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 잇_다 [용석록의 울산 탈핵이야기]
울산시민 용 국장에게 2016년 7월 5일 울산에서 일어난 규모 5.0의 지진과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지진은 충격이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바다 건너의 일이었지만, 직접 지진을 맞닥뜨려보니 후쿠시마가 진짜 현실로 다가왔어요. 후쿠시마가 나의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죠.”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용석록 대외협력국장이 탈핵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내 문제’였다.
울산시청부터 24km 아래쪽에는 고리핵발전소 2・3・4호기와 신고리 1・2・3・4호기가 돌아가고 있어요. 울산시청 위쪽 27km에는 월성핵발전소 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까지 12기가 울산을 둘러싸고 있어요. 영구 정지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까지 합하면 16기의 핵발전소에 둘러싸인 형국인 거죠. 30km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는 110만 울산시민 중 100만 명이 살아요. 사고가 난다면 울산 전 지역이 방사선 피폭을 당할 수 있는 구역인 셈이죠.
특히 울산은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국가 기간산업이 흔들릴 만큼 대표적인 산업도시다. 석유화학공단과 온산 국가산업단지, 미포국가산업단지가 있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주요한 기업이 있는 도시다.
2016년 지진을 겪은 후 울산시민들의 탈핵 감수성도 높아졌어요. 보수적인 울산 정치인들도 신규핵발전소 짓자는 주장을 대놓고 하지는 못했어요.
국토면적 대비 핵발전소 밀집도는 한국이 세계 1위다.
고리, 신고리, 월성, 신월성 등 16기까지 들어설 세계 최대규모의 핵발전소 단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다. 부산 고리와 경주 월성핵발전소는 1978년, 1983년부터 부터 운전을 시작했으니 30~40년 된 노후핵발전소들이 즐비하다. 사고 위험은 커져만 가는데 후쿠시마 인구 대비 21배인 부산·울산시민 380만 명이 대피할 곳이 이 좁은 국토 안에 과연 있기나 할까?
어떤 산업이 폐기물 쓰레기처리장도 없이, 사후대처 방안도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현실이 있다. 핵발전은 핵폐기장도 없이 가동 중이다.
2023년 11월 30일 새벽 4시 55분 경주시 동남동쪽 19㎞ 지점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일어났다. 갑자기 침대가 덜덜거리더니 건물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2016년 9월 12일 규모 5.8 지진이 일어났던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화곡저수지 부근에서 직선거리로 약 21.8㎞ 떨어진 곳이었다. 월성핵발전소에서 10.1km 남짓 떨어진 곳이다. 진동은 약 4초간 이어졌고 대부분 경주시민은 새벽잠을 설치며 여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인근의 울산과 포항시민들도 진동을 느낀 시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12월 1일 용석록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하 울산공동행동) 대외협력국장을 홍천 본가에서 만났다.
2016년 9월 경주 지진 당시 식탁에 있던 컵이 밀리고 책장이 흔들리는 등 지진을 몸으로 체험했어요. 저도 그렇고 사람들이 다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지진 진앙인 경주는 울산 바로 위쪽이에요. 여진이 계속돼서 몇 시간 동안 집에 못 들어갔어요. 지진의 공포도 무서웠지만, 핵발전소가 더 걱정이었어요.
2016년 7월 5일 20시 33분경, 울산광역시 동구 동쪽 해역 52km 지점에서 일어난 해역지진은 규모 5.0급의 지진이었다. 두 달 후인 2016년 9월 12일 지진은 오후 7시 44분, 8시 32분쯤 경상북도 경주시 남서쪽 8, 9km에서 두 차례 발생했다. 각각 규모 5.1과 5.8 지진으로 1978년 대한민국의 지진 관측이 시작된 후 한국에서 일어난 지진 가운데 최대규모의 지진이었다. 수개월 동안 여진도 600여 회가 넘도록 계속됐었다.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이 포항에서 일어났고 진원지가 얕아 피해 규모는 경주지진을 뛰어넘었고, 다음날로 예정된 수능이 연기되었다.
역사 지진의 기록을 보면 조선 인조 때 경주에서 규모 6.8~7.0 지진이 있었어요. 올해 초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동남권에 활성단층이 16개, 핵발전소 반경 32km 이내에 확인된 활성단층도 5개나 돼요.
행정안전부가 지난 1월 ‘극한 재난 대응 기반기술 개발’이라는 사업명으로 2017년부터 5년 동안 조사한 동남권 단층 조사 결과 고리, 월성 인근지역에 16개의 활성단층 분절이 발견되었다. 이중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일어날 수 있는 설계고려단층도 5곳이 확인되었고 그 이상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분절이란 지진이 날 때 한 번에 움직이는 단층 구간을 말한다. 살아있는 활성단층은 가까운 미래에 지진 발생을 예고하는 지표를 의미한다.
