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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Nov 01. 2022

슬기로운 재활 생활

우린 아직 웃을 수 있다

2

병원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병원에 사회사업실과 음악치료실이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를 연다는 공고다. 순서도 제시되어 있었다. '가곡 멜로디-moon river-엘리제를 위하여-바람이 불어오는 곳, 로망스-엔터테이너-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어머나-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피아노와 기타, 플롯이 같이 연주된다고 했다.


사회사업실과 음악치료실이 어떤 곳인지 모른 채, 막연히 치료받는 중인 환자들이 공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재미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공연이 30분 동안인데 그때는 저녁 먹고 개인 운동하는 시간이라 공연을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가게 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 떨림 때문에. 수술 직후에는 안 그랬던 손 떨림이 일어났는데 이게 재활 운동으로 새롭게 살려던 날 다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다시 오른손을 써 본다고 젓가락질을 시작하고 글씨를 써 보고 그림을 그렸는데 모든 시작이 중지되고, 아팠던 때처럼 왼손으로 모든 걸 해야 하다니. 다시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러닝머신을 타러 가면서 울고 작업치료 끝나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울었으며 옥상에서도 울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서 친해진 언니가 한 번 슬럼프가 오면 그다음엔 더 발전한다고 위로해줬다. 그러면서 기분 전환 겸 음악회에 가 보자고 했다. 언니가 날 이해해주고 공감해줘서 힘이 되었다. 그래서 가게 된 음악회다.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루해서 중간에 운동하러 가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한 것과 달리 너무 좋았다.


피아노, 플롯 연주가 시작될 땐 공연이 시작된다는 생각만 했지 즐길 생각은 안 했다. 네 번째 순서가 되자 연주자가 연주하면서 맑은 목소리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르는데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숨기고 있었나 싶게 놀랍고도 좋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는 노래가 나와 신이 났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이 많아 더 흥이 돋았다. 즐기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그제야 음악회에 온 사람들이 보였다. 운동치료 시간에 소리 내며 울던 딸과 엄마, 아침 6시에 매일 걷기 운동을 시키는 간병인과 환자, 소리 없이 터지는 웃음을 자제하지 못하는 아들과 엄마, 옥상에서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고 나란히 노래 듣던 부부.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운동할 때 환자인 나는 다른 환자와 보호자를 나와 같이 묶어 생각한 적이 없다. 나의 슬픔은 내 몫이고 엄마의 짐이지 그것이 여기,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위로를 가져올지는 몰랐던 거다. 그런데 음악회에 와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면서 우린 하나라는 감정을 갖게 되었다. 누구는 휠체어를 타고 있고 누구는 겨우 걸으며 대다수는 한쪽 손을 못 쓴다. 그리고 전부 고통과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모두 모여 '어머나'를 부르며 웃는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다 같이 고통을 갖고 있고 슬픔도 있으나 지금만은 노래 부르며 웃는 사람들. 너의 슬픔이 나이고 너의 좌절을 충분히 이해하며, 너의 노력을 알아주는... 우리는 하나였다.

슬픔과 고통 중에도 웃으며 노래 부르는 환자와 보호자를 보자, 저것이 하루의 전부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웃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받은 위로와 깨달음이었다. 우린 아직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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