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이십구일. 오늘은 날씨가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나가 걸었다.
어떤 날은 사는 게 지옥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벤츠 모는 대머리 아저씨가 되기 싫었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데 동의가 된다. 무언가 나의 일을 해서 실패하는 것(내가 상상한 이상향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보다 시스템에 갇혀 맹목적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삶이 더 무섭다.
어떤 작가: <타이탄의 도구들>, <나는 4시간만 일한다>등의 저자이자 동기부여 인플루언서인 팀 페리스가 한 말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직급을 쌓아 임원이 되는 삶은 결국 직장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임을 비꼬며 한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말은 너무 자기 기준으로 한 게 아닌가 싶다.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일종의 자만감으로 확신에 차서 말한 것 같은.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생계에 직결되기도 자아실현과 관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마다 다른 성향이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못하고 자기 시선으로 던진 말이라고 받아들이련다.
자기 연민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문제에 대해 (예를 들어 공감이라는 것에 대해) 약간은 비틀어진 시각으로 재 정의한 후 (예를 들어 '어떻게 사람을 100퍼센트 공감할 수 있는가. 내가 그 상황에 처해있지 않았는데.') 일반적인 합의에 동의하지 않고 그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있다 이 사회는 아직 나 같은 소수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자기 연민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 첫 해에 들었던 수업 중 오래 기억에 남는 교수님 말씀이 있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아라!" 이 말은 평생 동안 가슴 한 켠에 두고두고 생각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자유라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공감: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카페에 들어간다. 큰 길가에 있는 카페는 사람이 북적북적했던 것에 비해 자리가 많다.
그러다 이젠 그냥 내가 한심하다. 원망하고 참고 꾸짖는 내가 그냥 한심해진다. 다른 사람들처럼 가끔은 웃고 가끔 비웃음 당하기도 하고 우스워보였다가 어떤 때에는 똑똑해지기도 하고 조금 바보 같기도 어쩌다 넘어지기도 상처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도 될 것을.
그러다가도 무례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 행동을 넘어가고 찜찜한 기분을 남겨두었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산다는 게 어떤 때에는 너무나 행복하고 살고 싶다가도 한순간에 컴컴해진다.
내가 너무 못생겨 보이고 찌질하고 마음에 들지 않다가도 남들이 보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보다는 나을 것을 생각하면 (또 그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내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멋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게 청춘이라면 청춘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느낌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러다가도 여기저기 흔들리는 나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같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냥 내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 버틸 수 있는 정도까지만 괴로울 수 있으면 좋겠다.
자아가 너무 커져서 나를 덮쳐버리기 전까지만.
달콤 얼그레이 밀크티는 아주 고급스러운 맛이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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