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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10. 2024

색소폰을 배우는 이유

작년부터 색소폰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은 왕초보라 실력이 형편없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진도도 영 나가지 않습니다. 아마도 동호회원 중에 제 실력이 가장 부족한 듯합니다. 그래도 색소폰을 연주하는 순간은 정말 즐겁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해서 연습하며 그 분위기에 젖어듭니다. 어디 대회 나갈 것도 아니고 베스트 연주자가 될 생각도 아니, 그저 제가 좋아하는 노래 몇 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꿈입니다. 그리고 좀더 나이가 들어 귀촌하면 저녁 무렵 강변에 있는 카페에서 혼자 조용히 연주하고 싶어서 이렇게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석양과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색소폰 연주하는 제 미래의 모습을 그리면서 열심히 연습하려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각자 취미활동은 하나 정도 있어야 하며, 그 취미활동이 즐거워야 하지요. 부담이 되면 곤란하고요. 친구나 지인들이 가끔 골프 이야기를 많이 전해 줍니다. 전 이상하게도 골프엔 관심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골프를 칠 기회가 전혀 없을 듯합니다. 예전에는 책 읽을 시간에 골프한다고 그 긴 시간을 허비하나 하고 스스로 의문을 가졌기에 골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오랜 시간 지나다 보니 이젠 골프에 관심이 조금 생기다가도 취미로 삼기엔 너무 늦었다는 마음으로 물러서게 되었지요. 그리고 최근 뒤늦게 골프에 입문한 지인 한 명이 알려주는데, 골프하다가 점수가 낮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다네요. 사람마다 상황이나 성격이 다르겠지만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곤란하는 생각을 더욱 굳게 먹게 되었습니다.


색소폰도 경우에 따라선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더군요. 색소폰을 연주하는 동안에는 세상사 모두 잊게 됩니다. 남들이 들으면 그렇게 깊이 빠져 연습하는데 실력이 그 모양이냐고 놀릴 듯하여 좀처럼 남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처음 색소폰 학원에 왔을 때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아 답답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이 훨씬 편해집니다. 가끔 시민들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할 때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살아 보니 행복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이 나으면 생기는 것 같고, 불행은 타인과 비교하는 순간부터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못한 사람이 분명이 있는데도, 괜히 나보다 나은 사람과 굳이 비교하여 자발적으로 불행을 초래하는 것은 진짜 못난 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행복한 것 같습니다."


철학자도 아니고 세상에 유명한 존재도 아니니 제가 말하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색소폰 연습을 하려 합니다. 처음엔 색소폰을 배운다는 사실을 아내에게도 비밀로 했는데, 이젠 은근히 응원도 해줍니다. 제 실력이 부족하여 쑥스러워서 알리지 않았지요. 어쨌든 나이 들어가면서 한 가지 취미 활동은 필요한 듯하고 그 활동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할 듯합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 놀았던 낙동강변 둑길에서 수양버들 숲을 빗겨 들어오는 석양과 강물 위를 발갛게 물들인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로 색소폰 연주하는 자신을 생각하면 그냥 웃음이 나옵니다. 온갖 폼을 다 잡아보려 합니다.


능숙하게 흥겨운 노래를 몇 곡 연주할 수 있다면 시니어 관련 단체를 방문하여 무료로 봉사활동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시니어전용 숙박형 독서학교'를 열 계획인데 독서만 하면 지겨울 수도 있어서 색소폰 연주를 곁들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 근처 빈집들을 활용하여 숙박하고, 지정 도서를 한 권 사전에 읽은 전국의 액티브 시니어들을 초빙하여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룻밤 책 이야기하는 그런 독서학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로당에 가거나 요양병원에 갈 분들은 제가 감당할 수 없겠지요. 현직에서 물러나서 경로당에 가기는 좀 그런 세대들을 대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보름달 밤에 둘레길을 함께 걷거나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술잔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독서학교 말입니다.


색소폰을 배우면서 노년 세대들을 많이 만납니다. 제가 다니는 색소폰 학원에도 대부분 노년 세대입니다. 색소폰 연습하다가 둘러앉아 담소하는 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그 시간을 즐기는 것 같더군요. 10여 년 색소폰 연주하신 분은 역시 다릅니다. 소리가 웅장하게 울리는 것이 너무 부럽더군요. 저도 계속 연습하면 그런 날이 오겠지요. 시간도 투자하고 부지런히 연습해야 하는데, 그렇게 노력은 하지 않고 온갖 폼잡는 모습만 그리니 좀 그렇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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