷감엔 여지없이
도깨비 풀씨가 잔뜩 묻어 있었다.
털 가막사리라고도 풀린 이 풀은 약초명이 귀침초라고도 한다. 약초라고 되어 있으니 분명 약초인가 보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나일론으로 된 피복과 양말이 참 많았다. 운동화도 있었지만 조금 경제사정이 나은 집의 아이들이나 신었을 정도였고 우리는 주로 검은색 고무신에 두꺼운 나일론 양말을 많이 신었다.
고무신도 등급이 있어서 말표나 타이어 표시가 선명한 흰색 고무신은 좀 아주 조금 더 잘 사는 집 애들이 신었다. 아마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고무신을 신지 않았나 싶다.
왜 그런 기억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 당시 난 그림을 조금은 그릴 줄 알아 매번 교내 그림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학교별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합덕초등학교에서 벌어진 그림대회에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가 아마 시월말 정도로 추수가 끝나 갈 때가 아니었나 싶다.
붉은색 양말에 신발이 자꾸 벗겨져 지푸라기로 동여 메고 버스가 들어오는 내경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땐 왜 그리도 추웠는지... 손발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무 튀튀 하고 하얗게 줄이 보이도록 터져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한 번도 흰색 고무신을 신어 본 경험이 없다.
고무신은 보통 맨발로 신는 것이 제격이다. 그럼으로 달리면 땀이 차 벗어지기 일쑤였다. 여름철엔 또 고무신으로 가려져 햇빛을 보지 못해 조금은 하얘진 고무신 안 발가락 주변은 땀과 흙먼지가 합쳐져 이태리 타올로 쭉쭉 밀어 올린 때 마냥 흙이 엉겨 붙어 나왔다. 좀 사는 아이 집의 대청마루라도 올라갈라치면 정말 창피해서 신발을 벗지 못하고 일단은 지하수 펌프가 놓인 수돗가로 가서 한 차례 발을 씻은 담에야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 고무신에 두껍기만 하고 보온성은 별로 였던 불에는 정말 잘 타는 나일론 양말은 70년대의 인기 품목이지 않았나 보다. 가끔 옷을 사다 동네에 팔았던 어머니 덕에 속옷은 깨끗한 것을 많이 입었지만 그 도깨비풀 가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진다.

늦은 가을이거나 따스한 겨울철이면 논둑이나 농수로 사이에서 불 피우고 가을걷이가 덜 끝난 콩 등을 구워 먹거나 볏단을 쌓아놓은 볏가리에 불장난하려고 집에서 가져온 성냥으로 여기저기 불 피우다 보면 농수로에서 말라가던 이놈에게 한 번도 습격을 받지 않은 아이가 없을 정도다.

장난감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엔 길에서 흔히 주울법한 맨발로 다니다 정말 많이 베이기도 했던 사금파리를 주워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만들었다.

경사가 진 농로에 사금파리로 부엌 구조를 세우고 성냥불을 피워 밥을 짓는 모습도 행하곤 했는데 이러다 보면 주위에 있던 도깨비풀의 가시처럼 생긴 풀씨가 온몸을 고슴도치 저리 가라 하듯 만들곤 했다. 가끔 발을 웅덩이에 빠뜨려 양말이 젖으면 젖은 양말을 불에 말리기도 했는데 나이론으로 된 양말은 마르기보다 불에 쉽게 녹아내렸다.

집에 돌아오면 불냄새와 옷에 묻은 둑새풀로 매타작도 벌어지고 모두가 노곤하여 잠든 밤이면 어머니는 불에 타 구멍 난 곳을 못쓰게 된 다른 양말을 이용하여 밤늦게 까지 양말을 기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