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량주 잔에 향이 흘러넘친다. 안주가 들어오기 전부터 춘장에 양파와 단무지를 찍어 몇 순배 고량주가 돌았지만 약간의 과장이 섞인 목소리 톤 등을 제외하고는 어색한 분위기가 여전하다. 나이가 드니 젊은 시절 같은 질펀한 농담과 호기로움이 대화에서 많이 사라졌다. 대신 내면의 것들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는 듯한 진중한 표정들만이 가득하다. 그래도 어느 순간 누군가는 사건의 어느 부분을 의도적으로 말해 보려 하기도 한다.
저들에게 불타는 20대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세상을 엎어버리려는 듯한 격한 논쟁에서부터 사람의 됨됨이 그리고 조직의 효율성과 합리성에 대해서 까지 열띤 논쟁을 벌이던 때가 엊그제 같다.
가식 없이 쏟아내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혹은 쏟아내어야 만이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고 믿었던 때가 말이다. 지금에서 다시 보니 20대의 그들은 사라지고 흰머리가 무성한 이들이 제각각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숨기고 대화를 조절해 가며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들에게서 보이는 여유라는 것이 결국 자기감정을 숨기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때를 기다리거나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 혹은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었을까?
어른스러움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보통 사람들이 기대하는 경륜이나 연륜이라기보다는정말 무엇인가를 내색하지 않고 잘 감춘다라는 것일까?
세상 많은 곳에는 정말이지 자신의 이익과 관계없이 어른답게 세상을 정상적으로 바꾸려고 하고 자기 자신에게 힘든 구석이 있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라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이 겨우 머리숱이나 줄어들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하는 외양적인 변화 외에는 없는 것인가? 어쨌든 지금 이들에게 나이 듦으로써 예전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표정을 감추고 내색하지 않는 것 정도다 .예전 그 패기 넘치고 호기 넘쳤던 아이들이 사라졌다라는 것으로 나는 세월이 흘렀음을 나이가 들었음을 보게 된다.
이제 술잔이 몇 순배 돌았는데도 내심의 감춰진 말은 드러나지 않는다. 여전히 과장된 어투가 난무할 뿐 정말 이야기하고 싶고 알고 싶은 것들은 어디에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본질과는 관계없는 엉뚱한 장난질 같은 것들로 홀안이 가득찼다. 물론 그러다가도 간혹 자리의 진중함이 필요하다는 듯이 자리와 자리 사이에 그룹이 만들어지고 명분 쌓기용인지 진솔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50줄을 넘어선 이들이다 보니 언성을 높이는 일이 줄어 피곤함은 덜었다는장점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렇더라도 대신 속마음을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필요한 자리인지 의심스럽다.
어쩌면 이런 것이라도 견디어 내는 것이 어른인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모두바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못할 걸 알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한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어쩌다 내심 자리에 욕심을 갖는 이가 있어도 표현이 노골적이지 않고 에둘러서 간곡히 표현하는 정도다.
나이가 듦으로써 생기는 자기중심의 가치관이 젊은 시절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집이 더하여서인지 확실히 지금은 젊은 시절에 비하여 모든 사고와 대화의 중심에 자기를 놓으려는 경향이 많아졌다.
직급의 월등한 차이가 있거나 나이가 심하게 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경쟁자들인지라 자신의 공적을 높이려 하고 함께 협력했던 것이나 나눈 것들에 대한 감사해하는 마음도 상당히 줄었다.
어떤 이의 인사말을 보자. “여러분과 함께 이렇게 큰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그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회장을 직접 만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회유와 압박을 해 현재와 같은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회사의 대표와 일개 간부 나부랭이가 이야기를 하면 어느 정도나 성과를 낼 수 있으며, 상대에게 압박이 되기나 할까! 무언가는 뒷배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니 던가.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새로운 정책의 도입으로 부서장들 간 약간씩 결을 달리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죽고는 못 살 것 같이 많은 것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어느 틈엔가 편이 나뉜다. 직급의 편차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종국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위안을 만들어 정의보다는 이해관계를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도록 하는데 아무런 고뇌도 갖지 않는 것 같다.
40~50대 직장인들의 일상에서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의미 없는 것인가를 살펴보자. 혹자는 내가 얼마나 인사나 업무 평가를 공정하게 처리해주었는데 혹은 여러 현안을 객관적 기준을 바탕으로 외부의 결정적 압력을 막아 주었는데 밑에 있는 사람들이란 그저 공짜를 바라기만 한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이들은 어쩌면 더 심한 외로움과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이의 생각으로는 “이제 내가 권력을 갖고 있지 않으니 나로부터 호의를 받았던 이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전혀 이해해 주지 못하고 있다. "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다는 것이 권력을 가졌어했다거나 사건의 앞뒤를 꿰어 맞추듯 이익이 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이 배분되는 지를 빠르게 계산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어른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나를 가르쳐 나가는 것이 아닐지. 무작정 윗세대를 비난할 것이 아니고 앞에 있는 이가 나라면 나는 어떤 스태스를 취했을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든다고 당연히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