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즐거운 일을 찾아라

나이를 먹으니 그냥 한 번 시도라도 해 볼걸 이라는 생각이 많다.

by 이상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다.

어릴 때 난 무엇 무엇을 하고 싶다 하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동네 아이들 모두도 대부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듯싶다. 매 끼 굶지 않거나 간식거리가 있으면 행복한 때였다. 옷이 해지거나 신발이 닳아 구멍 난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 하여 크게 놀림감이 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이제는 읍내에서 철물점을 하고 가스 도소매업을 하고 주유소를 한다. 뭐 대단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도 혹은 그것을 위해 특별한 기술을 연마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삶의 흐름에 맡겼을 뿐이고 주어지면 주어진 데로 움직였던 것 같다.

따라서 많은 또래 친구들이 지금과 같은 경쟁을 경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당시 학교 환경에 대해선 특별한 관심 분야가 없어서인지 기억없지만 웅변대회가 자주 열렸던 것 같다. 선생님의 지시로 반장이나 부반장을 맡은 아이들이 단골로 연단에 서 떨리는 음성으로 열변을 토했다. 반공 포스터 대회도 자주 열렸는데 웅변대회에 나갔던 아이들이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제출했다. 그뿐이다. 특별히 타고난 재주를 가진 아이만 재주를 가진 길로 나서고자 했다. 재주(?)가 없는 아이가 일부러 무엇을 배우거나 열심히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놀기에 하루가 바빴다. 점심시간이면 공을 차고 놀았고 여학생들이 줄넘기 놀이를 하면 칼로 끊고 도망가거나 멀찍이 지켜볼 뿐이었다.

간혹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도 있는데 대부분 몸이 아팠을 경우이다. 생각해 보면 입을 벌리고 다니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비염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 환절기 때에 집중됐고, 지금은 대기업에 다니는 애들 대부분이 그때는 누런 콧물을 달고 살았다. 부임하셨던 선생님들의 성격도 제각각이었다. 마냥 좋기만 했던 분도 계시고 지금 같으면 성 추행범 으로 몰렸을 법한 분 폭력적인 분 참 다양했다.


놀이에 지치고, 비염에 지치고, 각종 영양소가 충분치 못해 많은 병고에 지친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눈이 죽은 생선 눈깔 같다고 핍박하기도 했다. 그 당시 무얼 그리 안다고 아이들에게 그런 타박을 했는지 안타깝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나이도 겨우 30세 전후이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 갔다 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들로 갯고랑으로 놀러 간다. 봄가을이면 논에서 공을 차기도 하고 딱지치기 놀이도 하고 여름이면 벽치기 구슬치기 놀이도 하고 갯고랑에서 게를 잡기도 했다. 저학년 일 때는 여자애들과 봉숭아 꽃물을 들이거나 소꿉장난을 많이 한 듯하다.

겨울철이면 병정놀이에 해가는 줄 몰랐다. 짚더미 속에서 기고 달리는 놀이여서 더 그랬다. 또 넓은 마당에서는 칼싸움 놀이가 제격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긴 막대를 칼로 사용했는데, 한참 후에 내가 긴 직사각 목재에 손잡이 보호대를 붙이고 손잡이에 진동을 흡수하기 위해 나일론 끈을 감이 사용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동일한 유형의 목재 모형 칼을 가지고 나왔다. 후에는 칼날의 번득임을 주기 위해 담뱃갑 안쪽의 반짝이 포장재를 손잡이를 제외한 칼 전체에 붙이고 나오니 그럴싸했다.

종이 딱지를 대신해 소주병 딱지치기도 유행했었다. 일단 소주병마개를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주로 지금은 마트와 같았던 구판장 등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곳을 찾는다. 버려진 소주병 마개를 주워다가 망치로 평평하게 폈다. 펴진 병마개를 딱지치기와 비슷한 방법으로 따먹기 놀이를 하거나 어른 걸음으로 세 걸음 정도의 거리에 평행하게 줄을 긋고 라인 한쪽에 서서 반대 라인 쪽으로 일정 량의 병마개를 던져 반대쪽 라인을 넘어 라인 가장 가까이 던진 아이가 모두 차지하는 놀이다. 자치기 놀이라는 것도 있다 15센티 정도의 둥그런 나무토막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지면에 놓은 다음 같은 두께의 긴 몽둥이로 뾰족한 부분을 치면 지면 위로 솟아오르는데 그 솟아오르는 찰나의 시간에 긴 몽둥이로 야구 배팅하듯이 휘둘러 가장 멀리 보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렇게 초등학교 5년이 지났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초등 6년이 되었을 때 담임이었던 주만수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었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상당히 막연했다. 사육사 말이냐? 하고 질문이 들어온다. 정확히 사육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집에 토끼를 몇 마리 그리고 강아지가 몇 마리 있어서 그리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중학교에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반에서 상위 클래스다 초등학교와 다르게 상반기 두 번 하반기 두 번의 시험을 치는 데 성적표에 항상 석차가 표시되었다. 상위 클래스에 표기되는 게 기뻤는지 아이들의 시선을 받는 게 기뻤는지는 모르겠다. 이때에도 뭐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단지 상위 클래스이면 과학자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물리학자보다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더 취향에 맞을지도 몰랐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을 찾아 사는 것이 결국에는 만족스러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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