한겨레신문과 MBC 보도에 따르면, 16개의 활성단층 분절 가운데 5개가 핵발전소 반경 32㎞ 안에 있으면서 길이가 1.6㎞ 넘는 설계고려단층이에요.
읍천단층은 월성핵발전소와 불과 1.8km 거리에 있어요. 설계고려단층이 월성, 고리 핵발전소 설계 시 고려되지 않았어요.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도 마찬가지예요. 활성단층 위에 핵발전소가 있으니 두렵죠.
공교롭게 지진이 발생한 11월 30일 국회에서 월성핵발전소에 ‘불량’ 앵커볼트(고정 나사)가 대량 사용된 사실이 폭로됐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성환, 민형배, 양이원영 국회의원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월성핵발전소 격납건물에 매입된 수천 개의 CIP(Cast-in-Placed) 앵커볼트가 내진성능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공익 신고자를 통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등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관련 자료를 발표했다.
CIP 앵커볼트는 콘크리트를 타설 할 때 미리 설치하여 콘크리트에 매입하는 앵커볼트다. 격납건물 안에 설치하는 핵반응로, 증기발생기, 냉각 펌프, 냉각수 배관, 각종 측정기기 등 안전 등급 설비들을 CIP 앵커볼트에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안전 등급 설비들을 단단히 고정하는 격납건물의 CIP 앵커볼트는 최고 수준의 지진 충격에 견디는 내진성능을 갖춰야 한다.
김성환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월성핵발전소 3호기 격납건물에 CIP 앵커볼트를 사용한 353개소 고정 부위 중 21개소만 내진설계가 적용됐다. 보통 고정 부위 1개소에 CIP 앵커볼트가 2~8개 사용되니 월성핵발전소 1~4호기 격납건물을 통틀어 사용된 비내진 CIP 앵커볼트는 총 4천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활성단층으로 지진 위험이 가장 큰 월성핵발전소의 지진 대비가 가장 부실하다는 증거다.
공익 신고자의 제보에 따르면 월성핵발전소 4기를 포함해 국내 핵발전소 13기에서 ‘비(非) 내진’ CIP 앵커볼트가 광범위하게 시공됐다. 13기 핵발전소 총 1,830개 안전설비 중 약 30%인 557개 설비의 CIP 앵커볼트가 안전 등급 미달이다. 557개 설비를 고정하는 데 사용된 약 7,074개의 CIP 앵커볼트도 지진에 취약한 저강도 재질을 사용했다. 게다가 설계보다 길이가 짧은 CIP 앵커볼트도 약 1천 개 이상이란다.
핵발전소 안전 관리 종사자인 제보자는 수년간 앵커볼트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업자인 한수원과 규제기관 원안위 등은 “원자로를 설계한 캐나다 규제당국에 문의해 문제가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라는 것을 근거로 시정조치 하지 않았다. 기준에 미달 된 부분을 발견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원자력안전법 위반이다.
격납건물은 원자로가 폭발하더라도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도록 차폐하는 ‘최후의 방호벽’이다.
문제는 핵발전소 안전이 시스템에 의해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제보자에 의해 우연히, 사후에 마지못해 알려지는 안전에 대한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수백만 명의 목숨이, 대한민국의 존망이, 그리고 지구촌의 안위가 달린 핵발전소 운영이 이리 허술해도 되는 걸까?
충격이었어요. 핵발전소와 마을이 이렇게 가까워도 되는지? 핵발전소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있더라고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나고 그해 6월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출범한다. 용 국장은 울산에 살면서도 후쿠시마 사고가 나기 전에는 울산을 끼고 이렇게 많은 핵시설이 있다는 걸 몰랐었다. 2013년 지역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핵발전소 지역을 자주 찾아갔다.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찾고 주민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그런데 기자라고 하면 표정도 달라지고 입도 닫더라고요.
그동안 기자나 외부인들에게 말해봤자 자기들 생각대로 쓰고, 보도한 경험이 많았는지 기자는 다 사기꾼 취급이고, 외부인에 대한 경계도 심했어요.
그래도 꾸준히 찾아가 인사도 하면서 얼굴이 익자 마을 사람들은 말을 걸며 커피도 내주기 시작 했다. 부산 기장군 길천마을과 울산 울주군 골매마을을 자주 찾았다.
