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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Dec 05. 2023

어쩌다 영국 6

눈물 범벅의 생일 파티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그래서 두려운 때였다. 여느 때처럼 학교 담벼락에 붙어서 애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부모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웃고 떠들고 있건만 난 행여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낯을 가리는 성격에 영어까지 알아듣기 힘드니 한없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데 언제 왔는지 콩알이가 활짝 웃으며 카드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엄마, 이거 생일 파티 초대장이지? 맞지? 오늘 애들 다 받았어. 나도 갈 수 있는 거지? 그치? 저기, 쟤가 줬어!”

 카드를 채 펴 보기도 전에 콩알이는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콩알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인도인 부녀가 웃고 있었다. 카드를 펴 보니 정말 초대장이었다. 영어를 읽기는커녕 말도 한두 마디밖에 모르는 애가 이게 초대장이라는 걸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일단 학교에 보내면 아이들은 금방 배운다더니 정말 그런 걸까? 콩알이는 집에 가는 내내 한껏 들떠 감자랑 장난치기에 바빴다. 심란한 엄마 마음은 까맣게 모른 채…

 그래, 저렇게 좋아하는데 보내지, 뭐! 난 남편에게 데려가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대장을 보던 남편이 말했다.

 “형제도 데려오라는데? 잘됐네, 감자도 가면 되겠다. 어, 잠깐만….. 당신이 데려가야겠는데? 난 이 날 수업이잖아!”

 아뿔싸, 날짜만 보고 요일은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콩알이에게는 가도 좋다고 이미 말해 놓은 뒤라 번복하기도 어려웠다. 못 간다고 했다간 천지가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여보, 한 번만 수업 빠지면 안 돼? 제발….”

 단칼에 안된다고 할 걸 알면서도 난 사정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뻔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장소였다. 생일파티를 집에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장소를 빌려서 한다며 주소와 약도까지 안내되어 있었다. 아니, 뭐 얼마나 부자라고 애들 생일파티를 장소까지 빌려서 한단 말인가!(그때는 2004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생일파티를 할 때였다.) 인도 사람 중에 부자가 많다더니 그 집도 부자인가 보지? 괜히 심통이 났다.

 남편과 지도책을 펴고 위치를 살펴봤다. 그리고 또다시 절망했다. 거기는 차가 없으면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런던 외곽이었는데 지하철은 닿는 곳이었지만 버스는 3개 노선밖에 없어 우리의 활동 범위가 극히 제한적인 곳이었다. 지도로 본 파티 장소는 숲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어찌해야 하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미니캡을 예약하자!”

 미니캡? 미니캡은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을 운행하는 지역 택시 같은 것으로, 블랙 캡은 현지인들에게도 비싸 그 대안으로 운행되는 조금 저렴한 개념의 지역 택시였다. 지금의 우버 같은 거였다. 저렴하다고는 하나 인원이나 갖고 타는 짐의 개수에 따라 비용도 달라지는 복잡한 가격 체계였고 가난한 유학생에겐 그마저도 버거웠다. 버스비도 아까워 아이들을 20분 넘게 걸려 마트를 다니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데려가 달라고 할 사람도 없었고, 아이들에게 못 가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할 수 없이 그러자고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미니캡 기사와의 의사소통이었다. 남편은 예약할 때 장소와 시간을 알려 줘야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놀 동안 현지인 부모들과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교적이지 못한 내 성격이, 영어 공부를 게을리한 내가 싫어졌다.


 남편은 잘 다녀오라는 말을 남기고 학교에 갔다. 뒤통수에 따가운 내 눈초리를 달고서!

아이들은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고 연신 창밖을 내다보며 미니캡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난 예약에 문제가 생겨 차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내 바람 따위와 달리 미니캡은 제시간에 왔고 우린 그 차를 탔다. 차에 타기 전에 애들에게 조용히 가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기사는 백인이었는데 우리 예상과 달리 자꾸 무언가를 얘기했다. 짧은 영국 생활에서 들었던 발음과 또 다른 발음이었다. 안 그래도 잔뜩 긴장했는데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애매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자 기사는 이내 말을 멈췄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창밖을 쳐다봤다. 크고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인위적으로 손을 댄 게 아닌 날 것의 모양이라 더욱 눈이 갔다. 무거운 마음만 아니면 실컷 즐기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녹음이었다. 차는 점점 외진 언덕으로 올라갔다. 시간을 보니 얼추 다 와가는 것 같았다. 그때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기사가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말했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번만 다시 말해 달라고 했다. 기사가 다시 한번 말했다. 어쩐지 내게 길을 묻는 것 같았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냐고. 현지 기사가 모르는데 내가 알 턱이 있나! 난 모른다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내 입에선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Right way!”

 왜 그렇게 말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기사는 오른쪽 길로 차를 몰았다. 잠시 후 위에서 내려오던 차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렸다. 기사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곧 파티 장소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내리는 동안 돈을 내는데 기사가 불같이 화를 내며 큰소리로 뭐라고 얘기했다. 비용은 예약할 때 알려 준 대로 냈으니 그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난 멍한 채 그 기사의 화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마지막에 한 말만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린 왕복으로 예약했는데 이따가 오지 않겠다는 거였다. 내가 뭐라고 채 대꾸하기도 전에 그 기사는 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당황스러웠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우리를 여기다가 버린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냥 한국에 있을 걸! 옆에서 지켜보던 감자와 콩알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기사가 화내는 걸 보며 잔뜩 쫄아 있던 아이들이 내 눈물을 본 것이다! 얼른 눈물을 훔쳤다.

 “저 아저씨 왜 화낸 거야?”

 감자가 꺼이꺼이 울며 물었다. 난 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대답했다.

 “아저씨가 오해를 했나 봐. 괜찮아, 울지 말고 들어가 보자!”

 그때 차 한 대가 와서 서더니 남아시아 부부가 두 아이를 데리고 내렸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내 바람과 달리 그들은 우는 아이들을 보더니 왜 그러냐며 애들을 다독거렸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 큰 딸은 감자와, 작은 딸은 콩알이와 같은 반이었다). 친구를 본 아이들은 곧 울음을 그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한쪽엔 파티 음식이 차려져 있고 반대편엔 각종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어린이 실내 놀이터인 셈이었다. 친구에 굶주려 있던 아이들은 곧장 놀이기구로 달려갔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들어온 그 부부가 내 옆으로 오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하, 이를 어쩐담?

 난 떠듬떠듬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사가 갑자기 화를 내더니 데리러 안 오겠다고 하더라는 얘기를 하는 순간 왈칵 울음이 터졌다. 창피한 것도 잊고 큰소리로 울었다. 참고 참던 설움이 북받쳤다. 서럽게 울고 있던 내게 그 부부는 기사가 나쁜 놈이라며 편을 들어주었다. 게다가 자기네 차가 커서 데려다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Really? ”

 난 눈물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덥석 그들을 끌어안으며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Thank you, thank you!”


 이 글을 쓰느라 그때를 생각하니 또 울컥하다. 그때의 그 막막함과 설움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낯선 이방인에게 그렇게 선뜻 도움을 준, 좋은 심성을 가진 부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낯 가리고 말이 서툴던 난 끝끝내 그들을 친구로 만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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