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익명성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를 흥미롭게 해석한 유현준 교수의 유투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환경에 따라 종교관도, 사회 시스템도, 건축물도 달라진다. 결론적으로 바벨탑은 다른 라이프 시스템을 가진 유목사회 사람들과 상공업 중심의 도시민들 간 갈등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영상의 마지막, 더 흥미로웠던 것은 2010년 두바이에 지어진 부르스 할리파라는 고층건물과의 비교였다. 이 건물의 설계는 미국의 SOM, 시공사는 한국의 삼성물산, 건설노무사들은 파키스탄과 중국사람들인데, 문화가 공존하는 현대에 사회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으로 21세기에 지어질 수 있었던 바벨탑이 아니겠는가 하는 해석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꽤 오랜시간 내려 놓지도 이루지도 못했던 꿈이 있었다. 또래들과 잘 지내지 못했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팬지들을 연구하며 숲 속에서 지내는 제인 구달 박사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을 떠나 자연과 동물이 있는 숲에서 산다니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동물행동학자가 되어 숲에서 살 수 있기를 오랫동안 염원했다. 하지만 그런 꿈은 이루어질리가 없었다. 대신 어느 해부터인가 틈틈이 도시를 떠나 살기 시작했다.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인지 안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작은마을?"
나는 타인이 정해둔, 모든 당연한 것에 늘 의문을 품었다. 점점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어느날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19세기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는 대도시를 체험하는 한량이자 도시의 관찰자인 '산책자'개념을 형상화 했다. 산업화로 대도시가 번창하며 소요자, 산보자로 불리던 이들은 군중과 섞이는 동시에 거리를 두는 양면성을 지닌다.
나는 생각했다. 다채로운 관점과 아이디어가 교차하며 뇌를 반짝이게 하는 곳. 문명의 역사로부터 무수한 사건사고들이 미화되어 전시된 박물관이며 미술관이 있는 곳. 동시에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교통 인프라가 구축된 곳. 이채로운 문화와 시각이 공존하는 곳, 거대한 건물 안에 익명으로 숨을 수 있는 곳. 그 안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인간은 젖(교육)과 꿀(즐거움과 놀거리: 개인적인 의견입니다)이 흐르는 도시를 끊임없이 진화시키고 있다. 브라보~! 자본은 피(생명)처럼 흐르며 도시를 풍요롭게 만든다. 이 사랑스러운 도시에서 별 쓸모 없는 나는 다만 생동하는 문화와 가치관을 흥미롭게 구경하는 익명의 산책자로 족할 따름이다.
2023.10.21 Written by Ayla J., revised b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