길천마을은 고리핵발전소 바로 앞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고리 1~4호기가 차례로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주 통행로였던 7번 국도가 단절되고 31번 국도가 우회도로로 개설되면서 마을이 외곽지역으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다. 마을주민들은 이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한수원에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마을이 발전하고 잘 살 거라고 했지만, 길천마을 한편에 즐비한 임대형 원룸은 공실이 많고, 다른 한편은 허술하고 허물어져 가는 집들로 마치 슬럼가를 연상케 한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마을사업 등에 사용했지만, 성공한 사업이 많지 않으며, 개인의 삶을 바꿔주지 못했다. 오히려 집과 땅이 팔리지 않는다. 건설 인력이 빠져나간 마을은 황량한 기운이 완연하다.
골매마을은 더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골매마을은 지금은 사라졌다. 용 국장이 2013년에 그 마을을 처음 찾아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 마을은 신리 7반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고리핵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고리마을 26가구가 골매마을로 이주했다. 이들은 천막을 치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길을 내고 집을 지어 살았다. 바닷가 축대를 쌓는 데만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터를 잡고 살던 골매마을 사람들은 신고리 3·4호기가 건설되면서 또다시 강제로 이주당했다. 용 국장이 10년 전에 만났던 마을주민 중 벌써 여러 사람이 생을 마감했다. 용 국장이 지역신문에 골매마을 소식을 전하자 그 글을 보고 현장을 기록하는 한 사진가가 골매마을을 자주 찾아가 사진을 찍고 <골매마을>이라는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골매마을 사람들은 핵발전소가 훤히 보이는 가까운 바닷가로 이주를 희망했어요. 그곳에서는 고향인 고리핵발전소가 훤히 보여요.
저 같으면 하루라도 핵발전소 돔을 보고 못살 것 같은데 끝까지 고향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어요.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터라 바닷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하기도 했고, 고향을 바라보며 살고 싶었던 거지요.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중인 현장 앞에는 울주군 신리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주민들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자율유치했다. 핵발전소가 좋아서가 아니라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서면 이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행정구역상 울산에 최초로 들어서는 신고리 3·4호기 건설 당시 반대운동을 강력하게 했었다. 울산시청 광장과 태화강 둔치에서 수천 명이 모여 신고리 3·4호기 건설 반대 집회도 했으나 결국은 막아내지 못했다. 주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막기가 쉽지 않음을 몸소 겪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신리마을 전체를 이주시켜준다는 조건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유치했다. 핵발전소가 위험하고 불안하다면서도 달리 이주할 방법이 없으니 핵발전소를 유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핵발전소 인접 지역 주민들은 그렇게 고향 땅에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2013년부터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한 달 정도 전담 취재하면서 핵발전소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었어요.
2011년부터 울산공동행동이 한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한 ‘탈핵학교’를 통해 많은 사람이 송전탑 뒤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피폭 노동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용 국장도 탈핵학교에 참여하면서 핵발전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2013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취재하면서 반민주적인 핵발전소 운영에 똬리를 틀고 있는 국가폭력의 민낯을 가감 없이 마주한다.
2016년 지진 이후 핵발전소 안전성에 대한 요구와 신고리 4호기 운영 허가 반대, 신고리 5·6호기 건설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어요.
울산공동행동은 전국적으로 진행한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인 서명운동본부’를 발족해 탈핵의 대중화를 거세게 밀고 나가는 중이었어요.
2016년 언론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던 용 국장은 2017년 2월 ‘신고리5·6호기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일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5년 동안 울산공동행동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저지,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백지화, 월성핵발전소 폐쇄 등 일이 산더미였죠.
2017년 문재인 정부는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을 선언한다. 핵심 내용은 신규핵발전소 건설중단,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 안전한 핵발전소 운영이었다.
신규핵발전소 중단 방침에 따라 공사를 중단한 신고리 5·6호기는 건설공정률 10%, 종합공정률 28%로 핵산업계의 저항이 심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을 후퇴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발표한다. 전국 탈핵 단체들의 연합체인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탈핵 의제를 대중화하고 신고리 5·6호기 논쟁도 끝낼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대부분의 탈핵 단체들이 공론화에 참여한다.
울산공동행동도 공론화에 적극 참여했어요. 당시 울산 여론은 70% 이상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었거든요.
문재인 정부가 탈핵 공약을 뒤로 되돌렸지만, 울산시민들은 공론화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어요.
용 국장은 울산공동행동과 함께 신고리 5·6호기 건설백지화를 위한 교육사업과 대시민 홍보, 대중사업에 힘을 쏟았다. 당시 마을단위 동아리까지 ‘신고리5·6호기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 에 참여했고, 울산공동행동이 진행한 교육 횟수만 100회가 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대상으로 탈핵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울산을 노동자의 도시라고 하잖아요.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자지부 교육위원회는 2017년 상반기 조합원 교육에 탈핵교육을 배치하고4월부터 8월까지
하루 약 250여 명씩 약 2만 7천 명의 조합원들을 교육했어요.
