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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C Aug 06. 2019

틈_04

단편소설집

3.

안개가 이렇게 깊다니...나는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쓸 수도 물고 있는 담배를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핸들과 기어에 얹혀진 손바닥은 땀으로 미끈거렸다. 너는  창백한 얼굴에 입술을 약간 깨물고 찡그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건 벌써 이십 분 전쯤 보았던 표정이었지만 너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안개가 너를 삼켜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할 수 있는 건지,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깊게, 먼길을 달려왔다. 마치 안개에 갇혀 길을 잃은 것처럼.


이제 곧 날이 밝을 것이다. 해가 퍼지면 안개도 걷힐 거라는 희망을 품는 순간, 나는 짜증스러워졌다. 연료 게이지에 불이 들어온 것이다. 이런 산속, 안갯속에서 연료마저 떨어진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대체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일까.


“여기가 어딘 줄 알기나 해요?”


네가 문득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화들짝 놀라 브레이크 페달을 급하게 밟았다가 떼었다. 차가 한차례 요란하게 요동쳤다. 너는 푸-하고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며 소리 내어 웃었다. 머리칼이 풀썩 일어났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뭘 그까짓 걸 가지고 놀라, 하는 웃음처럼 보였다.


“다른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


나는 하나마나한 변명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네게 변명과 핑계가 늘어갔다. 처음엔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편했다. 이윽고 불안이 찾아왔고 나는 차츰 말이 많아졌다. 너는 나와 맞지 않는다, 남자 친구는 왜 없는가, 앞으로 누구를 만나든 넌 잘 살 거다... 등등.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너를 아는 순간부터 너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불안의 중심엔 그 생각이 똘똘 뭉쳐 있었다.


“그래요, 당신은 늘 다른 생각을 하죠. 와이프, 아이들 걱정... 먹고사는 문제, 그리고 또 어떻게 재산을 증식해야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 그 생각 말고 옆에 있는 내 생각을 좀 해줄 순 없어요? 미래에 대한 생각엔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잖아요...”


너는 가시 돋친 말을 했다. 안개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좀처럼 불평을 늘어놓지 않아 오히려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곤 하던 너였다.


“길을 찾고 있었어. 솔직히 길을 잃은 거 같아.”


그렇게 말하자 만난 이후 처음으로 네 말에 일종의 시인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차창을 내리자 숯 굽는 냄새를 풍기며 안개가 풀어져 들어왔다.


“여긴 여관도 없잖아. 그쵸? 우린 그런 곳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인데... 하긴 여긴 불빛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정말 이상한 기분이야.”


너는 계속 뾰족한 날을 세우고 종알댔다. 나는 화를 낼 여유도 없었다. 이대로 연료가 바닥이 나 멈춰 서고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낭패였다. 문득 출근할 일이 걱정되었다. 애초에 집을 나올 때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상으로의 귀환에 대한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길가에 조심스럽게 차를 붙인 뒤 일단 시동을 껐다. 새벽 다섯 시, 이제 한 시간쯤 지나면 동이 틀 것이다. 그러면 안개도 어느 정도 걷히고 주변을 살필 수 있다. 그때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까 말한 거요....”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너는 뭉클뭉클 기어가는 안개를 내어다 보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시계의 디지털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응이 없자 너는 다시 한번 푸-, 하고 웃음도 아니고 한숨도 아닌 소리를 냈다.


“전에 내가 여행 가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그냥 해본 소리죠? 바다에 가자고 한 건 순 거짓말이었죠?”


네가 울먹이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그건, 그렇지 않아.”


쉬운 대답이 아니었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바다에 가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와 함께는 아니었다. 나는 단지 바다에 간다는 걸 네게 말했을 뿐이었다. 너는 무작정 편승했다. 그러나... 바다에 가는 일을 네게 고지하기 위하여 새벽같이 너를 찾아갔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좀 우스운 짓이었다.


“내가 방해가 됐나요?”


“그렇지 않아.”


쉽게 대답했으나 네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는 건 참기 힘든 일이었다. 아무도 가슴 아프지 않게 살아갔으면 한다. 나는 그래서 불안하다.


“우린.... 어떤 식으로든 이제 끝인 거야. 이제 마지막이라구.”


나는 마침내 말했다. 어떤 감정으로 이 말을 하게 될 것인가 늘 궁금했는데 별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무 상관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을 때, 그리고 바로 잊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 그랬군요. 그래서 이렇게 새벽에 이런 곳까지 온 거군요. 이런 식으로...”


한참 만에야 너는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말했다.


“길게 얘기하진 말자. 그럼 너무 이상해질 거야. 우린 애들이 아니니까...”


사실 헤어지자는 말을 그렇게 하고 나자 나는 새벽 안갯속에 속에 갇혀 이렇게 있는 상황이 너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잠깐이라도 잠들고 싶었다.


“조금 억울하단 생각이 드네요.”


“뭐가?”


“우린 ...그래요, 우리가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언젠가는 당신이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좀 억울해요. 너무 추억이 없어서요. 우린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들 같아요.”


그리고 너는 한참 동안 안개를 내어다 보면서 우리들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여관이나 술집, 그리고 너의 자취방에 대해서 얘기했다. 대개 칙칙하고 냄새났으며 무엇엔가 우리는 쫓기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 차츰 안개가 벗겨지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쪽에서 하늘이 부옇게 빛나기 시작했다.


개 한 마리가 안갯속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누런 색의 나이 든 개였는데 아침 산책보다는 밤새 산속을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이런 새벽에 길을 가고 있는 개를 보고 있으면 놈들이 인생에 대해서 뭔가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저 치켜 올라간 꼬리만 봐도 그래. 그렇지 않아?”


