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령 Jun 23. 2019

내가 술을 끊은 이유

 나는 주정뱅이였다. 내가 술을 끊겠다 했을 때 주변에서는 개가 똥을 끊겠다면서 믿어주지 않았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대식가라 그런지 술도 대식을 한 탓에 일주일에 몇 번을 걸러먹어도 항상 취해있는 듯 살았다. 해독이 잘 되지 않는 체질이라 24시간 링거로 알코올이 들어와 내 피를 타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 몽롱한 정신으로 사는 것을 그때는 즐겼다.


 아빠도 주정뱅이였다. 엄마 말로는 결혼하고 어느 순간부터 술을 입에 대더니 주정뱅이가 됐다고 했다.


 언젠가 도시로 나와 살면서 친구와 밤길을 걷는데 취한 아저씨가 비틀비틀 아슬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친구가 저 아저씨 너무 위험해 보인다며, 가끔씩 술 취해서 길에 쓰러져 자는 아저씨들 보면 답답하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나는 더 답답하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우리 아빠가 예전에 저렇게 술 취해 길거리에 누워있던 사람이야. 시골이어서 볼 사람이 거의 없어 다행이지, 이런 도시였다면 아마 난 쪽팔려 죽었을지 몰라"

 친구는 괜히 안해했다.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자기 아빠도 엄청난 주정뱅이였는데 술을 끊게 된 계기가 아파서였다고 했다. 더 마셨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딱 끊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난 이름도 모를 신에게 기도했다. 아빠가 웬만큼 아파선 끊을 것 같지 않으니 정말 딱 죽기 직전까지만 아프게 해서라도 술을 끊게 해 달라고, 대신 끊고 나서는 다시 건강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아빠는 생각보다 더 건강체질이었고 내가 여러 신을 만나는 동안에 그 누구도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술을 안 끊으면 나는 더 많이 마셔서 더 심한 주정뱅이에 진상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처럼 아빠의 술 먹는 모습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면서도 가장 싫어하던 나만 아빠의 술버릇을 쏙 빼닮았다.


그러다 아빠는 몇 년 전 뇌경색처럼 한쪽 팔, 다리가 마비되고 한쪽 얼굴도 마비가 되어 발음도 어눌해질 지경이 되었다. 뇌경색'처럼'이라고 한 이유는 병원을 가지 않아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쫄보 겁쟁이라 병원을 절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도 사고가 나서 어디가 다 터지고 부러져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실려가지 않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을 거라며 자연치유로 나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다녔는데 인정할 수 없지만 피는 못 속인다. 결국 침구사인 큰아빠가 와서 침을 놓고는 했는데 점점 나아지긴 해도 한동안은 계속 어눌해진 아빠의 말과 굳은 듯한 손을 보며 이러다 영영 안 돌아오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다. 나도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데 고모도 아빠처럼 한쪽이 마비되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겁도 났다. 가족력이 제일 무서운데 나도 술을 자제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아빠는 기적처럼 싹 나았고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술을 끊지 못했다. 아빠는 죽기 직전까지 가도 술은 절대 못 끊을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도 술을 못 끊는데 아빠도 끊기 힘들겠지 하고 알코올 중독자들끼리 동족 의식이라도 생긴 듯 이해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또 몇 년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아빠가 기침이 너무 심하고 며칠째 밥도 넘기지 못하는 지경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병원을 가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린다 했다. 사촌오빠가 집에 들렀는데 아빠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고 고모에게 전화하자 부랴부랴 달려와서 내 동생 죽는다고 울고불고 성화를 부려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빠는 폐렴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빠의 생애 처음 병원행이었는데 긴 입원이 되었다. 이번에는 진짜 아빠가 잘못될까 무서웠다. 그 와중에도 설마 내 소원이 이렇게 이뤄지는 건가 하는 생각 반, 근데 진짜 소원은 못 이루고 아빠가 이대로 죽으면 어쩌지 하는 죄책감 반에 병원으로 발길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말에 용기 내서 찾아갔더니 아빠는 한동안 먹지 못한 탓에 너무 야위어있었다. 주삿바늘이 걸리적거리고 싫어서 뽑아버리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더 농담처럼 말했다. 아빠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라고, 이제 끊으라고.

 그러자 아빠 입에서 기적 같은 말이 나왔다.

나도 더 이상 먹기 싫다고, 먹을 만큼 먹었다고.

그 말에 나는 고해성사했다.

 "내가 아빠 죽기 직전까지만 좀 아프게 해서 술 좀 끊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는데 그래서 이뤄줬나 보다" 아빠는 힘없이 웃었다.


 그 뒤로 아빠는 술을 정말 기적처럼 딱 끊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오랜 시간 기도한 탓에 하늘이 감동하여 내 소원을 들어준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빠 주위 사람들 처음에는 내 지인들처럼 같은 반응이었다 했다. 한동안은 계속 술을 권했다. 하지만 단단히 마음먹었는지 안 먹는다고 몇 번 얘기하다 아예 술잔을 엎어 쏟아 버리니까 그 후로는 권하지 않는다 했다. 먹을 술 다 먹었다는 아빠를 보며 정말 술 총량 법칙이 있나 싶었다. 나는 아빠에 대한 의리로 함께 술을 끊었다. 사실 아직 아빠처럼 완전히 딱 끊지는 못했지만 이제 가끔 술자리에서 맥주 한두 잔이면 족하다. 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 하지만 스스로 고쳐 쓰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걷다가 새똥 맞을 확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