교육위원회와 울산공동행동은 ‘방사능 누출사고 시 방사능방재대책을 따져보고 실제 대피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피부에 와닿는 내용으로 교육내용을 짰어요.
울산공동행동은 매일 진행되는 조합원 교육에 참여해 후쿠시마 사진전과 탈핵선전물을 나눠주고 선전전을 벌이며 2천 명에 달하는 ‘탈핵노동자실천단’을 꾸렸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울산지부도 안전한 울산만들기를 주제로 탈핵선전물을 자체 제작 배포했고 ‘피폭 노동자를 생각하는 네트워크’ 활동가를 초정해 강연회를 여는 등 피폭 노동과 탈핵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울산시청 앞에서 농성도 하고 공론화 막바지에는 촛불집회도 열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재정과 홍보를 위해 제작한 탈핵티셔츠도 3천여 장이나 팔렸어요.
티셔츠가 재정 마련에도 한몫했지만 3천여 명의 탈핵지원단이 생긴 거예요. 공론화 과정에는 ‘울산시민 천인 토론회’도 열었어요.
2017년 9월 24일 울산 남구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신고리 백지화 울산시민 천인 대토론회’에는 870여 명의 성인과 어린이 청소년 등 1,000여 명의 울산시민이 모였다. 40분간 진행된 선택 토론은 ‘핵발전소 주변 서생면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 이주, 건강 생존권, 보상문제 등에 대해 정부의 역할을 물었고,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이후 탈핵 한국을 위한 다음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을 위한 생존권 보장과 이주지역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고, 신고리 5·6호기 건설백지화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진 40분 동안의 공동 토론에서는 교육과 홍보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부당성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탈핵 집회를 열어서 울산시민들의 의지를 표출하자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천인 토론회는 2017년 7월 출범한 ‘신고리5·6호기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가 7월 28일부터 9월 20일까지 총 115회에 이르는 탈핵교육과 릴레이 토론의 결과물이었어요. ‘탈핵골목순례’도 한몫했죠.
2017년 9월 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발표한다.
실망과 절망감이 한동안 저와 울산공동행동을 지배했어요. 허탈했죠.
시민참여단 471명에게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왜 중단해야 하는지?
매몰 비용보다 사후 비용이 얼마나 더 드는지?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 지역이 왜 문제인지?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380만 명의 대피는 어떻게 가능한지?
지진에 과연 핵발전소는 안전한지?
울산시민의 입장에서 생존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용 국장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생존권을 위협받는 주민을 배제한 불공정한 설계였다고 주장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과 건설 재개를 결정할 공론화 시민참여단을 인구 비율로 선정하다 보니, 핵발전소를 한 번도 마주한 적도 없고 전기 생산에 큰 관심도 없었던 수도권 전기소비자가 50%를 차지했어요.
16기 핵발전소에 포위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 사는 100만 명을 대변할 인원은 단 7명이었죠.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등 피해 당사자가 될 미래세대의 참여도 제한되었어요. 기계적인 비율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을 통한 공론화는한참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지요.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의 대응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좀 더 부각했어야 했는데 재생에너지 전환 등 피부에 와닿지 않는 교과서적 대안 제시 등으로 논제를 벗어난 것 같아서 답답했다는 용 국장은 결국 471명의 시민참여단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이 가슴 쓰리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탈핵운동’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찬반 공론화가 남긴 과제가 되었다.
잘못 설계된 공론화는 대응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공론화는 여론을 반영하는 한 가지 방법론일 뿐인데 사안의 복잡성, 특수성, 지역성을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이 정부가 추진한 공론화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이어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공론화’도 추진했다. 공론화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거부감은 커져만 갔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제1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이 시민사회 의견수렴 등이 없었으며 졸속으로 결정되었다는 의견을 수렴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 재검토’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이후 산업부는 문 정부의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 2018년부터 재검토를 시작했다.
2019년 산업부는 재검토위원회를 중립적 인사 15명 내외로 구성하며, 추천된 위원에 대한 제척권을 환경단체와 핵발전업계·지역주민에게 주겠다고 밝혔어요.
이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 재검토 준비단’에 참여했던 핵발전소 소재지역과 환경단체 등을 공론화위원회 위원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였죠. 또다시 지역주민은 공론화 논의에서 밀려났어요.
울산공동행동 등 15개 연대단체인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는 2019년 4월 성명을 통해 “재검토위원회에 이해당사자들이 일부 참여하는 방식을 수차례 제안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며 정부의 일방적인 공론화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쪽짜리 재검토위원회가 된 셈이다.
