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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18. 2019

우리 제주도 가서 딱 2년만 살다 올래?

다들 역마살이 꼈나 보다.

'여행 가고 싶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다 한다.


여행도 여행이지만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거겠지.


난 그냥 힘들 때면 우주에서 그대로 소멸해버리고 싶다. 원래 없었던 것 마냥.

가끔 에너지 레벨이 떨어져 너무도 일하러 가기 싫은 날에는 이대로 출근길에 가볍게 입원할 만큼 사고라도 났으면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하니 친구가 재수 없는 소리 한다며 돌았냐고 했다. 조용히 집구석에서 아픈척하고 혼자 농땡이 피우다 뒈지든지 말든지 왜 엄한 사람까지 잡으려고 하냐, 너 때문에 같이 사고 나는 그 사람은 뭐가 되냐, 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난 그냥 내 의지로 농땡이 피우는 것도 두려운 겁쟁이가 되었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친구의 말을 덥석 물었다.


우리 제주도 가서 딱 2년만 살다 올래?

입으로 말을 내뱉는 순간 이미 내 영혼은 제주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서 뭐 해 먹고살래?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일단 먹고살아야 되니 우선 지금 하는 일로 제주 지역을 알아보는 거지

-거기까지 가서 결국 그 일이냐?

-어쩔 수 없지 내 신용으로는 너희처럼 보증금을 땡길 수 없거든

-그러게 학자금 꼬박꼬박 잘 갚으라 했잖아
그렇게 신용도 중요하다고 입이 닳도록 말할 때는 대출 낼 일 니 인생에 절대 없다고 콧구멍으로도 안 듣더니

-그 시절의 가령이는 그냥 부자 만나서 시집가 잘 살 줄 알았거든 인생이 내 맘 같지 않구나 친구야
지는 대학 등록금도 부모님이 다 내주시고 집도 있어서 월세도 안내는 주제에
니가 내 팍팍한 삶을 알아?

-그럼 더 열심히 살아서 빨리 빚부터 갚을 생각을 해야지 일도 몇 번이나 때려치운 주제에

-남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아는 것이 화를 부르는 게다 니 놈의 주둥이를 봉인하겠다

-난 가게 되면 지금 네일샵은 잠시 맡기고 가야지, 접고 거기 가서 한다고 똑같이 잘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왕 가는 거 요식업이나 새로운 일 해보고 싶어

-단호박이랑 셋이 가서 게스트하우스 차릴까? 여자 셋이 한다고 하면 남자들이 많이 올지 몰라 맨날 파티하고 놀자
또 여자들이 운영하면 여자 여행자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많이들 올 거야 어때?

-건물 살 돈은 있니? 매입이 한두 푼도 아니고

-신용 좋은 니들이 전세로 구하면 안 돼?

-전세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래도 숙박업인데 건물 사서 사업자 등록하고 해야 되는 거 아냐?

-아 그런가... 그럼 주인이 다른 지역에 살아서 신경 안 쓰는 빈 땅이 있을 수도 있으니 거기에 컨테이너로 짓자
혹시라도 들키면 컨테이너 그대로 옮겨서 또 다른 땅으로 가는 거야 그러다 또 들키면 또 옮기고 하면서 2년만 버티자
이름은 '숨바꼭질 게스트하우스'야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 숙소에 찾아오는 것부터 미션이야 여행자의 모험이라 해두지

-응 혼자 잘해 봐. 고마 제주도는 여행이나 가자


그렇게 잠시나마 무릉도원을 꿈 꾸며 상상 속에서 현실도피 중이던 나 즐거움 맥없이 끝 났다.





혼자서도 잘만 여행하는 여자들이 존경스럽다. 이 험한 세상에 말이다.


난 사람을 잘 믿는 편이라 어디 가서 사기나 당하고 살지 말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언제나 이상을 꿈꾸며 몽상에 젖는 나에게 시골 출신답게 나이브 한 구석이 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의심은 또 많다. 언제부터 내가 사람의 호의를 무의식 중에 경계하게 되었을까. 변해가는 내가, 때가 묻어가나 싶어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 경계심이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무턱대고 믿는 것은 쉽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음을 인식하고 믿어 주는 것은 의지의 영역이므로 어쩌면 그것이 더 진정한 믿음 일지 모른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혜안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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