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다른 말로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던지. “시각을 달리 해봐라.”라던지 등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코로나사태로 많은 이들이 일상의 무료함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
아침나절 문득 무료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천착하게 됐다.
무료함이 극도로 치닫았던 때가 나에게 있었다. 당시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녔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졸업하고 취직이나 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들어가기는 했는데 3학년이 되자 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진로가 바뀌었다.
고3 여름방학이 수험생들에게는 얼마나 중요한가! 그때 뭔가를 알고 그랬는지 몇달 안남은 학력고사를 제대로 치루려면 좀 더 다른 방학생활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가장 독립적으로 자취방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자취집은 정적으로 가득 차 간혹 무서운 생각마져 들었다.
석유곤로에 혼자서 아침 저녁으로 밥을 해 먹고 간혹 만나는 슈퍼마켓 아저씨가 말 거는 이의 전부이다시피 했다. 한 달 여의 방학이지만 그렇게 고독하고 무료할 수가 없었다. 말을 많이 하는 아이도 아니었는데 하루 종일 한마디도 내뱉은 적이 없는 날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고 있다.
아마도 인문계열 고등학교라면 같은 처지의 학생이 많아 학교에라도 가면 그렇게 심심하지 않았을 터였는데 말이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무슨 시간을 그렇게 갖겠다고 그랬는지...
지나고 보니 아무 의미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만들고 학교에 가서 텅 비었다시피한 도서실에 앉아 인문계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책들과 문제집을 훓어 보다가 저녁 무렵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며칠 후 보면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것은 지금에 비하면 좀 낫다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그 한 달간에 있었던 무료함과의 싸움이 의미가 있었을까. 점수가 그것 때문에 높게 나온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비슷한 아이를 찾아 함께 방향이나 목표 동기부여 등을 좀 더 구체화 해 나갔으면 좀 더 외롭지 않게 성과를 냈을 법 한데 말이다.
지금 생각으론 다시는 나를 그런 상황에 가두고 싶지 않다. 그때의 경험이 스님들의 면벽수행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삶에 그 닥 협조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몇 줄을 써나가는 것에 보탬이 되는 정도이다.
어떤 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 생활을 오래하면서 하루하루가 정말 엄청난 고통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사태와 같지는 않다. 스스로 억제는 것과 타자에 의해 강요 되는 것의 차이가 있다. 그이는 떠오르는 아침 해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고, 창문 밖으로 몇 번이나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가졌었단다.
난 아직도 외로운 것을 참지 못한다. 아마도 고3때의 그런 경험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성격이 쉽게 바뀌지는 않아 지금도 아무에게나 말을 걸고 하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다 보니 자주 외로움에 빠진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무료함을 잘 극복할 줄 알면 아마 성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엉뚱하기도 하지만 그것과 연결시켜 본 것이 스님들이 고요한 가운데 정진하는 것이 한편으론 무료함과의 싸움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물론 많은 스님들이 성찰을 하고 경험을 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하여 결론을 지어 보겠지만 실제로 일부는 무료함을 어떻게 이겨내 볼까 하는 고민도 적지 않겠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무료함이란 것에 나 스스로 다른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일상의 편안함으로 인해 삶의 반복인 루틴이 생기다 보면 무료함이 등장한다.
이와 반대로 잦은 결핍이나 궁핍, 관계의 어긋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유발한다. 양 극단 사이에서 우리 인간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른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무료함에 감사하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나친 무료함은 고통 못지않게 인간을 사지로 몰아낸다. 일부의 사람들은 자살 등 극단의 선태을 하기도 하고 일부의 사람은 보통의 인간사에서는 나타나지 말아야 할 혹은 금기하고 있는 엉뚱한 사건을 일으킨다. 양극단간의 절묘한 조합에는 신(神)의 능력이 요구된다.
많은 경험을 가진 작가들의 세계를 보자. 그들은 뛰어난 관찰력과 스스로 벌인 온갖 기행들을 바탕으로 작품활동을 한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말이다. 그들의 작품들을 보면 우린 그것이 일반인의 범사에서는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경험이나 관찰없이 상상만으로 특출 난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는 힘들 것이기에 말이다.
많은 일반인들이 그들과 같이 기행을 일삼는다면 세상은 혼돈일 것이다.
무료함 속에서 생기는 루틴의 특징은 무엇일까?
직장생활을 보자.
회사에 입사를 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거나 혹은 생소한 부서에 배치돼서 업무를 익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렵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는 등 업무 부담감이 극대화 된다.
잠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제법 대부분 일들이 몸에 익고 주변인과의 관계도 정립되는 단계에 이르면 우리 몸은 무료한 일상을 경험한다. 반복적인 안전한 삶이 오히려 권태로움으로 바뀐다.
무료함이 권태로움이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사고를 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수도자의 길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이 하기 쉽지는 않은 일이다.
같은 세상을 살아도 고통을 경험했던 이와 무료함만을 경험했던 이는 서로 보는 세상이 다르다. 부족한 만큼 채우려는 속성으로 균형을 맞추기가 성불하기보다 쉽지 않다.
무료함을 갖지 않으려면 우리 몸에 혹은 정신에 습관화 되는 것들을 막아야 한다. 또 가끔이라도 내면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아도 좋다.이 또한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