월성핵발전소는 중수로형으로 핵폐기물 배출량이 많아 1992년부터 핵발전소 건물 바깥 부지에 ‘캐니스터’라는 건식저장시설(공냉식)을 별도로 300기 건설했고, 2006년부터 대용량 조밀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 7기를 건설해 2010년부터 운영했어요.
그런데 이마저도 포화상태가 되자 맥스터 증설 계획을 세웠어요.
산업부는 이 또한 공론화로 돌파하려 했고, 지역주민 참여와 조작 논란 등의 문제가 발생해요. 특히 울산에서는 공론화 시민참여단에 울산시민을 배제한 문제로인해 반발이 거셌지요.
울산 북구는 월성핵발전소로부터 7km 거리에 인접해 경주 시내보다 훨씬 가깝다. 월성핵발전소 맥스터 공론화 시민참여단을 경주시민 145명으로 꾸린다는 결정에 울산북구 주민들은 반발했다. 울산시장, 울산북구청장, 울산시의회 등도 울산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계속 정부와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에 전달했지만 무시되었다.
울산 북구 주민들은 6월 5~6일 월성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맥스터 증설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총 유권자의 28.82%인 50,479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47,829명(94.8%)가 월성 임시저장 시설인 맥스터 증설에 반대표를 던져 월성핵발전소 맥스터 추가건설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임시 저장시설을 언제까지 운영할 것인지? 영구처분장은 언제쯤 건설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나 대안도 없이 밀어붙인 또 다른 공론화는 민의를 상실한 채 군사독재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되었다.
공론화가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을 늘리는 방편으로 이용될 것을 경계했어요. 진정한 공론화는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고준위핵폐기물의 위험성과 '해법 없음'을 제대로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핵발전소를 40년 가동했어도 고준위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이 없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알아야 제대로 핵발전에 대해 고민할 수 있죠. 고준위핵폐기물 임시 처분장을 만드는 것이 공론화의 시작이어서는 안 되죠.
이해당사자인 주민을 배제한 공론화 재검토 과정은 졸속·엉터리·밀실·불공정으로 얼룩졌으며, 2021년 3월 재검토위가 발표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과 연이은 산업부의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수립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고준위핵폐기물을 ‘부지 내 저장시설’이라는 이름으로 건설할 수 있게 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핵발전소로 40년이 넘도록 고통받은 지역주민에게 또다시 ‘위험을 떠안기는 방식’으로 고준위핵폐기물 처분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고준위 특별법안)이 세 개 발의돼 있어요.
산업부를 비롯해 정부 여당은 고준위 특별법안 통과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는데, 이 법안은 핵발전소 지역에 더 많은 위험과 희생을 강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고준위 핵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 부지에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더 지으라는 ‘사용후핵연료 부지 내 저장’이 가장 큰 문제예요.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과 시민단체가 이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죠.
국내 핵발전소는 현재 발전소마다 ‘사용후핵연료 습식장시설’을 운영 중이다. 핵발전을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으나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 부지 선정은 40년째 표류상태다. 정부와 사업자는 굴업도, 안면도, 부안, 삼척, 영덕 등 여러 지역을 고준위 핵폐기물처분장 부지로 선정하려고 했으나 굴업도는 해저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돼 부지 지정 고시를 못 했고, 대부분 지역은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거센 반대로 부지 선정에 실패했다. 더군다나 동남권에서 발견된 16개의 활성단층과 잦은 지진 등으로 영구 핵폐기물 처분장 찾기는 요원해졌다.
사용후핵연료(고준위 핵폐기물)는 말 그대로 방사성물질의 독성 준위가 높은 핵폐기물을 말해요. 여기서 나오는 방사성물질의 종류는 1천 가지가 넘고, 독성 반감기는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10만 년 이상이에요.
흔히 알고 있는 플루토늄-239 반감기는 2만 4천 년이에요. ‘반감기’는 수명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니 사용후핵연료의 플루토늄 독성이 완전히 없어지려면 24만 년이 걸려요.
플루토늄보다 반감기가 더 긴 테크네튬-99는 21만 년, 주석-126은 10만 년 등 독성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인류가 상상하기 어려운 기간이 소요돼요.
이런 맹독성 방사성물질을 처분해야 하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을 환영할 지역을 찾는 일이 가능할까요?”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문제는 ‘단순히 부지를 어디에 선정할 것인가?’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10만 년 이상 과연 고준위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한 기술이 인간에게 있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야 해요.
세계 200여 국가 가운데 현재 핵발전을 하는 나라는 33개국에 불과하다. 핵발전 국가 중 20억 년 동안 흔들림 없었고 지하수가 거의 없는 화강암 암반을 찾아낸 핀란드만이 유일하게 고준위핵폐기물의 10만 년 심층매립을 목표로 29년의 세월을 들여 고준위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고 매립을 준비 중이다.
