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정답은 없다

by 이상훈


그런 때도 있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7월 둘째 주부터 월요일 아침엔 이렇게 꼭 비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도 좋은 일 나쁜 일이 연이어 계속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맞추어 비가 내리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정말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날 정말 꿈적도 하기 싫은 날이 있어 그동안 하던 빨래도 모아서 한꺼번에 하고 싶을 때도 있고, 재활용 분리수거도 좀 참았다가 다음 주에 한꺼번에 버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시간, 정작 무엇이 나를 위한 것인지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깔끔하게 집안을 정리하고 개운한 마음을 갖는 것이 나를 위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좀 지저분하더라도 내 몸을 편안하게 눕혀놓고 싶은지는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어느 때는 피곤에 지쳐 친구들이 불러도 나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고 똑같은 상황인데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고 기분을 전환시키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그때 달랐지요. 당시엔 아무것도 아닌 그런 문제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닦달도 하였습니다. 실제 보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였고 무엇이 정답이다라고 정의 내릴 필요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데로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을 하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나니까요.


딸아이의 성격유형이 “INFP"이란다. 그러면서 아빠도 테스트해보라고 톡을 보내온다. 아빠는 ”ISTJ"형이라 하니 슬퍼한다. 자기와 아빠는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쪽에 가깝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아빠와 엄마는 닮아가나 보다 하고 “허허” 웃어넘겨 보는데 딸아이는 자못 심각하다. 관계라는 것이 꼭 대단한 것이 잘못되어서 틀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을 한다. 그럼에도 예전에는 관계의 어긋남을 예민하게 접근을 했는데 어른이 되고부터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쩌면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좋아해서도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그러하기도 하고 몇몇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인사고과”나 “평판” 때문에 반갑지 않아도 반가운 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나를 승진은 시키지는 못하나 탈락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아주 흔하게 들어왔기에 말이다.

처음 직장을 갖게 되면 학교 다닐 때 세웠던 꿈을 실천하고자 하고 야망을 갖는 것이 보편적이다.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그러하다. 초년기 직장에서 바쁘고 비전이 보이지 않으면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도 야망과 맥을 같이 한다.

또 좋은 직장동료도 사귀고 싶고 좋은 집도 갖고 싶어 한다. 아울러 사회는 계속해서 수입을 갖고 있는 직장 초년생들이 혹할만한 물질적으로 편하고 좋은 것들은 계속 공급한다.

사람의 욕망만큼이나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다.

업무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는 편집기자를 하려고 시작했는데 몇 년 안가 사업부서가 문을 닫게 되었다. 직원들이 이직을 하거나 비연관 부서로 뿔뿔이 흩어졌고 그나마 나 같은 경우에는 월간지 편집부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어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말이 편집부지 할 일은 전화번호부 광고 같은 것을 만드는 게 주 임무였다.

일을 평생 해야 하나 하고 생각을 하니 답답함이 그치질 않았다. 그 당시 답답함을 풀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슷한 처지거나 비슷한 또래의 직장동료들과 술자리를 갖는 게 전부였다. 회사 측의 배려로 매킨토시도 배우고 당시엔 나름 첨단 편집디자인을 마스터하기도 했는데 활용범위가 크지 않았고, 내가 할 일만 기하급수적으로 불어 갔다. 여유를 가질 수도 없고 하는 일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졌다. 그나마 원고 청탁할 인물들을 찾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다행스럽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한양대 조교로 있던 중학교 친구를 만나게 되기도 했다. 그 아이는 프랑스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지방의 모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성에 안 차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외부에서 받던 글의 일부를 직접 채워나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했던 일, 하고 싶었던 일과 비교해서 월간지 편집팀은 영 달랐다. 떠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러다가 정말 모 임원을 만나 자리를 옮기고 싶은 심정을 이야기해 가게 된 곳이 조사부였다. 그 자리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임원진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고 그러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눈밖에 난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번 터를 잡으면 그냥 말뚝이 되었는데 내가 자리를 옮길 때에는 정말 많은 이들이 지방과 타 부서로 전출을 갔다.


