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새끼손톱보다 작은 그 상아질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진동 상태인 전화기는 책상 귀퉁이에서 드르륵, 드르륵 몸을 떨어댔다. 마치 날개를 떼고 뒤집어놓은 풍뎅이가 버르적대는 것처럼. 밤 열한 시였고, 턱을 괸 왼손을 뻗어야만 잡을 수 있는 위치에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나는 이빨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빨간 램프가 꺼지고 마침내 전화기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전화기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스탠드 불빛 속의 이빨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날카롭게 부러져나간, 어른의 앞니였다. 치과의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몇 번이나 욕실 거울 앞에서 내 앞니와 비교해봤는데 틀림없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그것은 이빨이었다.
그것이 내 자동차의 등속 조인트 스프링 부위에서 떨어져 나왔다면 무슨 의미겠는가? 시커먼 기름때로 찌든 시멘트 바닥에 그것은 반짝, 하고 떨어졌다. 엔진오일을 갈고 있던 정비공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재빨리 그것을 주워서 움켜쥐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정비가 끝나고 값을 치른 뒤, 차에 올라탈 때까지 나는 그 손을 주머니에서 빼지 않았다.
묘한 기분이랄까.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일요일 오후,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 난데없는 이빨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소름이 끼쳤다. 소름의 돌기들이 침착한 벌레처럼 온몸의 살갗을 차근차근 뒤덮었다. 나는 그 이빨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가 룸미러를 기울이고 내 이를 들여다보았다. 내 이는 가지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분명 알 수 없는 타인의 부러진 이빨이었으니까.
*
아침에 나는 지독한 느낌으로 눈을 떴다. 지난밤, 3차를 하기 위해 단골 카페 새너토리엄에 들어가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맥주를 마신 터라 오줌이 마려웠고 화장실로 향하면서 약간 지렸던 것도,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정신 차리라고 몇 번이나 중얼댔던 것도. 그러나 그 이전과 이후는 깨끗하게 편집된 것처럼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방음창 저편으로 소리 없이 내리고 있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좋은 기분도, 그렇다고 나쁜 기분도 아닌 채로 단순히 술을 마셨던 거야. 그것 말고는 주말 저녁과 밤을 보낼 마땅한 게 없었으니까.
참기 힘든 갈증과 두통, 뱃멀미처럼 지독한 울렁증 때문에 더 이상 누워 있기도 힘들었다. 일어나 보니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넥타이며 와이셔츠, 양복저고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정말 지독하게 퍼마셨군.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서 머리를 흔들자, 머리뼈 속에서 뇌가 덜그럭 댔다. 냉장고에는 마실 물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식탁 밑에 빈 생수병이 찌그러진 채 넘어져 있는 게 보였다.
하는 수 없지. 해장엔 진한 커피 몇 잔도 괜찮아.
커피 물을 올리면서 그렇게 위안을 삼았다. 아무리 더듬어봐도 어제 술자리가 어떻게 끝났는지, 몇 시에 돌아왔는지 조그만 기억의 흔적조차 잡히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유쾌한 기분일 리는 없었다.
아마도 대충 이러지 않았을까? 술자리를 함께 했던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중 둘은 필경 여자들과 자러 갔을 것이고, 하나는 중간에 슬며시 사라졌을 거야. 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데 지불해야 하는 몇만 원의 택시비, 월요일에 치러야 할 주차요금,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야 하는 월요일의 출근길을 떠올리며 짜증스러워하다가 여관에 들어가 잘까 망설였겠지. 하지만 일요일 아침을 여관방에서 처량하게 맞느니 집으로 돌아가자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밤길을 십 분쯤 걷다가 택시를 잡아탔을 거야.
물이 끓고 나서야 커피가 떨어진 걸 알았을 때는 정말 화가 치밀어서 싱크대를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해장국이라도 사 먹으려면 아파트에서 3킬로미터는 나가야 하는데 차는 서울에 두고 왔으니 낭패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를 어느 주차장에 처박아두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몇 번 쿵쿵 쥐어박고는 우산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슈퍼마켓에 가서 인스턴트 북엇국이라도 사다 먹는 수밖에. 비 오는 일요일 오전이라 자동차들이 아파트 사이에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한쪽에서 젊은 부부와 경비가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이중 주차시키고 핸드 브레이크를 채워둔 차 때문이었다. 출근 시간이면 흔히 보는 광경이었다. 나는 무심하게 우산을 받쳐 들고 그들을 지나쳐 걸어갔다.
“2945! 2945! 에이, 이런 개새끼가……!”
화가 치민 젊은 남자가 문제의 자동차 범퍼를 냅다 걷어찼다.
나는 깜짝 놀라서 멈춰 섰다. 2945? 그건 내 차의 번호였다. 우산을 치켜들고 남자가 걷어찬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흰색 엑센트, 운전석 윈드 브레이커가 반쯤 깨져 나갔고 뒷문에서부터 트렁크까지 깊게 긁힌 자국. 그것은 틀림없는 내 차였다.
“형씨 차요?”
내가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멈춰 서자 남자는 당장 멱살잡이라도 할 기세였다.
“아, 네, 그게……제 차 맞습니다만…….”
솔직히 미안한 마음보다는 황당했던 것이다, 나는.
“이게 뭐요, 대체? 이중주차를 하려면 사이드를 풀어놓거나, 채워두려면 연락처를 붙이거나! 여기 주민 맞아요, 당신?”