흔한 말로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계속 지으면서 위험성이 큰 고준위 핵폐기물은 핵발전소 부지에 더 쌓아놓자는 것이죠.
매년 750t의 고준위핵폐기물이 쏟아져 나와요.
영구처분장 부지조차 없는 상황을 고려해 수명연장을 하지 않겠다거나, 신규핵발전소 건설을 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약속도 없이 지역에 위험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고준위 특별법안이에요.
핵진흥정책을 폐기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해요.
핵발전소 사고 위험과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문제는 핵발전소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가 잦아졌어요. 핵발전소는 쓰나미, 폭우 지진 등으로 전기가 차단되면 원자로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요. 1978년 고리1호기 상업 발전 이후 45년 이 흘렀어요. ‘핵발전은 안전하고 깨끗하고 싸다’라는 3대 신화가 깨져감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람들은 ‘설마’라는 안전불감증을 붙들고 탈핵을 외면하려 해요. 특히 핵발전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도시 전기소비자들과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과의 생각의 차이는 더 크죠.
핵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되는 상황을 대비해 주민보호조치 의무를 담은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이하 방사능방재법)은 지역주민들에게 다른 탈핵이슈보다 민감하게 다가온다.
‘핵물질과 원자력시설을 안전하게 관리·운영하기 위하여 물리적 방호체제 및 방사능재난 예방체제를 수립하고, 국내외에서 방사능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관리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이 목적인 방사능방재법은 방사능 재난사고 대응을 위한 비상 조직 훈련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핵발전소 반경 30km 내에 속하는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의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는 방사능재난에 대비한 주민 보호 조치를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대응 매뉴얼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허점과 한계가 많다. 각 지자체가 수립한 방사능재난 대비 행동 매뉴얼의 가장 큰 문제는 ‘복합재난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라는 점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처럼 ‘지진과 해일’이라는 자연재해로 인해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나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될 때 ‘지진과 방사성물질 누출’이라는 두 가지 재난에 대응해야 하는데 현재 존재하는 국내 매뉴얼은 도로가 파손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해 수립한 대응책이에요. 핵발전소가 가까운 마을부터 열차나 자동차를 이용해 대피한다는 매뉴얼인데, 지진으로 인해 도로가 파손되면 시민들은 긴 시간 방사능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빠르게 방사능 오염지역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대피인데 도로 위에서 피폭될 가능성이 커지죠.
지진과 핵사발전소 사고라는 복합재난이 고리와 월성핵발전소에서 일어난다면 반경 30km 이내에 380만 명이 거주하는 부산과 울산 지역주민들의 대피 계획이 없다는 말이다.
현재 수립된 매뉴얼도 정보통신이 두절 될 경우에 대비한 적절한 대응 방안을 갖추지 못한 상태예요. 이 역시 실제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거예요
정부와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내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제대로 수립하지 못한 주민 보호 대책도 미흡하지만, 그마저도 매뉴얼을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내 모든 주민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교육하고 홍보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용 국장 주장이다.
법으로 정한 방사능재난 대응 훈련은 주로 핵발전소와 가까운 지역주민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울산의 경우 100만 명의 시민 대다수가 방사능재난 시 통제하는 도로와 이동이 가능한 도로를 모르고 있어요. 평상시 교육과 홍보가 부족해 실제 재난이 발생하면 누구나 자동차를 가지고 도로로 나갈 거예요. 도로에서 피폭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은 뻔한 거죠.
울산공동행동과 울산시, 김종훈(당시 민중당)국회의원이 2018년 9월 4일 ‘방사능방재대책 울산시민 안전토론회’를 열고 방사능방재교육과 훈련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토론회 이후 김종훈 의원은 갑상샘 보호 약품 사후 배부이던 법 규정을 사전 배부도 가능하게 일부 개정했다.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이지만, 여전히 지자체는 관외 구호소 지정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합재난 대응책 부재와 정보통신 두절에 대한 대비책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는 ‘방사능 재난대비 매뉴얼’은 주민 보호를 제대로 할 수 없어요. 핵발전소 사고가 매뉴얼 대로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고 인류사회가 경험해 보지 못한 재난이 많아질 기후위기 시대, 사고 후 대비책이 없는 핵발전소는 중단해야 해요.