일은 사람을 가린다


옮긴 부서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욕만 진창으로 듣던 그런 부서였다. 회의석상에서 전체를 대표하여 지적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부서원 전체가 의욕이 크게 없어 보였다. 적당주의가 팽배한 상황이다. 좀 돋보이면 많은 일들이 떠 맡겨졌다. 새로운 일이 부서에 맡겨지면 잘 하자나, 당신이 해줘, 우리가 무얼 알겠어 등 약간의 비아냥이 난무했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오만함은 간혹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들 건드리게 했다. 예를 들면 권력자의 수익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원래부터 고비용 구조체였다. 비용을 아낀다고 접근해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들이었는데 그걸 건드렸으니 마음에 들일이 아니다.


사람을 따라 다니는 일


한편으론 이놈의 자식을 아끼면 “똥” 된다고 생각했는지 하지 않던 많은 일들이 떠밀려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설문조사”업무가 그것이다. 회원사를 중심으로 전국망으로 조사를 했는데 설문지 응답률을 높이는 방법이나 설문 문항 구성, 설문 분석 및 보고를 혼자 하다시피 했다. 자문을 구할 데도 없었고 스스로 자료를 찾고 설문항목이 엉키거나 엉뚱한 곳에 배치되지 않도록 안배했다. 물론 전문가가 아니니 체계적이지는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매년 동일 항목을 조사해 사업의 발전방향, 사업의 성과 등을 측정하는 지표로 삼기에는 무난했다. 회원업무를 하면서 부서원 전체가 가져야 하는 회원 개발이라는 목표도 동료들과 차별 없이 성과를 내야 했고 거기에 더하여 부수적으로 사업분석이나 신규사업, 홍보방안 등을 만들어냈다. 그게 나의 40대였다. 회사마다 연령대별로 하는 일이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우리 회사는 그랬다. 노령층이 적지 않았고 지나고 보면 그때 그 일을 했던 것이 인생에서 참 보람되었던 일이고 많은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시켰던 때였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그 부서를 떠나오니 설문조사와 분석 같은 업무는 사라졌다. 업무가 사람을 쫓아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분석업무를 배제시켜도 해당 부서에 무엇이 어떻다 하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한편으론 성과가 개인의 고집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는 것은 본인의 삶을 풍족하게 해 줄 수 있고 어쩌면 후배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거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단독행위는 위험을 수반한다. 이런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된다. 나 때(라때)는 말이지 너의 나이에 이런 일을 하기도 했다 처럼 말이다.

어려운 일을 함께 경험하지 않으면 친해지기 어렵다. 친해지지 않는 것들은 영원히 친해지기 힘들다


고등학교는 길게 다녀봐야 4년이다. 그럼에도 친한 친구들이 많고 추억들 또한 많다. 그런데 직장을 보자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30년까지 그렇게 다녀도 친하지 않은 이는 영원히 친하기가 어렵다. 직장생활을 10년 가까이하면 남의 눈치도 보고 성격이 맞지 않는 이와 일도 함께 해볼 시간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가까워지지 않는 걸 보면, 직장 생활에서 친구를 두기는 참 쉽지 않다. 그렇게 밤낮으로 모이고 의견을 나누고 술을 퍼 마셔도 공허한 것은 왜 일까? 하는 생각은 끊이질 않는다. 개개인의 성격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함께 나눴던 어려운 시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출세를 둘러싼 줄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직장 생활 초년기만 하더라도 서로의 처지를 궁박하게 드러내지 않고 잘 나 보이려는데 만 애쓰며 서로가 겪는 어려움을 이해해주는 등 나름 괜찮은 출발을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직급이 높아질수록 공통점은 이질적인 벽으로 고착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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