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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슐랭가이드 Oct 19. 2021

모든 것과 남이 되는 시간.

  지난달,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터라 2박이 넘는 여행은 항상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한다. 구구크러스트를 연상케 하는 색의 복슬복슬한 털에, 덩치가 좋고 때론 멍청한 순수함과 함께 벌써 8년째 동고동락하며 그런 천진난만함을 둥이라고 부르고 있다. 딱히 지을 만한 이름이 딱 떠오르지 않기도 했었고 편하게 부를 수 있으면서도 잘 기억에 남는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외자인 둥이로 부르기로 했다. 셔틀랜드 쉽독이라는 견종인데 줄여서 셀티라고도 부른다. 외모는 대형견인 콜리와 닮았지만 셀티는 집안에서도 키우기 좋은 사이즈 정도까지만 자란다. 그런데 잘 먹인 탓인지 아니면 유별난 식탐을 소유한 탓인지 같은 '종족'중에서도 이 녀석은 덩치가 꽤나 좋은 편에 속한다.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아도 이 견종의 평균 몸무게는 8kg에서 12kg 정도인데 도대체 뭘 먹고 이렇게 우람해졌는지 15kg에 육박하는 '돼견'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항상 여행을 갈 때에는 강아지 몸무게 제한이 없는 숙소를 알아보는 것이 먼저다.

털 찐 것이 아니다. 살찐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참 여러 곳을 검색해 보다가 겨우겨우 알맞은 곳을 찾았다. 2년 전에 알게 된 강원도 근처 어느 산자락에 자리한 곳이다. 강아지의 몸무게와 관계없이 출입이 가능하고 가격도 매우 착한 편에 속하며 평수도 상당히 넓다. 최근에 지은 신축은 아닌지라 숙소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비교적 많이 묻어 있는 편이다. 건물 바로 뒤편으로 산이 있어서 따뜻한 계절에는 벌레들도 꽤나 많다. 주변에 볼 것이라고는 산과 계곡뿐이어서 차로 조금 나가야만 양양시장이라던지 설악산이라던지 등의 관광지를 이용할 수 있다.

  볼것이라곤 산과 작은 계곡. 이것이 전부인 이곳을 나는 해마다 연달아 3번이나 찾았다. 높고 우람한 산들이 숙소 주변을 감싸고 있고 바로 앞에는 작은 계곡이 흐른다. 앞마당에 서서 한동안 산 근처로 시선을 두고 있다 보면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자연의 소리가 귓가로 들어온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무성한 나무의 잎사귀들이 서로 바람에 부딪혀 숲을 이루는 소리. 잔잔하게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두 가지의 듣기 좋은 소음 말고는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적막하다. 시꺼먼 도로 위의 차들의 고막을 때리는 듯한 경적도 없고,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 속에서의 치열하거나 위태로운 소음도 없었다. 이곳에 오면 꼭 한동안은 내 안에 깊은 곳에 들어와 앉아 있는 도시의 것들은 쉽사리 나가려 하지 않는다. 맑은 공기와 가슴이 웅장 해지는 산을 보고 있다가 그것들을 잊을라 치면 왜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느냐며 시뻘건 얼굴을 들이밀며 질투를 한다. 도시의 갖가지 것들이 좁디 좁은 내안에 들어와 치고 박으며 온통 어지럽힌다. 나는 그것들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달래고 다스린다. 그것들이 서서히 침묵에 이른다. 그렇게 나는 산속 어느 마을과 도시의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존재하며 느끼는 좋은 적막을 이곳에서 찾는다.



  물론 강아지 동반의 조건을 선제한다면 이곳 말고도 금수강산이라 칭송받는 우리나라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들이 더러 있을 테다. 좋은 것을 구경하고 신기한 것을 경험하는 휴가를 보내는 것보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덜 들리고 치열함과 멀리 떨어진 이곳을 더 애정 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만물이 덧없고, 헛됨을 너무 일찍 깨달아 스스로 애늙은이 행세를 하는 탓도 있을 테다. 살아낸 날보다 살아낼 날이 더 많이 남았음에도 푸른 침묵으로 가득 찬 이곳은 어떠한 저항도 없으며 어떠한 감정의 흉물과도 함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있어 '쉼'이란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이기에 그것에 딱 안성맞춤인 곳이며 아직은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여기서 쓰는 글은 도시에서 쓰는 글과 이상하리만큼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쓰는 글 같았다. 시시때때로 날이 선 모멸감으로서 위협하려는 도시에서의 것들에게서 잠깐이나마 달아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매일같이 압사당하기 일보직전의 무거운 인생의 과정이란 고통의 무게를 도시에 두고 왔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건 신이 정해놓은 원칙 중에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고 쳐도 이곳 하나만큼은 영원하길 나는 바란다. 오롯이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기에는 이만한 곳이 더러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하늘 한번 쳐다볼 수 없는 결말 없는 삶을 어기적어기적 살아가다가도 언제든 잠깐이라도 내려놓고, 인생의 황홀함을 목격하는 잠시를 제공해주는 이곳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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