2023년 5월 2일 SBS는 울산지역의 열악한 방사능 방재 인프라에 대해 보도했다. 방사능 사고 시 주민들에게 신속히 보급해야 할 방재 물품이 폭우가 내리면 물에 잠길 수 있는 배수장 창고에 임시로 쌓여있었고, 울산 중구 주민 21만 명에게 보급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주민용 보호구는 1,800여 개였고 방사능 중증도를 판단할 피폭량 측정기도 50여 개에 불과했다. 기본적인 대피로와 적절한 대피로도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부산, 경주, 울진, 영광은 방재시스템이 과연 작동하고 있을까? 지역주민들은 각자의 집이나 마을회관 등에 요오드가 상시 배치되어야 하고 방사능 대피요령을 숙지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핵발전소가 ‘전기공장’이 아닌 ‘고준위방사능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는 핵시설임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의문과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인터뷰를 청한 12월 초, 탈핵신문 편집 기간이기도 했다. 용 국장의 홍천 작업실은 창문을 뚫고 햇살이 들이쳤다. 반려묘 나나가 툇마루에 앉아 그림자로 존재를 알리고 먹이를 주러 나가는 용 국장 뒤를 따라 마당에 나서니 틈틈이 농사지은 배추밭과 작약, 민들레, 모란, 그리고 각종 허브를 심고 거둔 뜰이 아담하다. 내리꽂는 햇살과 홍천의 청정 공기에 잠시 탈핵운동의 고단함을 달랠 양인지 용 국장은 이제 막 싹을 틔우는 시금치 자랑이 한창이다. 눈과 비, 새벽바람과 깊은 밤을 담은 봄날의 시금치나물은 상상만으로도 달짝지근한 침이 고이게 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12년 6월 창간된 탈핵신문은 2019년 미디어협동조합으로 재창간 되면서 용국장은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툇마루에 앉아 울산에서의 활동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어쩌다 탈핵신문 편집위원장을 맡게 되었는지 물었다.
탈핵신문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 활동가들이 탈핵 미디어가 필요하다는데 의기투합해 만든 신문이에요.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잠시 휴간을 하고 탈핵신문의 진로를 논의할 때 저는 ‘탈핵’만을 다루는 미디어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어요. ‘탈핵신문’ 제호에 대한 다른 의견을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탈핵’을 ‘탈핵’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미디어 하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핵발전소 관련 용어가 어려워서 아무리 풀어 써도 쉽지 않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용 국장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한창 관심이 고조됐을 때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본질은 핵발전소’라는 말로 일갈했다. 핵발전소는 기체, 액체, 고체의 형태로 매일 핵폐기물을 내어놓고 있고 후쿠시마 오염수는 몰래 버리던 것을 공개적으로 하겠다는 의미이니 핵발전소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속 시원한 요청이었다.
타블로이드판 16면을 월 1회 발행하는 탈핵신문은 편집위원과 27명의 통신원이 만들고 있다. 십시일반, 제 돈 들여가며, 탈핵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신문이다.
서울, 청주, 대전, 대구, 경주, 부산 울산, 고창, 광주 등에서 ‘탈핵신문 읽기 독자모임’이 진행되고 있어요. 청주 사는 열혈독자 한 분은 탈핵신문이 나오면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서 탈핵신문을 읽어줘요. 핵발전 문제를 전혀 모르는 지인들을 만나는 매개로 탈핵신문을 들고 가는 것이죠. 탈핵신문 독자 중에는 기자들도 꽤 있어요. 탈핵관련 기사 쓸 때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합니다. 독자 모임에 나오는 분도 있고 후원으로 응원하기도 해요.
신문 구독료는 연 5만 원인데 재정 사정이 어려워 월 1만 원 후원 구독을 권한다.
원자력계에서도 탈핵신문을 모니터링 한다고 들었어요. 지피지기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더욱 분발하려고요. (웃음)
얼마 전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눈에 띈 책 제목이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 할 때, 우리 일상을 바꾸려면 기후변화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리베카 헌들리·이민희 엮음·양철북)였다. ‘기후변화’에 ‘탈핵’을 바꿔 넣어보니 나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탈핵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글을 쓰고 의견을 많이 전달해야 하는 용 국장에게 물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대응할 때, 수 없이 교육 했어요. 당시에는 부르면 다 갔죠. 노인복지관에서 교육 해 달라고 해서 갔어요. 노인복지관은 기본적으로 어르신들이 이용하시잖아요. 어르신 세대는 탈핵이라고 하면 안 좋게 생각하셔요. 그날도 신고리 5·6호기 이야기 하러 왔다니까 삐딱하게 절 쳐다보더라고요. 저는 교육하면서 한 번도 탈핵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다만 있는 그대로 사실만 설명했어요. 핵이라는 것이 어떤 물질이고, 발전소는 어떻게 돌리고, 어떤 사고가 나고, 우리가 사는 곳이 핵발전소로부터 얼마나 가까운지 이야기했죠. 그리고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례를 들면서 울산시 방사능 방재 대책을 설명하니 강사로 온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문제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울산은 위아래로 이렇게 많은 핵발전소가 있고 전기가 부족하지도 않은데 신고리 5·6호기까지 추가되면 우리의 위험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자 삐딱하게 보던 어르신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용 국장은 ‘탈핵’을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핵발전소 지역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한 피해나 사고로 인한 피해는 서울이나 수도권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먹거리 문제를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2023년 4월 시민방사능감시센터와 환경운동연합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일본 후생노동성 식품에서의 방사능물질 검사 결과를 분석한 <일본산 농수축산물방사능 오염 실태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2022년 총 3만 6,115건의 농수축산 식품을 대상으로 방사성물질(세슘-134, 세슘-137) 검사결과를 발표했다, 식품 종류별 방사능 검사 결과 수산물 5.3%, 농산물 21.1%, 축산물 2.6%, 야생육 29%, 가공식품 6.3%, 유제품 0.3%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검출됐다. 농산물 검출률은 21.1%나 됐다.