나는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요, 어서 돌아가요. 하지만 난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이기적이지 않았어요. 당신이 필요한 만큼 내가 있어줬다고 생각할래요. 그리고 이젠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다고 말이에요.”


너는 지나칠 정도로 평온했다. 그 냉정함이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했다.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처음 너를 만났을 때부터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이라고 믿는 것처럼 오만한 생각이 어디 있을까.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혼란스러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안개는 빠른 속도로 산자락을 타고 기어올라갔다. 엷게 풀어진다기보다는 그것은 밤새 산 아래 마실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와 풀, 그리고 안갯속에 묻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던 개울물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도로는 약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시동을 걸었다. 10분쯤 산을 내려와 작은 주유소를 만날 때까지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유소는 아직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큰 도로변의 주유소와는 달리 경유와 휘발유 각각 1대씩의 주유기가 있었고 번듯한 카운터도 보이지 않았다. 전에는 틀림없이 동네 점방이었을 미닫이 유리문을 두드리자 잠시 뒤에 40대 여자가 부스스한 얼굴을 내밀었다. 라면 냄새가 풍겨 나왔다.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기름을 넣어주고는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카드도 되는가고 물었으나 이번에도 여자는 대꾸 없이 카드를 받아 들고 체크한 뒤 건네주고는 미닫이 안으로 사라졌다.


-빨리빨리 해, 기집애야. 오늘도 지각할래?


여자의 사나운 목소리가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차에 올라타자 너는 피식 웃었다. 너를 안지 벌써 3년, 네 웃음에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나는 안다. 정확히, 네 웃음엔 웃음의 본질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네 웃음에는 오히려 슬픔이나 분노, 절망들이 배어 있을 때가 많았다. 너는 그런 식으로 그 감정들을 다스린다.


“배고파요. 어디 가서 뭘 좀 먹을래요? 그럼 안돼요?”


그랬다. 방금 전 라면 냄새는 후각보다는 내장을 적잖게 자극했었다. 나 역시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결별하는 마당에 어디 가서 아침을 먹는다는 거, 영 이상한 노릇이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무신경한 사람들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너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네가 아직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내 선언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너는 아직도 꿈꾸듯이 안갯속을 헤매는 어리둥절한 상태인지도 몰랐다.


“집에 가서 먹어. 태워다 줄테니까.”


그렇게 말하자 기분은 더욱 나빠졌다. 무심코 칼에 베었을 때의 서늘함 같은 것이 가슴 가득 번졌다.


“치-, 그래요.”


너는 입술을 약간 삐죽하게 내밀며 그런 소리를 냈다. 그런 어리광은 측은한 감정을 일으키기보다는 나를 더욱더 환멸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 끝 간 데 없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그토록 너에게 고약을 떨었던가. 지난 3년간의 시간이 이토록 경멸되어야 하는 것인가. 좀 더 의연하게 나를 보내주고 너를 남겨둘 순 없는 건가.


다시 강을 건넌다. 새벽 강은 짙푸른 색으로 수증기의 머리띠를 이고 천천히 물결치고 있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에도 불구하고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풀벌레 울음이 선명하게 구분되어 들렸다. 다리를 건너자 까치 한 마리가 도로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난 빨리 친구를 구해야겠어요. 이젠 외로운 게 싫으니까.”


너는 또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답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대꾸를 했다가는 수렁 속으로 질질 끌려들어 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마도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도로는 쏜살같이 질주하는 트럭이나 승용차들 몇 대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다. 새벽빛이 차츰 묽어졌고 가로등 불빛도 희미해져 갔다. 네가 사는 집에 가까워질수록 너는 입술을 빨았다. 그리고 글러브 박스 부근을 손톱으로 긁거나 머리를 등받이에 가볍게 대고 흔들기도 했다. 너는 이제 구체적인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는 결별하는 것이다. 뭐라고 생각해도 좋다. 네가 너를 차 버린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이런 관계의 지속은 우리들을 파멸시키고야 말 것이다. 그 파멸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이 새벽에 헤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가족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너는 너의 오늘과 내일, 먼 미래를 위해서. 나는 그런 말들을 머릿속에 떠올렸으나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 쓰레기만도 못한 소음이 되고 말 것이었다.


“저기요. 음악 좀 들을래요?”


너는 카세트에 테이프를 끼워 넣으며 말했다. 이제 두 구간만 지나가면 너의 집이다. 그럴 시간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음악이라니... 그건 차라리 아침을 먹느니만 못한 짓거리였다.


“됐어.”


“그래요.”


네가 사는 지하실 방, 골목 어귀에 차를 댔다. 골목은 주차된 차들로 빼곡했다. 네 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비쳐 나오고 있었다.


“내려라. 밥 먹고...”


“네.”


“자라.”


“그래요. 밥 먹고 잘게요..... 나, 갈게요.”


“그래.”


너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너의 작은 가슴이 약간 부풀어 올랐다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내려앉았다. 엷은 치약 냄새 같은 게 풍겼다. 그리고 너는 차에서 내렸다. 네가 골목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나는 네가 한 차례도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그리고 잘 가라는 인사 대신에 ‘갈게요’라고 인사했다는 걸 알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어를 중립에 놓은 채 엑셀러레이터를 두어 번 밟았다. 요란한 공회전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나서 나는 거칠게 후진해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침 햇살이 번지기 시작하는 거리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나는 네게서 달아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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