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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29. 2019

독거노인 준비 중

 아무래도 우린 결혼할 팔자가 아닌 것 같다며 곗돈으로 굿을 한판 하거나,  슬슬 노후를 준비하자고 말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딘가 결연했다.


떡: 우리 넓은 아파트 월세로 들어가서 같이 살래? 아니다. 같이 사는 건 별로일 거 같고 빨리 돈 모아서 3층 집을 짓자. 난 3층 할게. 무릎이 안 좋으니까 집 안에 엘리베이터 하나 설치해줘.

가: 난 땅의 기운을 받고 살 거야. 내가 그럼 1층에서 살게. 아니다, 너희가 나 몰래 둘이만 뭐 먹을까 봐 감시해야 돼서 2층에 살아야겠어.

단: 진짜 그렇게 같이 살면 재미있겠다.

가: 얼마 전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 보는데 진짜 우리가 원하던 삶이더라. 친구들끼리 같은 아파트에 살고. 너희 이래 놓고 배신 때리기 없기야.

떡: 난 너희들 더 못 믿어. 특히 김가령! 맨날 애가 말이 바뀌어서 신용이 없어. 애가 허언증이 있나 봐.

가: 내가 무능력해서 그래. 어디든 자꾸 의지하고 싶었는데 이제 안 그래. 난 남자 없이 잘 살아~ 내 돈으로 방세 다 내,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옷도 사 입고, 충분하진 않지만 만족할 줄 알아, 그래서 난 나를 사랑해 (hey), 수지는 좋겠다. 예쁜데 능력까지 있어서. 아님 너희가 날 먹여 살려줘.

떡: 안 되겠다, 얘는 빼자.

단: 그리고 얘는 남친만 생기면 또 한눈팔기 때문에 믿을 수 없어.

가: 야, 그러는 단호박 넌 요새 자꾸 소개팅한다는 소문 있더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놓던지 해야지. 내가 아주 찾아다니면서 훼방 놓을 거야.

떡: 근데 젊을 때 같이 사는 건 좀 별로일 거 같고 대신에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 완전 좋겠다. 돌아가면서 밥하고 같이 먹고. 늙으면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고, 아프면 서로 병원도 데려가 주면서.

가: 야, 누구보고 병수발 들라고 늙어서 같이 살제?

떡: 너도 썩 건강한 체질은 아닌 거 같은데 니가 될지 내가 될지 어찌 아냐? 알러지약은 먹고 있냐? 심하면 기도 좁아져서 호흡곤란으로 죽을 수도 있는데 얘 처음에 병원도 안 가고 약도 안 먹더라니까.

가: 내 동생 곧 시집가면 혼자인데 우리 집 문 앞에 요구르트 좀 놔줘. 내가 우리 집 비번 가르쳐줄게. 요구르트 계속 쌓이고 연락 안 되면 불시에 들어와서 확인해줘야 돼.

단: 이래 놓고 또 모른다? 요새 떡구가 조카 보면서 자꾸 결혼 얘기하고 애기 낳아보고 싶다 하고 수상하단 말이야.

가: 이것들 아주 머리부터 눈썹까지 다 빡빡 밀어 놔야겠네.

떡: 너무 귀여운 걸 어떡해, 근데 난 진짜 한 명이라도 확실히 결혼 안 하고 평생 함께 할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난 진짜 안 가도 돼, 여자들은 아무래도 시집가면 다 가정에 충실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가: 그래도 너희는 부모님이 해주시든 너희가 알아서 하든 집 걱정이라도 없어서 좋겠다. 너희들 조심해 난 언제든 뒤통수 칠 준비가 되어 있어. 지금 이렇게 너희 안심시켜놓는 거야, 바보들아. 우리 중에 누군가 결혼을 한다면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절대 난 아니야.

 단: 내 이럴 줄 알았어. 야! 내가 진짜 한다면 한다! 너희 자꾸 이러면 나 아무나 금방 만나서 결혼해버린다?


 그렇게 늘 우리의 도원결의는 누군가 복숭아를 박살 내면서 끝이 나지만 또 돌고 돈다.


가:  난 진짜 결혼 안 하고 그냥 연애나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나 하나만 그냥 책임지고 살고 싶어.

떡: 요샌 남자들도 똑같아. 자기 돈 벌어서 여자랑 굳이 나눠 쓰고 싶지 않대. 남자고 여자고 서로 다 약았어.

가: 그래 다 똑같겠지. 너무 힘든 세상이라 그런가. 어쨌든 난 남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도리, 의무 이런 게 싫어.

떡: 그래 넌 너무 심해 한국이랑 안 맞아. 어디 외국 가서 아무도 모르는데 가서 살아야 돼.

가:  가만 안 둬, 아주 그냥. 근데 난 진짜 시부모님한테 안부 전화하는 것도 스트레스받아할 거야.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주의라 우리 엄마한테도 안 하는 안부 전화를 누구한테 해? 오죽하면 내가 예전에 그냥 문득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니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냐, 돈 떨어졌냐' 그랬다니까. 아마 그때 혼자 자취할 때라 내가 방 안에서 변을 당해 죽었어도 빠르면 한 일주일 뒤쯤 내 죽음을 알았을 걸?

단: 우린 진짜 결혼에 안 맞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여자 친구들끼리 이렇게 똘똘 뭉쳐 다니면 남자들이 정말 싫어하지. 그래도 떡구가 보수적이고 가족도 잘 챙기고 결혼에 제일 최적화되긴 했는데.

떡: 그래도 난 결혼하면 내 친구들이랑 다 친하게 잘 지내는 남자였으면 좋겠어.

가: 너 자꾸 '결혼하면'이라고 전제를 깐다? 헛된 꿈은 아예 꾸지도 마. 너에게 남편은 인생에서 없는 단어야.

떡: 됐고, 너희는 진짜 결혼하려면 남자가 돈 어마무시하게 많이 벌어야겠다. 너희 먹성 충당하려면 등골 빠질 텐데.

가: 난 지금은 연애도 별 생각이 없어. 한동안 넘치던 성욕도 신기하게 사라졌어. 요즘 글에 내 에너지를 다 쏟아서 대체됐나 봐.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야.




 이모는 계속 선자리를 물고 온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볼 생각이 없어졌다. 난 지금 결혼 생각이 전혀 없다고 혼자 살 거라 하니 엄마가 코웃음을 쳤다. 능력 있으면 안 가도 되는데 방값 하나 못 내서 맨날 빌빌 대는 게, 이제 동생까지 나가면 어떻게 살 거냐고 걱정이다. 능력도 없는 게 자꾸 세월만 보낸다 했다. 이제 다 늙어 빠져서 데려갈 남자도 없다 한다. 내가 평생 이렇게 살 거 같냐고 했다. 난 이제 곧 김부자가 될 거니까 나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테니 쓸데없는 걱정 말라고 했다. 정말이지 엄마 걱정 안 시키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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