“전 203동 501호에...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죄송하다면 다예요, 다냐구? 아저씨 때문에 벌써 삼십 분 째에요. 도대체 기본이 안 돼 있어, 기본이. 얼마나 소리소리 질렀는데 인제 나오냐구요?”
나는 우산을 쓴 채로 그들에게 백배사죄했다. 얼마나 고개를 숙였던지 숙취로 지끈대는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와 양복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찾아내고 다시 뛰어 내려가 차를 빼주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다음부터 이런 식으로 차 대놓으면 오함마로 작살을 낼 테니 알아서 하쇼.”
운전석 밖으로 눈을 부라려 위협하고 떠나는 그들의 꽁무니에 대고 나는 다시 한번 허리를 굽실거렸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어딘가 주차장에 얌전히 들어가 있어야 할 이 놈의 차는 어떻게 된 거지?
운전대를 쓰다듬으며 이 황당한 사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취한 상태에서 집까지 차를 몰고 왔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음주운전을 할 정도로 무책임하거나 무모하지 않다. 만에 하나 그랬다 해도 숱한 음주 단속을 피할 정도였다면 반드시 기억의 단편 같은 게 남아야 말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현실이었지만 나는 분명 내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전화로 어제의 일행 중 한 사람과 연결이 됐다. 그는 아직도 비몽사몽이었는데, 어제 술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수한 건 없는지, 에둘러 묻자, 술 먹은 다음날 아침에 전화하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됐나 보다, 하고 짜증을 부렸다. 아침에 일어나 나와 보니 차가 멀쩡히 집 앞에 있더라는 얘기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결론을 내렸다.
대리운전을 맡긴 것이다. 누군가 운전을 해서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는데 그게 직업적인 대리운전자인지, 아니면 어떤 고마운 자원봉사자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자원봉사자라면 나중에 톡톡히 한 턱 내야겠지.
따지고 보면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것으로 된 것이다. 제대로 된 해장국을 먹으러 갈 수 있게 됐고 내일 아침 출근도 편하게 할 수 있으니 다 잘된 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에프엠을 들으며 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시시한 노래와 신청 사연들이 지겨워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시보 직전의 1분 뉴스가 잡히기에 그걸 듣기로 했다. 봄 가뭄을 완전히 해갈해준 비는 내일까지 계속될 것이고 빗길 교통사고가 여러 건 있었다는 소식에 이어, 수십 대의 차량이 뺑소니 피해자를 치고 지나가 사체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하는 대목에 이르러 해장국 집에 도착해 시동을 껐다.
다진 청양 고추를 듬뿍 넣은 선지 해장국 국물을 떠 넣자 속이 비로소 진정되는 것 같았다. 옆자리의 스무 살쯤 된 여자아이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에 물이라도 찍어 바르고 나올 걸 그랬다, 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동네 슈퍼마켓이나 다녀올 예정이었으니 내 몰골은 말이 아닐 것이었다. 역시 스무 살쯤 된 남자아이도 지난밤을 함께 보낸 여자아이의 시선을 따라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그들을 애써 외면하며 카운터 쪽에 놓인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정오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빗길, 끔찍한 뺑소니라는 자막이 얼핏 보였다. 주인 남자가 리모컨으로 소리를 높였다. 빗물로 번질거리는 아스팔트에 흰색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고 경찰관들이 뭔가 조사하고 있었다. 비옷을 입은 기자가 그것을 배경으로 리포트를 했다. 조금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바로 그 사건이었다.
“저거, 우리 동네 들어오는 길 아녀?”
“그러게, 뱅이 삼거리네요.”
주인 내외가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화면 속의 도로는 낯이 익었다. 고속화도로가 끝나는 지점으로 4차선 도로와 2차선 도로가 만나는 삼거리였다.
-빗길이었고 차량 운행이 적은 시간이었지만 사체 상태로 봐서 적어도 열 대 이상은 피해자를 치고 지나갔다고 봐야…….
끔찍한 듯 고개를 젓는 경찰관의 인터뷰에 이어 기자의 리포트가 계속되었다.
-경찰은 이 사망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체가 워낙 심하게 훼손되어 유전자 감식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사망자의 신분증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뤄 첫 번째 뺑소니 운전자가 피해자의 소지품을 의도적으로 은폐했거나, 다른 곳에서 살해한 뒤 도로에 유기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건 발생은 오늘 새벽 2시에서 3시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목격자의 제보가…….
“아, 끔찍해!”
옆자리의 여자아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비위가 상한 듯 수저를 내려놓자, 남자아이가 주인에게 텔레비전을 꺼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주인은 군소리 없이 텔레비전을 껐다.
나는 뚝배기 속의 검붉은 선지를 바라보다가 욕지기를 느끼며 수저를 놓았다. 입맛이 싹 가셨다.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는 느낌이 들었다. 주차장에 있어야 할 내 차가 멀쩡하게 아파트에 돌아와 있었다. 나는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대리운전은 만취 상태에서 내가 차를 몰고 돌아온 것만큼이나 그 가능성이 희박했다. 억지로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인 것이다. 결국……나는 만취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돌아온 것이다! 바로 저 사고 현장을 지나쳐서 말이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내가 문제의 뺑소니 운전자일지도 모른다. 기억이 이렇게 완벽하게 지워진 것은, 일종의 방어본능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까마득히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