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에 대하여
꽤 오래전부터 다니는 미용실이 있다. 1인 미용실이 요즘처럼 흔치 않았을 때인데 친구소개로 간 그곳은 화사하면서도 트렌디하고 무엇보다 1인 미용실이라 주인장의 에너지에 동화되어 편안하고 활기찼다.
당시엔 크고 화려한 시설에 여러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있는 미용실이 대세였던 터라 신선하기도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머리를 쉽고 자연스럽게 잘하셨는데 비용까지 합리적이라 단골이 되었다. 몇 년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상들을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대구의 중심가인 동성로의 유명한 미용실에서 17년간이나 대표디자이너로 근무하셨다고 했다. 끼니를 제때 못 챙기는 건 당연했고 출근과 동시에 대여섯 명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출근을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며 손님들과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구겨진 종이가방에 주섬주섬 가위들을 챙겨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이 마지막 출근일이 되었단다. 그 후 쉬다 가려했는데 미용실이 폐업해서 강제퇴사처리되었다는 얘기도 하셨다.
아마도 번아웃이 그런 건가 봐요.
몸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후에도 조금 무리한다 싶으면 몸에 병이 나서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해요
비슷한 경험을 한 터라 마음이 찡했다. 어느 날 수업 사이 수건을 개키면서(핫요가원이라 수건빨래량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식으로는 얼마 못하겠구나
이미 영혼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수업 방식이 워낙에 강도가 강하기도 했고 핫요가원의 환경이 힘들기도 했다. 그리고 100평이 넘는 요가원의 부가적인 잡일들과 청소까지 혼자 했으니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업무량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고 대충은 없이 운영해 온 곳에서 내 몸이 힘들다고 해서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어긋난 그 시기부터 종종 몸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수업시간 외에는 누워있거나 잠을 자야만 다음 타임이 가능해지며 잦은 무기력과 멍한 시간들이 늘어갔다. 정신력으로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한계치를 지속적으로 넘어가자 파업을 선언하는 듯했다. 적당히 쓰라며, 도저히 못해먹겠다며 말이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날들을 견디다 어쩌면 나에게는 기회로 온 코로나로 놓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애증의 첫 요가원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선 그간 해보고 싶었던 방식으로 요가원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행복한 시간들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이제 이러한 나의 쓰임이 다해가고 있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강사로 5년 그리고 원장으로 10년을 하다 보니 몸의 총량을 다 쓴 것 같았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싶었다. 원 없이 써 보았으니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그러던 중 출산과 이사로 서울로 오게 되어 엄마이자 주부로 평생 나에게는 없을 것 같던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요가강사로써의 나의 쓰임은 잠시 멈춤을 하며 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이제 그 쓰임이 다해 다른 역할로 전환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몸의 소리는 내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져서 상의하지 않고는 그 어떤 역할이든 무사히 해낼 수 없을 거라는 건 확실해졌다.
그래, 이제 몸, 마음, 영혼이 함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