문제는 지난 5년간 방사성물질 검사 건수는 줄었는데 검출률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이에요. 후쿠시마현 포함 주변 8개 현 농산물 세슘 검출은 22%, 그 외 일본 전역에서는 14%의 세슘이 검출되었어요. 수산물에서도 세슘 검출률이 높아요. 세슘 우럭 들어보셨죠. 특히 후쿠시마 보다 인근 현에서 잡힌 수산물에서 세슘 검출이 늘어났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해요. 일본 식품에서의 방사성물질 검출 비율은 2018년 1.83%, 2019년 1.84%, 2020년 3.57%였는데 2021년 9.9%로 뛰더니 2022년 11.5%로 높아져요. 시간이 지나면서 방사능물질이 축적되고 농축되면서 사고 지역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는 거예요.
'한번 배출된 방사능물질은 반감기에 따라 독성이 줄어들겠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라는 점을 핵발전소 외 지역 도시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핵발전소 사고는 우리 모두를 당사자로 만든다. 일상을 바꾸려면 일상의 탈핵 이야기를 해야겠다.
강원도의 밤은 빨리 온다. 서둘러 자리를 털며 용 국장에게 우문(愚問) 하나를 던졌다. “탈핵이 될까요?”
탈핵은 돼요. 일단 핵발전소 자체가 대책이 없잖아요. 고준위핵폐기장은 그 어디에도 만들 수 없을 겁니다. 기후위기가 격화되면서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기상이변으로 핵발전소의 위험은 가중될 수밖에 없어요. 핵발전소가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할 때가 올 거라고 믿어요.
알면 알수록 핵은 정말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는 용 국장은 우리나라는 전문가 그룹이 적어 아쉽고 젊은 세대가 그들의 언어와 행동으로 탈핵운동의 지평을 넓혔으면 좋겠단다.
핵발전소가 워낙 복잡다단하잖아요. 물리학자나 핵공학자들이 제대로 이야기를 해주면 좋은데 우리나라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예요. 일본은 다카기 진자부로 선생님 같은 선구적인 물리학자이자 반핵운동가를 비롯해 핵물리학자나 공학자 등이 반핵·탈핵운동을 이끌기도 했고 시민과학자의 산실 원자력자료정보실 등이 허브가 되어 끊임없이 학술적 근거와 자료 등을 제시해요. 아쉽고 부러운 일이죠.
그러면서도 용 국장은 희망적이다. 울산에는 탈핵을 진정으로 염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2011년부터 연대체로 운영하는 울산공동행동은 웬만한 시민단체 이상으로 일을 많이 한다. 마지막으로 용 국장은 아주 적은 양의 피폭이라도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저선량 피폭 문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특히 최근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한 피폭선량이 기준치 미만이라며 안전하다고 말하잖아요. 방사선은 장기간, 지속적으로 피폭될 때 기준치 미만이라 하더라도 건강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한국사회가 아직 ‘기준치 미만’, ‘저선량 피폭’이라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데 앞으로는 그 문제에 대한 탈핵운동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텃밭에서 농사지은 배추와 무를 챙기고 밥에 넣어 먹으라며 얼려두었던 완두콩을 주섬주섬 싸던 용 국장은 “우리 세대는 우리 방식대로 탈핵운동을 진행했는데 젊은 세대는 그들의 사유와 삶의 방식에 맞는 탈핵운동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저변을 넓히는 일들을 많이 벌여야 할 텐데 고민이네요”라고 말한다.
용 국장이 챙겨준 강원도 먹거리들을 챙겨오며 ‘세대’라는 말이 맴돈다. 젊은 세대들에게 ‘일상을 바꾸는 탈핵 이야기’를 어떻게 건넬지 나 또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