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능력과 관계 기술에 대한 이야기
조직에서 오로지 개인의 능력만으로 어느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HR담당자가 되어 한 회사의 날고 긴다는 임원, CEO가 퇴직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낀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 올라가신 분들은 어떤 노력이 있었기에 높은 위치까지 오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관계의 기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개인의 능력만으로 올라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직에는 나를 제외한 뛰어난 동료들이 많다. 그들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낸다. 프로 일잘러로서 회사와 동료들에게 인정 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했던 프로 일잘러들이 임원이나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경우를 보기란 쉽지 않다. 먼저, 좋은 환경을 찾아 이직하는 사람이 많고, 회사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팀장'에서 임원으로 가는 과정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팀장부터는 개인의 능력보다, 조직의 성과로 인정받아야 하는 변수가 생긴다. 더구나 조직의 성과로 본인을 인정받는 것은 난이도부터 다르다. 구성원 능력을 최대로 이끌어냄과 동시에, 적정수준의 업무분배, 조율 등을 통해 전체 성과로 Align 시키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그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 팀과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협력은 집단과 집단 간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며,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관계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로 올라갈 수록 '개인의 능력≠직무역량' → '개인의 능력=조직 성과를 이끌어내는 능력'으로 바뀌게 된다. 축구계의 거장 알렉스 퍼거슨, 거스 히딩크 감독과 같은 분을 봐도 알 수 있다. 선수 시절, 특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감독으로써 조직 성과를 이끌어내는 능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물론 선수로서의 뛰어난 능력도 있었겠지만, 조직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의 역량은 그와 별개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회사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조직을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자는 단순히 개인의 능력으로만 인정받아 올라갈 수 없다. 개인의 능력을 토대로 상황에 필요한 역량을 찾아 개발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도태되고, 올라가는데 한계를 느껴 쓰러질 수 밖에 없다.
2. 관계 기술은 조직 성과를 인정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조직 내 관계기술을 우리는 '사내정치'라며 폄하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조직이라면 결국 정치라는 것은 반드시 존재하고, 차라리 그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낫다. 이는 비단 기업 뿐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 게임 내 발생하는 트러블 등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손해와 이익을 놓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찾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기 때문에 이익을 쫓기 위한 관계 기술은 어느 조직에서든 반드시 있다. 이는 위로 올라갈 수록 더욱 심해지는데, 그만큼 손해와 이익의 크기가 개인이었을 때보다 조직을 대변할 때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갈 수록 관계 기술은 조직 성과를 대변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 상사는 성과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다. 팀원은 조직 성과를 함께 만들어가고, 나의 평판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며, 주변 동료는 성과를 지원 및 지지해주는 사람이다. 상사에게 잘보이기 위해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팀장이었을 때는 나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조직 성과도 인정받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흔히 팀장들은 '상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기 위해 노력한다. 책 <일의 격>에서 우수한 인재는 상사가 원하는 결과물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물론 상사가 훨씬 더 큰 업무적 책임과 성과를 가지고 있기에 그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도 맞지만, 책에서 말한 핵심은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팀원들과의 관계에서 윗 사람들은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는데, 리더십의 본질은 '조직 성과를 창출하는 역량'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리더십 유형들이 존재하고, 세부적으로 코칭과 피드백, 동기부여, 소통 등을 통해 팀원들과 조직 성과를 창출해낸다. 리더십 유형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이유는 팀원들과의 관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흔히 '케미'라고 하는 이것은, 팀원/조직이 바뀔 때마다 리더들이 조직 성과를 위해 이끌어내야 하는 핵심요소이며, 이는 관계 유형을 파악해 리더십을 발휘할 때 극대화 된다. 특히 위로 갈 수록 '케미'를 맞추는 것이 어려운데, 이를 위해 사업부 단위의 OKR 파티, 분기 성과 공유회, CFR 방식 등을 고민하는 것이다.
주변 동료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 관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이 관계가 가장 어려운데, 내 팀의 성과를 위해서 주변 협업 요청을 무시하거나, 때론 그들과 경쟁해야하기 때문이다. 상사와 구성원들에게는 이익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면 되지만, 주변 동료와 팀의 지원과 지지는 명확한 이익 거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업 조직에서 매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마케팅 활동들로 '리드'를 이끌어내고 세일즈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회사에서도, 심지어 영업조직에서도 '우리가 만들어낸 성과'라며 마케팅 활동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추후에 마케팅 조직은 세일즈 리드를 위해 긍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주변 동료의 지지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모두가 '성과에서의 유기적 관계'에 있음을 명시하고 조직을 Align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지속적으로 동료와 함께 칭찬/인정/피드백 등을 이어가거나, 조직 간담회 등과 같은 활동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특히 위로 올라가는 사람일 수록, 이런 것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 이유는 이들이 만들어주는 '평판'이 결국 윗 사람들의 귀에 들려 승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알맹이(개인 능력) 없는 땅콩 껍질(관계 기술)은 결국 부숴진다.
드라마에서 사내정치로 인해 추락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결국 개인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갈고닦지 않고, 관계 기술만 추구하여 위로 올라간다면 결국 도태된다. 위로 올라갈 수록 개인의 능력은 '현실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된다. 특히 뛰어난 임원 및 CEO들은 현실 감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최근 60대를 중심으로 이뤘던 대기업의 경영진들이 50, 40대로 내려앉은 것도, 젊은 이들에게는 기회를 제공하고 기존 경영진에게는 현실 감각을 잊지 않도록 교학상장을 바래서이다. 삼성의 故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65세 경영진은 실무 맡지 말고 젊은 경영진에게 넘겨라"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에서 멀어지면 관계 기술에만 의존하게 되고, 개인의 능력을 하위 직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 존중 받지 못하게 되고 '평판'은 망가져 무너지게 된다. 알맹이 없는 빈 땅콩껍질인 셈이다.
위로 올라갈 수록 현실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실제로 링크드인을 통해 젊은 이들의 사고를 배우려는 분들,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는 분,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업 및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분들까지. 이 분들은 과연 시간이 남아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일까? 오히려 업무에 바쁜 분들이 이런 활동들을 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모습이다. 최근 키오스크 사용법을 몰라 매장 이용을 못하시는 노인분들, 카카오 택시를 잡지 못해 택시 이용에 불편을 겪으시는 분들을 종종 봤다. '배우지 못하면 결국 도태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위로 올라갈 수록 현실 감각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임원들은 더 큰 시야에서 더 넓은 시장과 조직을 바라본다. 더 넓게 바라본다는 것은, 더 깊게 바라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실무자들보다 해당 업무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것만으로 해당 내용을 판단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이야기를 제대로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리더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실무자(하위 직원)들에 의해 좋은 평판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되어 더 큰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런 분들은 대게 유명 기업의 임원 및 CEO로 스카웃 제의를 받아 이직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개인 능력과 관계 기술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 능력의 정의가 올라갈 수록 변화한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실무자로서의 현재 나의 강점은 '개인 성과' 중심의 강점이지만, 리더로서의 강점은 '조직 성과' 중심의 강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차 그 정의도 책임과 무게감에 따라 변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관계 기술'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관계 기술을 사내 정치라고 폄하하는 이유는 극단에 치우쳐진 관계 기술로 승진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나 그들은 빈 땅콩의 껍질로만 버티기 때문에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진다. 오히려 알맹이가 단단한 사람들은 땅콩의 껍질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높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