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이사열전」에 등장하는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라는 구절은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태산이 한 줌의 흙도 거절하지 않아 그 웅장함을 이루고, 강과 바다가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아 그 깊이를 이룬다는 이 고사는 단순한 자연 현상의 묘사를 넘어 인생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자세를 일깨워준다.
진시황 시대의 승상 이사가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쓴 간축객서에서 비롯된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후대에 분서갱유라는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말 자체가 담고 있는 진리의 무게는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한 줌의 흙'을 만난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의 서투른 제안, 가족 구성원의 사소한 배려, 낯선 이의 작은 친절, 혹은 자신도 모르게 지나쳐버린 소중한 기회들이 모두 그러한 것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현대 사회는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며, 당장 눈에 보이는 큰 성과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과 발전은 작은 것들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고객의 사소한 불만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직원들의 작은 아이디어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바로 이러한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한 기업가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매일 아침 경비원부터 임원까지 모든 직원과 인사를 나누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 낭비라고 했지만, 그는 이 작은 소통의 순간들이 모여 회사의 문화를 만들고, 직원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낸다고 믿었다. 결국 그의 회사는 업계에서 가장 낮은 이직률과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게 되었다.
인간관계는 특히 이러한 포용의 자세가 중요한 영역이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단점이나 부족한 면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이유로 관계를 단절하거나 거리를 둔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부부 관계를 예로 들어보자.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들의 공통점은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포용한다는 것이다. 배우자의 작은 실수나 습관을 못 견뎌하기보다는, 그것마저도 그 사람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을 때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이는 친구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이러한 포용은 더욱 중요하다. 아이들의 서투른 시도, 실패, 때로는 반항까지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란다. 반대로 완벽만을 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성공만큼이나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이때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 사람의 그릇을 결정한다. 실패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은 결코 성장할 수 없지만, 실패조차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은 더 큰 사람이 된다.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수천 번의 실패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고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바로 태산이 흙을 거절하지 않는 자세와 같다. 모든 경험, 심지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경험까지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으로 삼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는 중요한 교훈이다. 취업에 실패했다고, 사업이 잘 안 된다고,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해서 좌절하기보다는,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자신이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실패의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21세기는 다양성의 시대다. 세계화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생활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신화 뒤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인재들의 협업이 있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혁신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한 팀으로 묶어내는 포용의 문화 덕분이다. 이들 기업은 직원들의 다양성을 단순히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그것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았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단일한 가치관과 문화만을 고집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세대 간 갈등, 지역 간 갈등, 이념 간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그들의 목소리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포용의 철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동료의 의견에 귀 기울이기, 가족의 취향 존중하기, 낯선 사람에게 미소 짓기, 실수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 주기 등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
한 카페 사장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실수로 커피를 쏟은 아르바이트생을 꾸짖는 대신,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후에 자신의 카페를 열었고, 같은 방식으로 직원들을 대했다. 이렇게 포용의 문화는 전파되고 확산된다.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엉뚱한 질문을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교사 밑에서 창의적인 인재가 자란다.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에 대해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하지만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성장이 시작된다.
완벽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태산이 작은 흙덩이까지 품어 거대한 산이 되었듯이, 우리도 자신의 모든 면을 포용할 때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사의 간축객서가 진시황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단순히 문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것을 이루려면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 단순한 진리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후변화, 팬데믹 등 예측하기 어려운 도전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포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기회로 삼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태산은 오늘도 한 줌의 흙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그 높이를 더하고 있다.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들을 모아 더 깊고 넓어지고 있다. 우리도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포용한다면, 언젠가는 태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사의 오래된 지혜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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